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업 육아휴직 현실 4 :: 결말

by 나만아는낭만


소문은 언제나 빠르다.


'Team Assistant' 자리를 제안 받았던 바로 그 직후였나. 나를 이 회사에 추천했고, 내 직속 상사였던 팀장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팀장님은 참 직설적이고 솔직하신 분이다. 다짜고짜 내게 너 꼭 그 자리 가야하겠냐고, 가지 말라고 하셨다.


그 자리는 벌을 받는 자리라고. 네가 왜 벌을 받아야 하냐고.




팀 디렉터에게는 개인 비서가 따로 있다. 그러니까 'Team Assistant'라는 그 자리는, 비서도 아니며(비서여도 웃기지만) 내 커리어에는 도움이 전혀 되지 않는 자리가 맞았다. 내 예상이 맞았던 거다. 대놓고 나가달라고 하는 것.


팀장님은 본인도 정확히 그 자리가 무슨 업무를 하는 자리인지는 알 수 없지만, 팀원 누군가의 생일이면 생일선물을 사고, 식당을 미리 예약하는 등의 업무일거라고 예상하셨다. 그리고 팀 디렉터는 본인의 상사이기도 하기에 본인도 겪어봤지만 결코 쉬운 분이 아니고 맞추기 까탈스러운 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그 자리에 네가 있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차라리 다른 회사를 같이 알아봐주겠다, 그냥 복직하지 말아라-




나도 속으로 동의하고 있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회사에서 내린 그 결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쯤은 알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퇴사했다. 물론 그 뒤로도 뒷마무리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사건들이 있었지만... 더 이상 이 이야기를 길게 하고 싶지 않기에 여기서 끝맺음한다.





-나의 <육아휴직 끝, 결말은 퇴사> 스토리 끝-





생각보다 공백을 두지 않고 곧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뜻하지 않은 기회와 인연으로.




전 회사와의 면접과 복직을 주제로 한 여러 차례의 실랑이에 지쳐가고 있던 5월 중순, 서른 네 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오랫동안 연락을 하고 지내지 않다가도, 카카오톡 프로필에 '생일'이라고 뜨면 문득 그 사람의 안부가 궁금해지는 날이 있다. 그 날은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었나보다.




대학교를 졸업한 후 20대 중반에 잠시 모교 학생지원팀에서 계약직 직원으로 일했던 기간이 있었다. 그때 옆자리에서 함께 일하던 인턴 선생님이었다.




'선생님, 생일 축하드려요. 잘 지내시나요?'

뜬금없는 연락이었지만 당황스럽기보다는 반가웠다. 자연스럽게 서로의 안부를 묻고, 근황을 답해주고 하는 식의 대화가 오갔다. 학교에서 함께 일할 때 나는 취업 준비를 했었고, 그 분은 사업을 준비했었는데 7년이 지난 지금 그 사업이 번창해서 새로운 직원을 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오 샘, 저 써주세요ㅋㅋ 같이 일하면 잼있겠다.'




정말로 가볍게 툭 던진 그 말이 씨가 되어 우리는 그 즉시 약속을 잡아 몇 년만에 재회했고, 밥을 함께 먹고 커피를 마시며 근황+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그녀는 지금 나의 보스가 되었다.




나는 연봉을 대폭 깎고 커리어를 중단하는 대신, 다음의 것들을 선택했다.

(어쩔 수 없었다. 외국계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의 이직을 선택했으니)




주 1회 출근, 그 외 재택근무, 아이를 키우며 워킹맘이 필연적으로 부딪힐 수 밖에 없는 특별한 사건들(아이가 아프다던지...)에 대한 유연성, 낮은 근무강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평일에 아이를 등하원하고, 원하는만큼 실컷 볼 수 있는 시간의 자유를 얻었다.




이제 나는 아이가 아프면 언제든 가정보육을 할 수 있고(당연히 일보다 힘듦), 아이의 밥을 직접 준비하고, 잠들기 전 충분히 아이와 함께 책을 읽어줄 수도 있다. 엄마로서 너무 당연한 이 모든 것들을 하기 위해 내가 전 회사에 요구했던 '육아기 단축근무'는 세계적으로 업계 탑이라는 빛나는 그 명성에 미치지 못하는 하잘 것 없는 요구였고, 회사에서는 그런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잘 나가는 회사에 나 같은 '엄마'는 필요하지 않았겠지. 하지만 내 아이에게는 '엄마'가 꼭 필요하기에 나는 지금도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기 이전,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 중 하나는 '일' 이었다. 일을 미친듯이 사랑하는 워커홀릭까지는 아니었지만 연봉으로 내 가치를 높이고, 좋은 회사로 이직을 하고, 좋은 회사에서 더 많은 경험을 하며 새로운 경력을 쌓는 일이야말로 보람된 일이자 기쁨이었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난 지금, 그 아이를 사랑해주고 그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그 아이를 내 사랑으로 키워내는 일보다 귀하고 소중한 것은 없다. 어느 엄마든 마찬가지겠지만 아이가 내 인생의 보람이고 기쁨이자 행복인 것을.




그러니까 이 이야기의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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