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피랙

8화

by 블루베이글

“아, 피곤해, 요새 도대체 왜 이렇게 사건이 많이 터지는 거야?”

형사 이바다는 믹스커피 두 개를 종이컵에 털어 넣으며 신형사를 향해 말했다. 컴퓨터 화면을 응시하고 있던 신형사도 피곤함을 감추지 못한 얼굴로 이형사를 바라보며 답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형사님. 게다가 용의자 선상에 오른 놈들의 눈이 죄다 상태가 이상해요.”

“확장되고 새까만 동공.”

“네, 맞습니다. 혹시 무슨 바이러스 같은 거 아닐까요?”

“모르지. 정부가 곧 이와 관련해서 무슨 발표를 한다던데. 일단 저번 사건 있지, 편의점에서 택배기사가 주인아줌마 칼로 찌른. 그 택배기사는 어떻게 됐어?”

이형사는 심각한 얼굴로 뜨끈한 믹스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책상 위에 놓인 사건보고서를 보며 물었다.

“일단 살인미수혐의가 적용되었지만, 편의점 아줌마와 윤소라 씨가 합의를 해줘서 풀려났습니다. 현재는 무직 상태로 집에서 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윤소라 씨와 한 번 만나 그때 상황에 대해 다시 한번 자세히 얘기를 들어야겠어. 그나저나 지명수배 중인 남리수는 행방이 묘연하네. 성폭행사건이 또 발생하기 전에 얼른 그놈을 잡아야 해.”




윤소라를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친 후 다른 20대 여성을 성폭행해 현재 수배 중인 남리수는 새로운 목표물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짙은 파란색의 밤하늘 아래에 야근하고 귀가 중인 젊은 여자가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어서 누가 따라오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여자는 어서 집에 가서 씻고 쉴 생각에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오늘은 정말 긴 하루였다. 쓸데없이 사람을 괴롭히는 몇몇 직원들 때문에 오늘 하루도 퇴사의 문턱까지 갔었다.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골목길에 들어서자 남리수는 여자 바로 뒤까지 다가갔다. 그때 갑자기 “야옹”하는 소리가 나서 여자는 주변을 둘러보았고 남리수는 재빨리 주차되어 있던 트럭 뒤로 숨었다.

“백설이구나? 언니가 간식 줄게, 잠깐만…….”

여자는 가방에서 고양이 간식을 꺼내 길고양이에게 먹여 주었다.

“오늘 하루 잘 보냈어? 언니는 매우 힘들었다……. 우리 백설이 눈은 이렇게 맑고 착한데, 회사에 있는 사람들의 눈은 까맣고 무서워.”

길고양이는 행복한 얼굴로 간식을 받아먹고 풀숲으로 사라졌고 여자는 몸을 일으켰다. 남리수는 지금이 기회다 싶어 여자의 어깨를 잡으려는데, 그때, “아빠!”하고 여자가 소리쳤다.

“우리 딸!”

저쪽에서 몸집이 큰 중년 남자가 여자를 향해 걸어왔다.

“아빠가 마중 나오니깐 좋다. 혼자 걸어가기엔 여기가 밤에 좀 그래.”

“그래서 아빠가 우리 딸 야근하는 날에는 항상 마중 나오지. 그런데 아까 검은 모자 쓴 남자는 누구야?”

“검은 모자? 나 못 봤는데?”

여자는 뒤를 한 번 돌아보고 사랑하는 아빠와 함께 집으로 걸어갔다.

풀숲에서 길고양이 백설이가 두 눈으로 똑똑히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남리수는 검은 그림자처럼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편의점 아주머니는 다행히 생명에 지장은 없지만 한 달 정도는 꼼짝없이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저, 어차피 지금 딱히 하는 일도 없고 예전에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어 대충 다 알아요. 걱정하지 마시고 저한테 맡기세요.”

최민혁이 먼저 아주머니의 빈자리를 대신해 편의점을 봐주고 싶다고 제안했고 아주머니도 믿음직스러운 아르바이트생을 구한 것처럼 흔쾌히 허락했다.

한편 윤소라도 가족이 없는 편의점 아주머니를 위해 아주머니의 간병을 자처했다. 더는 집에만 틀어박혀 세상을 두려워하며 살고 싶지 않았다. 간병인을 고용하겠다던 아주머니도 윤소라만큼 자신을 잘 돌봐줄 사람이 없을 거란 생각에 못 이기는 척 도움을 받기로 했다.


아주머니의 퇴원을 일주일 앞두고 최민혁은 자정이 다 된 시각, 편의점 마감을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이제 자정 이후부터 새벽 6시까지는 너무 위험해서 편의점을 열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문이 열리고 초췌한 모습의 한 남자가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남자는 생수 하나를 냉장고에서 꺼내 계산대에 놓았고 이때 바코드를 스캔하려는 최민혁과 눈이 마주쳤다.

“형!”

최민혁은 떨리는 목소리로 외치며 계산대 밖으로 뛰쳐나왔다.

“민혁아, 네가 왜 여기 있어?”

“그건 내가 할 말이야, 형 도대체 어디 있었어? 내가 형을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

“미안해, 민혁아……. 형이 할 말이 없다……. 아버지가 그렇게 되시고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어. 절대 널 버린 게 아니야…….”

“알았어, 형. 이제 사라지지 마, 응?”

최민혁은 형을 자신의 옥탑방으로 데리고 갔고 그 둘은 함께 지내기로 했다. 형이 잠들자, 자신도 잠을 청하며 형의 눈이 그대로라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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