[소설] 피랙

9화

by 블루베이글

“뭐라고요? 형을 찾았다고요?”

윤소라는 깜짝 놀란 얼굴로 최민혁에게 되물었다.

“네, 저도 믿기지가 않지만, 어젯밤에 편의점을 마감하고 있는데, 손님이 한 명이 들어왔고 그 손님이 바로 형이었어요. 형이 원래 엄청 잘 꾸미고 다니는 사람인데, 어제의 모습은 전혀 아니어서 바로 알아보지 못했어요.”

“형은 괜찮으세요?”

“네, 행색은 초라했지만 형의 착하고 따뜻한 눈빛은 그대로였어요. 이제 저와 함께 옥탑방에서 지내기로 했고 편의점 일도 도와주기로 했어요.”

“정말 다행이에요, 민혁 씨!”

“그럼 저는 집에 들렀다가 도서관에 가서 책 좀 빌리고 여기로 다시 올게요.”

“네, 소라 씨 조심해요. 항상.”



아직도 도서관에 가면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무인대출반납기를 이용하지만 그래도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단단해졌다. 2층에 있는 문헌정보실의 자동문이 열리고 윤소라의 발걸음은 곧장 문학 카테고리로 향했다. 도서관 특유의 책 냄새와 분위기는 이 세상 어떠한 곳보다 윤소라의 영혼을 사로잡았다. 갑자기 예전에 쓰다 만 소설을 다시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혁 씨와 함께라면, 모든 것을 놓고 생존만 하던 삶에서 진짜 윤소라의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 희망에 가득 찬 채 원하는 책의 청구기호를 찾기 위해 몸을 낮췄다가 일어서는데, 책들 사이로 건너편에 까만 눈동자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친 윤소라는, 그 눈이 바로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바로 그 까만 모자를 쓴 남자의 것임을 바로 알아보았다. 이미 지명 수배되어 TV에서 신상이 공개된 남리수, 바로 그였다. 윤소라는 일단 그 눈동자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천천히 백팩 안으로 손을 넣어 호신용 스프레이를 꺼내 사정없이 그 눈을 향해서 뿌렸다.

“아아악!”

소리와 함께 남리수가 두 눈을 감쌌고 그 틈을 타서 윤소라는 데스크 쪽으로 달렸다.

“빨리 경찰에 신고해 주세요!”

조용한 도서관에서 아침부터 괴성을 들은 사서는 모닝커피를 마시기 위해 손에 들었던 머그잔을 재빨리 놓고 파랗게 질린 얼굴로 핸드폰을 집어 112를 눌렀다. 이른 아침이라 다행히 도서관에는 윤소라와 여자 사서 한 명 밖에 없었다.

윤소라가 남자의 동태를 살피는 와중에 남리수는 시야가 흐릿한 듯 비틀거리며 문헌정보실을 뛰쳐나갔다.




또 놓쳤다! 경찰이 도착한 후에는 이미 남리수가 사라진 뒤였다. 게다가 경찰은 단지 바라보았다는 이유로 호신용 스프레이를 뿌리는 건 과잉대응이라면서 오히려 윤소라를 이상한 사람 취급했다.

“아니, 그 사람이 바로 TV 뉴스에 나왔던 검은 모자를 쓴 그 성폭행범이라고요! 남리수요! 제가 얼굴을 똑똑히 봤어요.”

“눈만 봤다면서요?”

윤소라는 신뢰할 수 없는 말투와 진지하지 않은 표정의 경찰이 견디기 힘들었고 도대체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구별이나 할 수 있는지 그 능력마저 의심스러웠다. 더는 말을 섞어 봤자 시간과 에너지 낭비라는 판단이 서자마자,

“하여튼 전 분명히 말씀드렸어요.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오기 전에 그놈을 잡으시는 건 경찰이 할 일이니까요, 그럼 전 이만.”

그때, “윤소라 씨인가요?” 물으며 한 남자가 형사 신분증을 윤소라의 눈앞에 들이댔다. 신분증에는 이바다라고 쓰여 있었다. 형사 이름치고는 너무 낭만적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냉정을 유지하며 답했다.

“네, 제가 윤소라인데요, 무슨 일이시지요?”

“지명 수배 중인 남리수가 오늘 윤소라 씨를 공격하려 한 거 맞으시죠?”

“네, 제가 분명히 봤는데, 저 경찰 아저씨들이 오히려 저를 오해하고, 하여튼 남리수가 저를 공격한 게 이번이 두 번째예요. 남리수는 분명 또 제 앞에 나타날 거예요.”

“그렇군요. 그리고 남리수의 눈이, 그러니깐 동공이 확장되고 새까만 색이라고 하셨는데…….”

“네, 맞아요. 피치 블랙(pitch black). 그 색이요.”

“아, 역시, 맞군요. 일단 윤소라 씨의 안전을 위해 집 앞에 순찰차를 배치시키겠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이형사님. 그리고 남리수를 꼭 잡아주세요.”

“네, 그럼요. 그러겠습니다.”

이바다는 도서관을 나가는 윤소라의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보며 저렇게 순수하고 착한 눈을 가진 사람을 본 게 얼마 만인지 그리고 아무리 강력계 형사지만, 이제 범죄자들의 악마 같은 눈을 그만 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소라는 최민혁에게 집에서 만나자고 연락한 후, 집으로 돌아와 씻고 믹스커피를 타서 책상 앞에 앉았다. 아까 일을 잊기 위해서라도 뭔가에 열중해야 했다. 노트북을 열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글을 쓰니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쓰다 보니 점점 주인공에게 이입되어 앉은자리에서 1시간 동안 꼼짝하지 않고 써나갔다.


해가 질 무렵 최민혁은, 편의점 일을 형에게 맡기고는 윤소라의 집으로 왔다. 현관문을 연 윤소라는 편의점 간식거리를 양손 가득 사 들고 선 최민혁을 보고는 자기도 모르게 그를 꼭 껴안았다.

“고마워요, 민혁 씨. 제 인생에 불쑥 나타나주어서.”

양손에 든 편의점 봉지 때문에 엉거주춤한 자세로 윤소라의 따뜻한 포옹을 맞은 최민혁은,

“나도 고마워요, 소라 씨.”라고 말하며 심장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둘은 탁자에 편의점 간식들을 펼쳐놓고 소파에 앉았다. 윤소라가 아침에 도서관에서 있었던 일을 털어놓자, 최민혁은 주먹을 불끈 쥐고는 마치 자기가 형사라도 된 것처럼 남리수를 잡으러 나가려 했다.

“민혁 씨, 밖에 순찰차가 있어요.”

“소라 씨만 허락한다면, 내가 소라 씨 집에 함께 있어도 될까요? 아무래도 너무 불안해요.”

“알겠어요. 하지만 민혁 씨가 거실에서 자야 하는데 괜찮겠어요?”

“그럼요, 괜찮고 말고요.”

오늘따라 달도 뜨지 않아 밤하늘은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피치 블랙.

자꾸만 도서관에서 보았던 그 눈동자가 생각나 쉽사리 잠을 청하지 못하는 윤소라와 그런 윤소라가 걱정되는 최민혁은 동틀 무렵이 다 돼서야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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