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엄마 집에 불났대~~"
오후의 나른한 몸을 깨우기 위해 막 커피를 마시려던 영은은 갑자기 울려온 동생 영주의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
친정엄마가 살고 있는 집은 지은 지 15년 정도 된 3층 건물이다. 다른 집들은 감나무며 대추나무가 있어 가을이면 감이나 홍시, 대추 수확을 하는데, 하필 친정엄마 마당에는 영은 생각에 별로 쓸모없는 산수유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다. 유럽식 문양의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1층에 4 가구, 2층에 3 가구가 살고 있는데 1,2층은 세를 주고 3층에는 친정엄마와 남동생 부부 가족이 살고 있다.
마침 남동생 부부는 농촌 한 달 살기 체험으로 지방에 내려가 있고, 집에는 세입자들과 팔순 넘은 친정엄마와 조카들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50대 아저씨가 홀로 사는 102호에 화재가 났다는 거였다.
겨울이라 다들 문을 닫고 실내에 있어 아무도 몰랐다고 한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그 아저씨가 일이 있어 나간 상태여서 인명 피해는 없었고, 마침 2층에 수리를 하러 왔던 기사님이 불난 걸 알고 119에 신고를 했던 거였다.
"경찰이랑 과학 수사대까지 다녀갔대"
영주의 말에 그나마 인명 피해가 없고, 불이 더 이상 번지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영은은 전화를 끊었다.
102호는 방 2개, 주방, 거실이 있는 구조인데 재작년 가을쯤 혼자 사는 50대 남자분이 이사를 왔었다.
깔끔한 성격으로 이사 오자마자 바깥쪽 벽과 바닥에 페인트칠까지 새로 했다고 들었다.
함께 사는 고양이가 한 마리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그 고양이가 이번 화재로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거였다.
이게 무슨 일이람. 그 아저씨는 화재가 나서 얼마나 황망할까, 같이 살고 있는 고양이가 죽었다니 얼마나 또 마음이 아플까.... 잠시 생각에 빠졌다가 영은은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어차피 다음 주에 친정엄마 생신이 있어 친정에 갈 예정이었다. 엄마 생신을 앞두고 이런 일이 발생한 거였다.
그 사이 영주가 친정엘 다녀왔다고 연락이 왔다.
102호를 들여다봤더니 안에 있던 가구들은 정리가 되었는지 비어있었고, 온통 그을음으로 덮여 있어 스산한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밖에는 마대자루가 몇 개 쌓여 있고, 창문이며 출입문까지 다 교체해야 할 것 같다는 거였다. 그 아저씨가 남동생 영호와 통화를 했는데, 자기가 책임지고 수리를 하겠다고 했단다.
그리고 자신의 부주의로 화재가 발생했다고 죄송하다고 사과까지 했다고 한다.
"그 아저씨 너무 안 됐어" "그러게 말이야~" 영은도 그가 처한 상황이 안타까웠다.
그런데, 며칠 뒤 점심시간 영주한테서 또 전화가 걸려왔다.
"언니, 그 102호 아저씨가 연락이 안 된대~, 혹시.... 도망간 건 아니겠지?"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영호가 화재 보험을 들어놔서 보험회사랑 통화를 했는데, 보험 청구를 하면 그 보험료를 화재 낸 사람한테 받아낸대. 그래서 보험 청구를 안 하고 직접 해결하면 좀 비용이 절감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 그 아저씨랑 통화하려고 하는데 전화를 안 받는대...."
"설마, 도망이야 갔겠어? 심란해서 전화를 꺼놨을 수도 있지. 같이 살던 고양이도 죽었다며...."
"그렇겠지?"
영은은 이상하게 마음 한편이 심란해졌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그 고양이와 살았다는 남자가 이상하게 마음이 쓰였다. 화재 났다고 어디 연락할 곳도 없는 사람이었던 걸까? 그동안 그 사람은 어디서 지낸 걸까? 가족은 있겠지?
어차피 이번 주말에는 친정에 가니 그때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 그리고 주말을 이틀 앞둔 영은은 다시 영주의 전화를 받았다.
"언니, 그 아저씨....
돌아가셨대...."
"뭐?" 너무 놀라 머리가 띵하더니 느닷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영주의 목소리도 떨렸다.
"영호가 발견했대. 오늘 올라와서 그 집 문을 열었는데, 그 아저씨가.... 죽어 있더래... 지금 경찰들 와 있나 봐~"
"이게 무슨 일이야~~ 아니, 왜~~~ 그 아저씨 가족은 있지?"
"나도 모르지. 부동산에서 계약서 쓸 때 이전 주소가 무슨 아파트였다고 하는 것 같던데... 부모님과 살다가 혼자 나와 살게 된 거 아닐까?~~ 어떡해~~ 너무 불쌍해~"
영주도 울먹거렸다.
이상하게 그 소식에 영은은 가슴 한편이 쿵 내려앉았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12월 이 추운 날, 하필 크리스마스가 얼마 안 남은 지금....
