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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요나 Mar 08. 2019

내성적인 사람의 영어회화(1)
-귀 훈련

귀가 뚫려야 입이 뚫린다

2년 전, 영어에 대한 아무 준비 없이 미국에 왔다. 6개월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까막눈처럼 지냈다. 나보다 미리 미국에 와 있던 남편이 보험과 운전면허증, 아파트 렌트 계약과 유틸리티 관련 것들을 모든 것을 처리해 주었다. 음식점에서의 주문조차도 거의 남편이 도맡아 했고 아이는 아직 어린이집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영어라는 언어로 된 말을 할 건수가 거의 없었다. 한국에 있을 때 주변의 누군가가, 서브웨이에서 주문만 할 수 있으면 돼요.라고 말을 했을 때 주문이 뭐가 어렵다고 그런 말을 할까? 했었다. 나에게는 그저 미지의 세계였다.

 

전에도 말했듯이 미국인과 눈 마주치는 것조차 두려웠던 나는 부끄러움이 많다. 학교 다닐 때 꽤 공부도 잘했었고 영어 성적도 좋았지만 성격이 발목을 잡았다. 잘 못하는 것을 남 앞에서 하는 것을 굉장히 두려워하는 성격이다. 별로 완벽주의자도 아닌데(실상은 대충대충에 가까운) '완벽주의자 코스프레'다. 어쩌면 완벽주의자가 아니라 남에게 나의 약점을 보이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 강한 거겠지. 어릴 때부터 수줍음이 많은 아이 었다고 하니, 뭐 전형적인 소극적인 성격일 수도 있겠다. (나는 MBTI 성격유형 검사를 해 보면 INFP 가 나온다. I로 시작하는 사람은 내향적인 성격이라고 한다.) 물론 영어 회화 못하는 것을 단순히 성격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성격은 어느 정도 극복이 가능하다.




내 나이 또래에 영어회화를 시작하는 분들이 실패하는 이유는 귀 훈련과, 입 훈련을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헬스장에서 근육을 만들 듯 반복적으로 입근육을 만들어 내야 하고 영어 듣는 귀가 만들어 져야 한다. 문법이나 독해 능력은 사실 처음 회화를 시작하는 입장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고등교육 이상을 대부분 받아 왔으므로 영어 문법은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어차피 단순 회화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기본 구조 문법 정도에서 그 이상으로 넘어서지 않는다. 물론 회사를 다니거나 학교를 다니면서 제대로 된 작문 수준까지 끌어 올리려면 중급 이상의 실력으로 나아가야 하지만, 영어 회화 왕초보가 미국에서 생활영어를 하는 수준으로는 문법은 거의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한 때 공부 꽤나 한 한국인으로서 아주 쉬운 단계의 공부부터 시작하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아주 쉬운 단어와 문장을 달달 읽어야 하니, 한국어로 보면 '나는 쇼핑하러 갈 거야, 물 좀 주실 수 없을까요, 차가 고장 났으니 봐주세요 ' 와 같은 쉬운 말을 입에서 쉽게 뱉을 수 있을 때까지 몇 번씩 읽어야 하는 것이다. (읽고 가도 막상 말할 때는 어버버 할 때가 있다)

처음 미국에 온 한국 엄마들은 집에서만 있으면 영어 실력이 늘지 않으므로 대부분 ESL 과정에 다닌다. 우린 남편은 학생 신분, 나는 학생의 배우자 신분으로서 최소한의 비용으로 살아가고 싶은 생각에 학원은 최대한 기피하고 싶었다. (시에서 지원하는 무료 과정이 있기는 하지만 서비스 수준이 낮고 대기자가 넘쳐났다.) 풀타임으로 아이를 케어해야 한다는 이유도 있었기에 우선 ESL을 다니지는 않았다. 그래서인지 처음 6개월 간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지냈다. 한국 사람이 많지도 않은 샌안토니오에서 많은 한국사람들을 사귀었다. 내가 사교적인 성격이 될 수도 있구나 란 생각을 이때 처음 했다.

아이와 놀이터에 가도 외국인(미국인 또는 그 밖의)과는 말을 섞지 않았고 간단한 대화를 한적은 있지만 길게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막무가내로 미국인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 수는 없었다. 말을 건다 한들 그들의 말을 알아듣기 조차 어려웠다. 그들이 빨리 말하면 천천히 말해달라고 부탁하면 됐지만 그런 용기조차도 가지기 어려운 상태였다.


그래서 우선 귀가 익숙해지는 훈련을 시작했다. 가장 많이 듣고 봤던 것은 미국 뉴스와 미드였다. 


