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통영

(해저터널을 걷다)

by 파랑새 앵선

(몇 년 전 남해 한 달 일기를 꺼내어 추억하며)




오늘은 바다 백 리 길 마지막 코스인 매물도를 가기 위해 일찍 나서야 하는데 비가 오고 있다. 가뭄 해갈에 꼭 필요한 비를 맞으며, 새벽 여객 터미널을 찾았지만 파도가 너무 높아 섬으로 향하는 모든 배가 결항이다

그동안 너무 무리해서 오늘은 쉬라며 잘됐다고 전화 한 딸에게 나도 잘뙜어! 했지만 무언가 허전하다,


통영의 비 오는 날의 풍경은 바다인지, 부두인지, 하늘인지, 온통 잿빛이다.

호텔에 처음 왔을 때부터 창 밖을 통해서 보이던 커다란 화물선이 엊그제 떠나, 텅 빈 것 같은 부둣가에 갈매기만 잔뜩 몰려와 계속 무엇인가를 쪼아대고 있다. 회색빛 구름으로 뒤덮인 산자락에 바다 안개가 피어오르고, 노란색 높은 크레인은 말없이 멈춰서 비를 맞는다. 모든 배가 결항이지만 해양 경찰 배는 쉬지 않고 돌고 있고, 가끔씩 한산도 가는 배가 천천히 바다를 거닐듯 출항한다.


그동안의 글들도 정리하고, 내일 거제도로 가서 여행할 스케줄도 정해야 하는데 벌써 10시를 후딱 넘어선다. 왜 그리도 시간은 잘 가는지.....

비는 계속 오지만 이대로 하루를 보내기에는 너무 시간이 아까워 남편의 의견으로 해저터널을 걸어보기로 했다. 우산을 받쳐 들고 걷는 것도 낭만적일 것 같아 동의했지만, 각자의 우산을 갖고 걷자는 는 내 의견과 우산 하나만 가지고 걷자는 남편의 의견이 충돌한다. 젊은 날의 데이트야 우산 하나쓰고 꼭 붙어가며 비를 좀 맞아도 즐겁지만......


해저터널

통영시 당동과 미수2동을 연결하는 해저터널은 1년 4개월의 공사 끝에 1932년 완공된 동양 최초의 바다 밑 터널이라 한다. 길이 483m, 폭 5m, 높이 3,5m 규모이다. 바다 양쪽을 막는 방파제를 설치하여 생긴 공간에 거푸집을 설치하고, 콘크리트를 타설 하여 터널을 만든 뒤 다시 방파제를 철거하여 완공하였다.

양쪽 터널 입구에 한자로 龍門達陽(용문 달양)이라고 쓰여 있는데, 용문을 거쳐 山陽(산양)에 통한다 라는 뜻이라 한다.

"용문은 중국 고사에 나오는 물살이 센 여울목으로 잉어가 여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용이 된다 라는 뜻으로 여기서 말하는 산양은 바로 미륵도이다." -해저터널에 대한 상세 설명서에서-


해저 터널 왕복을 하고 나오니 부둣가 왼쪽으로 주욱 늘어선 횟집 수족관의 생선들이 슬퍼 보인다.

자유롭게 헤엄칠 수도 없는 수족관에서 비 내리는 바다를 보며 그들은 얼마나 돌아가고 싶을까?

날씨가 더울 때는 시원해 보이더니 비가 오는 탓일까? 수족관은 더욱 좁아 보이고 바다보다 더 추워 보여 나도 더 추워진다.


한참을 걷다 보니 교황이 드셨다는 마늘빵을 파는 카페가 우리를 부른다. 유난히 맛집에 관심이 많은 남편이 갈 때부터 눈여겨 놓았는지 선뜻 들어간다, 젊은 청년이 건네준 방금 나온 따끈따끈한 마늘빵을 받아 들고 어젯밤의 위경련도 잊은 채 주저 없이 먹기 시작한 마늘빵은 비를 맞아 약간 차가운 손을 녹여주고, 마늘향을 폴폴 풍기며 내 몸까지 녹여 주었다.


이것저것 정리하고 있는데 남편이 창문으로 오라며 부른다.

비 오는 텅 빈 부둣가에 갈매기 한 마리가 대장인 듯 맨 앞에 있고 그 뒤로 수 백 마리의 갈매기가 회의라도 하는 듯 줄지어 앉아 있다. 갈매기들 사이에도 서열이라는 것이 있고, 질서라는 것이 있는 듯 멋진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저녁을 먹으려고 호텔 후론트에서 소개받은 S정이라는 곳에 들어서니 젊은 연인 한 테이블, 나이 드신 두 분이 주거니 받거니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고, 식당 분위기가 깔끔해서 우리도 얼른 주문한다. 회정식 1인분, 복국 1인분을 주문했는데 예상외로 학꽁치, 숭어회, 광어회가 나왔는데 너무 훌륭한 메뉴이다.

역시! 통영시로부터 인증받은 양심 식당이었다.

회 1인분을 더 주문하고, 남편이 소주잔을 나에게 건넨다. 언제나 미안한 것은 술을 잘할 줄 모르는 나 때문에 남편 혼자 홀짝홀짝 마시는 모습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아서이다. 술은 잘할 줄 모르지만 그 분위기만은 깰 수 없기에 잔을 마주치며 마셔본다. 의외로 회 한 점에 마신 소주 한잔이 달짝지근한 것이 또 한잔이라도 마실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비 오는 날의 통영 저녁은 이렇게 저물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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