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남해 한 달 일기를 꺼내어 추억하며)
지심도
거제 장승포항 에서 배로 2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지심도는 하늘애서 내려다보면 섬의 모양이 마음 心(심) 자를 닮아서 只心島(지심도)라 하는데 남해의 그 어느 섬보다 동백나무가 많고 수령이 오래되었으며, 국내에서 원시상태가 가장 잘 보존된 지역이다. 동백꽃이 활짝 필 때쯤이면 뚝뚝 떨어진 동백꽃을 밟기가 미안해서 피해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동백나무 숲을 걸어간다.
곳곳에 일본군들이 점령했던 역사적 흔적들이 남아있어, 일본에 대한 분노를 자아낸다. 서치라이트 보관소, 일본군 방향 지시각 등이 주변을 감찰하거나 작전 지구 내에 동향을 감시하는 도구로 쓰였던 것들이다.
조금 더 가니 일본군 욱일기 게양대가 있던 자리에 대한민국 국기가 펄럭이고 있다, 주민들이 힘을 모아 태극기를 게양했다니 마음이 든든하다. 일본은 언제쯤이면 대한민국을 동등한 국가로 인정하고, 지난 전쟁의 아픈 역사들에 대해 진정으로 사과할까? 우리나라가 경제 대국으로 앞서가면 가능해지겠지?
어느덧 해식절벽(마끝) 전망대에 들어선다.
바로 눈앞에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고, 아찔한 벼랑 사이로 밀려들며 부서지는 파도의 포말이 덮치듯 다가선다. 파도, 조류 등의 침식으로 깎여 형성된 절벽을 해식절벽, 또는 海蝕崖(해식애)라고도 하며, 산지가 해안까지 연결된 암석해안에서 주로 볼 수 있고, 거제 해금강, 소 매물도, 등 등대섬이 대표적이라 한다.
해금강
장승포 항에서 유람선을 타면 외도와 해금강을 돌아볼 수 있고 왕복 3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해금강을 배로 돌아본 다음 외도에서 1시간 30분 정도 산책을 하고 다시 배로 돌아오는 코스이다.
배를 타고 해금강으로 가는 중 보이는 작은 섬들을 찍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달리는 배 난간에서 이리저리 카메라를 눌러댄다. 멀리서 3개의 섬으로 보이더니 가까이 가면 갈수록 섬들은 서로에게 떨어져 어느새 독립된 섬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해금강은 1968년 한려해상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거제도의 최 남단, 乫串(갈곶)과 작은 돌 섬인 乫島(갈도)의 기암괴석들이 수 억 년 파도와 바람에 씻기어 갖가지 모습으로 바다를 지켜내고 있다. 갈도는 약초가 많아 약초 섬 이라고도 부르며 아열대 식물 30여 종이 서식하고 있다 하니 보물섬이다.
사자바위, 미륵바위, 금관 바위, 서방바위, 해골바위 등, 많은 바위 위로 하늘을 나는 새들은 저마다의 노래를 부르고, 배는 어느덧 깊숙이 십자동굴로 들어가 잠깐이지만 동굴의 기분을 느껴본다.
외도(보타니아)
보타니아는 식물인 botanic과 낙원인 utopia를 합해 식물의 낙원이라 한다. 따듯한 기후 때문인지 잘 자라고 있는 아열대 식물들이 풍성한 잎을 발하고, 잘 꾸며진 언덕 위 정원은 멀리 보이는 바다와 한데 어우러져 평화로운 그림을 그리고 있다. 돈나무, 동백나무, 사철나무들이 울타리를 치고 있고, 그 위로 높이 솟은 해송나무, 후박나무들이 층을 이루며, 지중해의 건축물을 연상케 하는 리스 하우스와 기념품점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꿈의 집을 연상케 할 것 같다.
1969년 이창호라는 분이 근처 낚시를 왔다가 태풍을 만나 하룻밤 민박을 한 것이 인연이 되어 친구 두 분과 같이 이 섬을 샀다고 한다. 감귤농장, 돼지농장 등 시도했던 사업들이 계속 실패하자 친구 두 분은 떠나고 혼자 남게 된 이창호 씨는 그때부터 식물원을 구상하고 30여 년간 정성을 쏟아 마침내 1995년 4월 15일 외도 해상공원을 개원하였다.
1990년 한려해상 국립공원에 편입되었고, 1992년 공원 사업 인가를 받았으며, 2001년 문화 관광부 지정 식물원으로 등록되었고, 2002년 겨울연가의 마지막 회를 촬영하였다 한다.
건국대 건축 공학과 강병근 교수의 설계와 감리감독을 받아가며 섬 전체를 공원화하여 아름다운 왕국을 이루어낸 그였지만 2003녀 3월에 세상을 떠난 이창호 회장.
그의 손 때 묻은 정원의 나무들과 꽃은 바다와 함께 아름답게 피고 지는데, 그도 피고 지는 이 꽃들을 보며, 이 바람소리를 들으며, 하늘까지 찌를 듯 자라 오르는 나무들을 바라보며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겠지?
"나와 함께 가자는 말도 없이 왜 그리 급히 떠나셨습니까?,
님은 내 곁에 오실 수 없어도,
내가 그대 곁으로 가는 길이 남아있으니.........
- 부인 최 호숙의 글-
부부의 사랑이 한껏 묻어나는 글을 읽으며 가슴이 짠해진다.
위쪽 끝으로 올라가니 자그마한 기도실이 열려있다. 문을 여니 커다란 창이 눈앞에 보이고, 그 앞에 십자가가 서있고, 앉은뱅이책상 하나 앉아 있다. 그 앞에 마음을 정리하고 기도한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 은혜임을 고백하며....
나의 나 된 것을 감사하며....
내일의 우리를 위해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