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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토끼 Jun 10. 2023

연휴풍경

일상처럼 함께 했던 미세먼지가 물러가고 모처럼 파란 하늘이 얼굴을 드러낸 요즈음이다.

그 말간 하늘에 마치 새의 깃털을 옮겨 놓은 듯 흰 구름이 두어 군데 걸려 있었다.

가게 앞 학교에서는 징검다리 휴일 사이에 낀 월요일을 학교 재량 휴업일로 지정해 토, 일, 월, 화 4일간의 황금연휴가 주어졌다.


보통 주말 매출이 떨어지기에 보나 마나 4일 연휴의 매출은 보잘것없을 것이 뻔했다.

매출을 생각하면 가게 문을 닫고 쉬는 게 나을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5월에 쉰 날이 많았던지라 어쩔 수 없이 이 황금 같은 4일의 휴일을 꼬박 가게 문을 열기로 했다.


연휴 첫날인 토요일은 여느 토요일과 비슷했다.

일요일이 되자 역시 예상대로 한가로웠다.

하필 가게 밖의 날씨는 따사로운 햇살과 살랑거리는 바람까지 너무도 찬란한 날씨였다.

놀러 다니기 딱 좋은 날씨여서 인지 가게 안은 적막하기까지 했다.

조용한 가게 안에서 도서관에서 예약 끝에 빌려온 책을 읽었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빨치산 사회주의자 아버지의 장례식을 통해 아버지의 삶과 아버지와 얽힌 이웃들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는 <아버지의 해방일지>이다.

한 60여 장을 넘겼을까, 한 시간째 방문하는 손님 하나 없는 고요함에 깜빡 졸음이 찾아왔다.


그때 짹짹 소리에 화들짝 깨어 보니 참새 세 마리가 가게 문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중 겁 없는 참새 한 마리가 과감하게 가게 안쪽으로 쫑쫑쫑 걸어들어 오는 게 아닌가!

그러더니 여유롭게 가게 안을 탐색하다 포르르 날아올랐다.


혹시 통유리 벽에 머리를 찧을까 노심초사하던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참새는 가게 안을 한 바퀴 유영하더니 열려있는 출입문으로 너무도 자연스럽게 빠져나갔다.

덕분에 졸음이 싹 가셨다.



손님이 없으면 어떠랴!

모처럼 한가로운 하루가 저물어 가고 있다.

이 시간 내가 집 소파에 누워있던, 파도가 일렁이는 눈부신 옥빛 바다에 있던, 가게에 앉아 책 삼매경에 빠져 있던 그저 이 순간을 만끽하면 되지 않을까?

이미 문을 열고 가게에 나와 있으니, 지금 여기서 내가 행복하면 되는 일이다.


가게 안에는 녹진하면서 따스하게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고, 작게 흘러나오는 라디오의 음악소리와 부드럽게 흩뿌려주는 선풍기 바람아래서 나는 다시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어 나갔다.

잠시 뒤, 마무리하려는 순간, 키가 큰 청년이 들어왔다.


그 청년은 아이스크림을 하나 들고 와 계산을 하면서 "오랜만에 왔는데 혹시 저 알아보시겠어요?" 하는 거였다. 얼굴을 자세히 뜯어보니 낯익은 얼굴이었다. 어릴 적 얼굴이 기억이 났다.

눈매며, 입매는 그대로였지만, 훈남 청년으로 자라있었다.


이곳에서 문구점을 한 지 벌써 7년 차이니 고학년이거나 중학생이었던 아이들은 정말 길에서 만나면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성장해 있었다. 오랜만에 들러 그래도 반갑다고 인사해 주는 그 자체로 감사했다.

최저 매출을 기록한 연휴 이튿날의 풍경이었다.




연휴 3일차에는 느긋하게 아침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뽑기 통 사장님께서 평택을 들른 길에 정산을 하려고 왔는데 문이 잠겨있다고 오늘 쉬는지 물어보셨다.

나는 바로 나가겠다고 이야기를 하고, 서둘러 가게로 나갔다.


가게에 도착해 보니 밖에서 아빠와 함께 온 아이가 가게 앞을 기웃거리고 있는 게 아닌가!

얼른 가게 문을 열고 그들을 맞이했다.

조금 일찍 나온 덕분에 가게를 찾아온 손님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2일차보다는 복작거렸지만, 역시 연휴는 연휴였다.

오후가 되자 어제처럼 한산해졌다.

그 덕분에 나는 다시 <아버지의 해방일지>에 푹 빠질 수 있었다.




연휴 마지막 날, 그래도 명색이 황금연휴인데, 이렇게 마무리 한다는 게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평소와는 다른 하루를 보내 보기로 마음먹었다.


평소 휴일이었으면 한참 늦잠에 빠져 있을 몸을 깨워 배다리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부지런한 태양은 이미 두둥실 떠올라 대지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이렇게 밝은 아침에 나는 침대에서 조금이라도 더 누워있으려고 발버둥 치고 있었구나....

상쾌한 이른 아침의 바람과 공기를 온몸으로 만끽하며 천천히 걸었다. 벌써 많은 분들이 걷거나 달리고 있었다.



배다리 코스 중 가장 긴 코스를 여유롭게 산책을 했다.

초록이 짙어가는 나무와 맑은 하늘, 이 시간에 내가 이곳을 걷고 있다는 그 사실이 꿈결 같기도 했다.

여유로운 사람들 틈에 나도 슬며시 원래 그런 사람인 양 스며 들어갔다.


이렇게 4일의 연휴가 마무리되었다.

말랑하게 힐링 되는 휴가다운 휴가를 보내지는 못했지만, 느긋하게 일어나 해가 쨍쨍한 시간에 가게 문을 닫을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특별한 날들이었다.


비록 매출은 저조했지만, 덕분에 읽고 싶었던 책을 완독한 것만으로도 괜찮은 연휴였다.

오랜만에 배다리 그네의 흔들림에 몸과 마음을 한껏 맡기고 물멍을 할 수 있는 여유를 누린 나름 행복했던 연휴였다.




연휴를 잘 보냈는가 못 보냈는가는 내가 있었던 장소에 의해 결정되지는 않을 것이다.

어디에 있었든 내 마음이 여유롭고 행복했다면 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번 연휴를 알차게 잘 누린 것일까?

아니면, 황금연휴에 출근한 자영업자의 자기 합리화인 것일까?

그 무엇이면 어떠랴!!

황금연휴는 이미 지나갔고, 나는 다시 새로운 주말을 맞이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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