우선 CNN 뉴스를 열심히 봤다. 나는 한국에서도 뉴스를 잘 안 보던 사람이고 특히 정치에는 무관심했었지만 여기 와서는 그럴 수 없었다. 언어라는 것은 결국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이므로 입에서 말을 떼거나, 남들의 말을 듣는 게 좀 더 쉬워진다. 뉴스에 크게 재미가 느껴지지는 않았었지만 앵커들은 발음이 정확하고 억양도 스탠더드 하니 영어라는 음에 익숙해지는 데는 도움이 되었다. NPR이라는 미국 라디오 방송도 계속 틀어놨다. 라디오 방송은 자막과 화면이 없기 때문에 초보일 때는 귀에 잘 들어오지 않지만 갈수록 라디오 방송이 TV 보다 더 쉽게 들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미드는 어릴 때부터 마니아였다. 영화도 한국영화보다 할리우드 영화 좋아하고, 음악도 한국음악보다 영어 팝송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미국 생활을 딱히 동경한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예전에 섹스 앤 더 시티는 전 시즌을 다섯 번 이상 본 거 같다. 재미있다는 미드는 다 챙겨보는 미드 마니아였던 내가 왜 아직 영어가 이 정도인 지는 모르겠지만. :) 우선 나한테 맞는 미드라고 생각했던 'Game of throne'과 'Walking dead'를 시즌별로 정주행 했다. 영어 억양과 발음에 익숙해지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자막을 끄고 본다거나 그런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들의 말을 알아듣고 이해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미국인들의 발음과 평소 말투에 익숙해지는 것에 최대한 초점을 맞추었다. 외로운 해외 생활에 드라마 보기는 공부라기보다 놀이이다. 그래서 거부감 없이 재미있게 했다.




또 하나의 관문은 아이였다. 


아이가 45개월일 때 이곳에 왔는데 아이는 또래 아이들보다 한국어 어휘나 문장 구사가 빠른 편이었다. 어린이집에서도 가장 말을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던 아이인데 여기 와서 본인의 말을 아무도 못 알아들으니 자신감도 떨어지고 다른 사람의 'Hi' 에 맞대답 'Hi' 조차도 하지 않는 Shy한 아이가 되었다.(애나 어른이나, 자신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는 대목이다.) 한국에서 영어를 익숙하게 해 주고 오면 좋았겠지만, 만 네 살은 사실 영어를 하기엔 좀 이른 나이라 생각했다. 이유인즉슨 한국어를 어느 정도 능숙하게 하는 상태에서 영어를 잘하게 하고 싶은 맘이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알파벳 정도만 익히고 왔다.(이맘때 자신감 뿜뿜을 위해 우리 딸 영어 잘한다~ 하고 칭찬해주면 ABC 쏭만 주야장천 불러댔다.) 


이곳에 와서 처음 6개월간 데이케어에 가지 않았던 우리 아이도 나와 마찬가지로 영어를 익숙하게 할 수 있는 수단은 매체뿐이었다. 미국 넷플릭스에 있는 각종 유아 프로그램과 영화를 다 틀어주는 데도 영어 방송은 보지 않겠다고 떼를 썼다. 옥토넛이나 뽀로로, 슈퍼 윙즈처럼 한국에도 있는 만화의 영어 버전을 틀어주면 거부감이 덜할까 싶어서 보여주면, 이미 한국어 방송이 있다는 것을 알아서 더더욱 보지 않으려고 했다. 유튜브에서 ' 슈퍼 윙즈 한국어'를 얼마나 찾았는지 셀 수도 없다. 이렇게 처음 1-2개월은 한국어 방송과 영어 방송을 병행하며 아이를 구슬렸고, 그러면서 나도 같이 공부가 되었던 것 같다. 만화 영화라고 해서 우습게 보면 안 된다. 쉬운 영어라고 해서 다 들리지 않지만 오히려 나에겐 미드를 보는 것보다 더 도움이 되었다. 이때 가장 많이 봤던 것이 Moana, Trolls, Secret life of pets, Zootopia, Finding Dory 정도이다. 만화 영화이므로 최대한 자막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안 들리는 경우가 많아서 영어 자막을 켜고 본 적이 많았다.  






보통 아이들의 입이 떼지고 문장을 조금이나마
구사하기 시작하는 나이는 대략 만 2세부터이다. 
그만큼 많은 시간 반복적으로, 집중적으로 노출돼야 귀가 뚫리기 시작한다.
아이나 나에게는 '귀가 익숙해지는 훈련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사직후, 가구라곤 TV 밖에 없던 시절, 다니엘 타이거 보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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