자꾸 그을음으로 가득한 방에서 한 남자가 자신의 목숨마저 저버릴 만큼 느꼈을 지독한 고독과 절망이 느껴져서 눈물이 멈추지를 않았다. 그날 밤 남편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그 사람 왜 죽었을까? 했더니 남편이 "희망이 없었나 보지" 힘 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영은은 주말에 친정에 도착해서 나머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다행히 경찰이 그 남자의 가족들과 연락이 닿았는데, 엄마도 계시고, 형, 누나, 동생들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 장례가 끝나지도 않아서 형이란 남자가 갑자기 영호에게 전화를 해서는 왜 전기장판에서 불이 나냐며, 원래 집이 오래돼서 그쪽 잘못으로 화재가 난 거 아니냐며 막무가내로 소리를 질러 대더란다. 그러면서 보증금 이야기를 꺼냈다고 한다.
영호는 너무 황당한 상황에 대꾸도 제대로 못하고 월요일 경찰서에서 경찰 입회하에 만나서 이야기를 하자고 전화를 끊었다고 했다.
그 남자의 죽음에 안타까워했던 영호는 형이란 사람의 막무가내식 떼쓰기에 질린 것 같았다.
장례나 끝나고 이야기를 하지, 그런 사람이 다 있냐며, 보증금도 금액이 많은 것도 아니고, 불난 거 때문에 오히려 돈을 더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갱년기와 함께 번아웃에 우울증을 앓고 있는 영호는 치유를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떠나 농촌 살기, 어촌 살기 등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주검을 발견했으니 트라우마로 남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영은이 영호에게 물었다. "너, 괜찮아? 그 아저씨 발견했다면서...."
다행히 영호는 괜찮다고 했다.
"겨울이어서 그나마 괜찮았던 것 같아. 만일 여름이었다면..... 그래도 가끔 그 모습이 한 번씩 생각이 나......"
어찌 그렇지 않을까? 이야기로만 들은 영은도 계속 생각이 맴돌아 힘겨운 날이었는데....
그래서 가족들이 있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놓이기도 했는데...
엄마의 생일은 케이크나 촛불도 생략하고 끝나고 말았다.
영은은 집에 돌아와서도 계속 그 남자가 생각이 났다.
나중에 경찰서에서 대면한 형이라는 남자는 꼬리를 내렸다고 한다.
번개탄을 피우고 자살을 한 남자 옆에서 유서가 발견된 것이다.
그 유서에는 자신의 잘못된 처신으로 불이 났고, 집주인분에게 죄송하다는 이야기와 고양이 옆으로 간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화재가 난 집은 청소도 그냥 일반 청소로 되는 게 아니라 그을음이랑 유독성 냄새 등을 없애는 진공청소를 해야 하기에 비용이 많이 나온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그리고 폐기물 처리비도 많이 나오고, 거의 다 탔기에 생각보다 복구 비용이 많이 발생되는 것 같았다.
창문이며, 문이며, 도배, 장판은 물론 싱크대까지 다 새로 해야 할 판이었다.
결국 돈 때문일까? 그 돈을 감당 못해서? 영은이 영주에게 물었더니 영은이 이야기했다.
"돈보다는 우울증 아니었을까? 용역이라도 가서 하루 일하면 일당은 받을 텐데, 가족들에게라도 도움받고, 일해서 벌면 되는데, 돈 때문인 것 같진 않아~ 원래 우울증이 있었던 건데 화재가 나고 다 잃고 나니까 그러지 않았을까?" 언제나 씩씩한 영주 다운 대답이었다.
영은은 뉴스 한 자락조차 차지하지 못한 한 남자의 죽음과 고양이의 죽음이 너무 서글프고 안타까워 자꾸 눈물이 났다.
"그곳에서는 고양이와 함께 편안하세요~~"
그래도 왠지 마음이 편하질 않다. 혼자 독립해 고양이와 함께할 행복할 세상을 꿈꿨을 한 남자가, 자신의 실수로 모든 게 타버린 그 황망하고 참담했을 심정의 그 남자가 잊히질 않았다. 얼마나 자신이 미웠을까? 불나기 전의 그날로 얼마나 돌아가고 싶었을까? 전기장판 코드를 뽑지 않은 그 순간의 자신을 얼마나 탓했을까? 자신 때문에 고통스럽게 죽은 고양이에게 얼마나 미안했을까? 그나마 그가 마지막으로 죽은 그곳이 어쩌면 자신이 살아생전 제일 편안했던 곳은 아니었을까?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맴돌아 마음이 내내 아팠다.
영은은 몇십 년 만에 처음으로 기부란 걸 했다.
계속 머릿속을 감도는 한 남자의 죽음에서 편안해지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기부를 하기 위해 클릭한 그 세상에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너무도 많았다.
당장 오늘 자 신문의 커다란 활자가 영은의 눈에 와 박혔다.
보건복지부, 고독사 실태조사 시행… 고독사 발생률 5년 사이 40% 증가
남성이 여성보다 4배 더 많이 발생, 30대 이하 ‘청년 고독사’도 늘어
극단적 선택 비율이 절반에 달해… 지역사회 연결 고리 구축해야
지금 이 순간에도 절망과 고독 속에서 자신의 목숨을 거두는 그 남자들이 어딘가 있을 것이다.
이 죽음은 오래도록 영은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남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