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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토끼 Jun 17. 2023

마음에 이는 파도

언제부턴가 끊임없이 마음이 들끓고 있다.

잠시의 고요조차 없이 쉬지 않고 출렁이는 바다처럼 그렇게,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가 마음속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낮에도, 밤에도 하얗게 포말을 일으키며 철썩대고 있었다.

그 파도를 진정시키려 틈만 나면 걸었다. 걷고 또 걸었다.


쏟아지는 햇살 속을, 

짙푸른 숲을, 

윤슬이 이는 저수지를, 

저마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를, 

눈에 들어오지 않는 글의 문단들 사이를, 

지저귀는 새소리와 불어오는 바람 사이를, 

돌고래 소리를 내지르는 아이들의 소란스러움 안을, 

잊힌 듯 지루한 시간 속을....


차라리 비라도 내려 주었으면 싶었다.

하지만, 요 며칠 날씨는 그저 숨 막히는 끈적임만 지닌 채 단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았다.

아침마다 덧없는 문단속만 반복했을 뿐이다.


어느 날 파도에 반짝이는 무언가가 휩쓸려 왔다.

그건 작은 퍼즐 한 조각이었다.

언제부턴가 무언가 소중하고, 잊어서는 안되는 어떤 걸 잃어버린 허전함이 불쑥불쑥 찾아오고는 했다.

아무 일 없이 평탄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가끔씩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도, 행복한 게 분명한 상황 속에서도 뭔지 모를 1%가 허전하고 쓸쓸하고 애잔하고 울컥했다.



분명 채워지지 않는 1%의 어떤 것이 나에게는 있다.

그런데, 그게 무엇인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 퍼즐의 색은 짙은 검은색이었다.

이 작은 한 조각 퍼즐 만으로는 내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왜 하필 검은색일까?

이 세상의 모든 예쁜 색을 다 칠하고 나면 검은색이 된다.

그렇다면 이 퍼즐의 검은색 밑에는 어떤 색들이 덧칠해져 있는 것일까?

한 겹 한 겹 벗겨내다 보면 그 색들을 알 수 있을까?


이렇게 출렁이고, 일렁이다가 언젠가 또 그 조각들이 파도에 휩쓸려 나에게 전해지기는 하는 것일까?

지금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이 파도를 다스리는 것일까?

아니면 이 파도 속으로 뛰어들어가야 하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이 파도를 즐겨야 하는 것일까?



눈을 감고 바람을, 새소리를, 공기를, 내 호흡을 바라본다.

어제 같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

이대로는 안된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내가 무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저, 반짝이는 검은색 퍼즐을 바라볼 뿐이다.

마치 나를 빨아들일 것 같은 이 깊고 짙은 검은색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퍼즐이 다 맞춰지면 그곳에는 어떤 형태의 그림이 있는 것일까?


뭔가 새롭게 변화한다는 건 너무도 어렵고 힘든 일이다.

알을 깨고 나와야만 하는 일이다.

지금까지의 나를 벗어던져야만 이룰 수 있는 일이다.

관습에 사로잡힌 익숙함에서 벗어나야만 하는 일이다.

타고난 소심함을, 쓸데없는 자격지심을 다 내려놓고 발가벗을 용기가 있어야 하는 일이다.

그런 나를 제대로 마주하고 포용할 수 있는 사랑이 있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내가 너무 밉고 싫다.

생각은 이 모든 걸 알고 있는데, 그걸 실천하는 일은 너무도 버겁다.

그냥 회피해 버리고 싶기도 하다. 그냥 도망쳐 버리고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미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가는 발목을 잡는 사람은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다.

수시로 자괴감에 사로잡히는 못난 나 자신이다.


자꾸만 쪼그라드는 나를 언제쯤 일으켜 세울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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