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들 진호가 S 시에 있는 직장으로 옮겨가고, 둘째 아들 진영마저 입대를 하자 '빈 둥지 증후군'으로 무기력하던 미영이 자신의 취미와 손재주를 살려 <피어나라> 꽃집을 창업한 지 5년 차가 되었다.
다음 달 3월이면 가게 계약이 만료가 된다.
전대미문의 코로나 사태는 미영에게도 비껴가지 않았다. 학생들이 대면을 못하는 상황이 오자 입학식, 졸업식, 스승의 날 등 꽃집 대목이 모두 사라져 미영 역시 어려움을 겪었었다.
그나마 근처 아파트 주민들 중 집안에서 식물을 키우는 집을 상대로 화분 관리도 해주고, 식물들도 판매하고, 생일 꽃다발 등을 만들어 팔면서 입소문으로 고정 단골손님들이 늘어나긴 했지만, 경기 침체로 매출이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오지는 않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갑자기 바뀐 가게 주인이 태클을 걸어온 것이다.
재계약을 하려면 '원래' 가격으로 하겠다는 거였다.
무슨 소리인가 하니, 지금으로부터 5년 전.
미영이 살던 P 시에 막 신도시가 형성되던 그해. 미영은 처음 가게 건물이 완공되고 제일 거품이 많을 때 이곳에 입점을 했다.
그때 가격이 지금 보증금의 두 배였고, 월세도 지금보다 50만 원이 많았었다.
이곳은 새로 개발된 신도시였기에 집이며 상가 가격이 서울을 능가할 정도로 높게 형성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신도시가 주는 앞으로의 발전을 생각해 미영은 조금 무리를 해서 이곳에서 꽃집 <피어나라>를 오픈하게 된 것이었다.
미영보다 6개월 앞서 들어왔던 같은 건물에 있는 바로 옆 수제 케이크 가게가 재계약을 할 때, 월세를 더 올려 받으려는 건물주와 케이크 사장님과의 밀당은 감정싸움으로 이어졌고, 결국 수제 케이크 사장님은 아예 다른 곳으로 이전을 해 버렸다.
그때 월세 인상 금액이 5만 원인가, 10만 원인가 그랬다고 들었다.
그 얼마 안 되는 돈 때문에 서로 감정이 상해 나가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공실이 된 상가가 쉽게 나가지를 않았고,- 미영의 기억으로 거의 1년 가까이 공실로 남아 있었다 - 이 상황은 오히려 미영에게는 유리하게 작용해서 6개월 뒤 재계약을 할 때, 미영이 아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음에도 주인 측에서 당시 시세에 맞춰 보증금의 반을 돌려주고, 월세도 50만 원을 내려주었다. 그런데 계약서가 문제였다.
새로 계약서를 쓰지 않고, 임차조건 추가 특약서라는 명목으로 이 계약의 변경이 한시적이고, 임차인이 미영으로 유지될 경우에만 유효한 특약이며 임차인 변경 시에는 이 특약이 유효하지 않은 거라는(결국 미영이 가게를 내놓게 되면 원래 계약한 금액으로 받겠다는) 계약서를 들이밀었다.
미영은 당장 보증금을 돌려받고 월세도 내려준다니 고민도 없이 그 계약서에 날인을 했다.
그런데, 그 후 주인이 이 건물을 매도하고 건물주가 바뀐 것이었다.
올해 3월 재계약을 해야 하는 상황에, 바뀐 건물주가 자신은 이 특약대로 한시적 계약이었으니 원래대로 지급해 달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였다.
지금 코로나 때보다도 오히려 경기가 안 좋은데 5년 전의 가격으로 올려달라니 이 무슨 황당한 상황이란 말인가! 미영은 주인에게 지금 경기도 안 좋고, 우리가 가게를 비우고 나가게 된다고 해도 절대 그 가격으로는 받을 수 없다는 걸 강조하면서 잘 생각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이런 상황이 되니 미영은 세입자로 을의 신세가 된 자신이 너무 속상하고, 울화가 치밀었다.
건물주의 한마디 말에 세입자는 잠도 못 자고 머리 터지게 고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 가게를 비워주게 되면 근처 비어 있는 상가로 옮겨야 하는 걸까?
가게를 새로 얻어 이전한다고 해고, 이사비며 인테리어까지 새로 하려면 몇백만 원은 지출될 게 뻔했다.
아마도 건물주는 이런 상황을 알기에 그렇게 돈 날리고 이사하기 싫으면 얼마라도 세를 올려 받으려고 하는 것이겠지?
주인에게 답을 기다리는 그 며칠이 너무 길었다. 주인은 코로나 한정으로 보증금은 일단 현재대로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한정이니 이 기간이 지나면 원래대로 올려 주어야 하고, 월세는 지금보다 50만 원을 더 올려 원래 전 주인이 처음 계약했던 금액으로 받겠다고 통보를 해왔다.
지금 부동산 경기가 안 좋아 매매고, 전세고 가격이 하락해서 난리인데, 이 건물주는 무슨 생각으로 5년 전의 가격으로 올리겠다는 것일까? 건물주 입장에서야 내 보내고 다른 세입자를 구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거겠지?
미영은 다시 한번 요즘 상황을 이야기하며 선처를 구했지만, 건물주의 대답은 자신들도 어렵다며 그 이상은 양보할 수 없다는 거였다.
미영은 주인과 대판 싸우고, 근처 비어 있는 상가들을 찾아보았다. 공실이 몇 군데 있긴 했지만, 마음에 딱 드는 자리는 없었다. 결국 근처 비슷한 평수의 공실로 옮기기로 했다.
그곳은 이전에 미용실이 있던 자리인데 몇 달째 비어 있는 곳이었지만, 보증금이나 월세가 지금 내는 수준과 비슷하게 형성되어 있었다.
정말 별 볼일 없는 이 P 시가 왜 서울보다 비싼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결국, 이사하면서 복비와 이사 비용과 새로 인테리어에 들어간 비용, 원상 복구한 비용을 합치면 차라리 월세를 올려주는 게 나은 선택이 아니었을까 후회까지 되는 미영이었다.
없는 사람이 죄인이지...... 세입자는 건물주 앞에 을일 수밖에 없었다.
미영은 꽃집이 있던 자리가 계속 공실로 남아 인정머리 없는 건물주의 속을 좀 태워줬으면 좋겠다는 심술 맞은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제발 저 자리에 들어오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빌었다. 건물주가 괜히 내보냈다고 후회하는 상황이 오기를 바라고 바랐다.
그런 미영의 복수심에 불타는 희망 사항이 이루어졌는지 그 코너 자리는 공실로 몇 개월 비게 되었다.
하지만 몇 달 후 미영의 옛 꽃집 자리에는 마카롱과 베이커리를 같이 파는 카페가 새로 오픈을 했다.
장사가 안돼 몇 달 만에 가게를 접는 사람도 많지만, 또 뭔가 새로운 희망을 안고 창업에 도전 하는 사람 역시 그에 못지않게 많은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얼마 후 부동산 임 여사를 만난 미영은 그 카페가 얼마에 들어왔는지 넌지시 물어보았다.
미영이 전 주인과 임시로 계약했던, 시세를 낮춰 지금까지 미영이 내 왔었던 그 금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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