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낮달

by 감성토끼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을 보니 괜스레 눈이 시리다.

느닷없이 울컥 눈물이 솟아오른다.

요즘 미정은 왠지 모를 감정의 소용돌이에 종종 휘말리고 있다.

남편과의 사이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결혼 10년 차, 중소기업 차장으로 있는 재훈과의 사이에 아들 민준이 있다.

민준은 올해 9살 초등학교 2학년이다.

재훈과는 같은 회사에서 만나 결혼한 사내커플이었다.

부서는 달랐지만, 사내 등산 동호회에서 만나 몇 번의 등산을 함께 했었고, 어느 날 미정이 산행을 하다 다리를 삐끗해서 불가피하게 하산을 해야 했을 때 같이 내려가 주었던 사람이 바로 재훈이었다.

그 후 가까워진 그들은 2년 뒤 가을에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하고 민준을 임신하고 출산하면서 온전한 육아를 위해 퇴사를 결심했다.

미정은 어렸을 때 부모님이 맞벌이라 항상 동생과 둘이 집안일을 챙겨야 했던 기억이 너무 싫어서 결혼하면 아이만큼은 꼭 자신이 키우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랬기에 육아맘이자 전업주부였지만 당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시간이 흐를수록, 민준이 자랄수록 그녀의 마음은 허전해져 가고 있었다.

민준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부터 미정은 다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열심히 여기저기 구직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몇 군데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보기도 했는데 어쩐 일인지 연락이 오질 않았다.

경력단절을 극복한다는 건 역시나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미정은 지난달부터 고용 지원센터에서 지원하는 내일 배움 카드 신청을 하고 바리스타 자격증 공부를 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마음이 허전하고 뭔가 잃어버리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괜스레 울컥하는 일이 잦아져 당황스럽기만 했다.

벌써 갱년기가 오는 것일까? 아직 마흔도 안된 나이에 벌써 갱년기는 아닐 텐데....



무더운 여름이 지나며 환절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갑자기 온도가 확 내려가 당황스러운 날씨 때문일까?

가을이 오기도 전에 겨울이 다가오기라도 하려는 듯이 요즘 바람은 쌀쌀했다.

그런 어느 주말, 재훈이 화장실에 들어간 사이 재훈의 폰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미정은 어떡할까 생각하다 계속 벨 소리가 울리자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 말씀하세요~"

"어? 죄송해요~ 잘못 걸었습니다."

여자였다. 그것도 앳된 여자의 목소리였다.

잠시 후 재훈이 화장실에서 나왔고, 미정이 "방금 전화 왔었는데, 내가 받았더니 끊더라~" 이야기를 했다.

재훈은 휴대폰을 들여다보더니 "잘못 걸려온 전화 아니야? 모르는 번호네. 업무전화면 또 하겠지 뭐." 하면서 무심하게 이야기했다.



그날 이후부터였던 것 같다.

재훈의 행동이 뭔가 수상쩍어 보이는 기분이었다.

요즘 들어 야근도 부쩍 잦고, 피곤하다며 잠자리도 피하기 일쑤였다.

미정은 왠지 신경이 곤두서기 시작했다.

혹시 재훈에게 여자가 있는 건 아닐까?

얼마 전 걸려왔던 전화가 자꾸 생각났다.

뭔가 고요한 샘에 잉크 한 방울이 톡 떨어진 기분이었다.

그 잉크는 여리고 작게 파장을 일으키며 점점 번져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재훈을 봐서인지 재훈이 아침에 세수를 하고 로션을 바르는 모습도, 거울을 보면서 넥타이를 매는 모습도 행동 하나하나가 다 수상해 보였다.

"오늘은 몇 시에 들어와?"

"오늘도 좀 늦을 것 같은데...."

"왜 매일 늦어?"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제대로 안 풀려서, 잘못하면 기한을 못 맞출 거 같아 다들 비상이야.

주말에도 출근해야 할지도 몰라"

재훈은 늦었다며 현관문을 쾅 닫고 나갔다.



바리스타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연히 바라본 하늘은 눈이 부시게 파란색이었다.

그 유난히 파란 하늘에 낮달이 희붐하게 떠 있는 게 아닌가!

"어머, 낮달이네...."

그러고 보니 하늘을 보는 게 얼마 만이었던가!

참, 하늘 한 번 쳐다볼 마음의 여유조차 없이 살았구나!!

시간을 보니 조금 있으면 민준의 수업이 끝날 시간이었다.

오랜만에 우리 민준이 마중을 해볼까, 미정은 학교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하늘에 떠 있는 낮달이 미정을 계속 따라오고 있었고, 오랜만에 낮달을 본 미정은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학교 앞에 도착하니 엄마들이 서성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잠시 뒤, 아이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 속에 실내화 가방을 힘차게 흔들며 나오는 아들 민준이 보였다.

"민준아!"

"어? 엄마다. 엄마!!!"

자신을 향해 환하게 웃으며 달려오는 민준의 머리 위로 낮달도 따라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