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라는 게 이렇게나 복잡한 일이었구나, 민영은 새삼 생각했다.
이곳에 이사 올 때만 해도 그냥 포장 이사로 다 맡겨서 신경 쓸 게 없었다.
지금은 한 푼이라도 돈을 아껴보려고 이리저리 재고 계산을 해야 하니 복잡한 거지....
갑자기 한숨이 나오는 민영이었다.
10년 전 살던 아파트를 처분하고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하던 날....
집에 있던 물건들이 안 들어가 식탁이며, 소파며, 거실 장식장이며 새로 산지 얼마 안 된 물건들을 나눠줄 건 나누고, 버릴 건 버리고 그렇게 이삿짐을 줄이고 줄여 이사를 나왔었다.
넓은 집에서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하는 민영이 안돼 보였던지 이삿짐센터에서 나온 분들이 꼭 다시 넓은 집으로 이사하게 될 거라고 위로의 말을 해 주셨다. 그 따뜻한 한마디 말에 민영은 울컥 눈물이 쏟아져 나오는 걸 참느라 입술을 아프게 물어야 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났건만, 이제는 포장 이사비가 아까워 일반 이사를 생각하고 있다.
사실 지금은 딸이 서울로 독립해 나간 상태라 짐이 많이 줄어서 포장이사를 구태여 할 필요가 없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이사할 생각으로 집의 가구들을 둘러보니 장롱이며 서랍장이며 침대까지 너무 오래되어 이번에 이사하면서 버려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한동안 미니멀라이프가 유행하기도 했지만, 민영은 구태여 미니멀라이프를 추구할 필요도 없이 저절로 미니멀라이프로 살 수밖에 없었다.
이사를 하지 않았다면, 그냥저냥 살았을 터인데, 이 짐들을 모두 옮겨 새로운 곳에서 생활을 한다고 생각하니 들뜬 옷장이, 한두 개 이가 맞지 않는 서랍장이, 살짝 내려앉은 TV 거실장이, 오래되어 한쪽이 꺼진 소파가 모두 버려야 할 폐기물 덩어리로 보이는 것이었다.
어차피 이사하는 김에 옷장에 꽉 차있는 옷들도 정리를 하기로 했다.
언제 적 옷이었는지, 몇 년 동안 손 한번 안 탄 옷들이 장롱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동안 한 번도 들춰보지 않은 무거운 앨범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삿짐 업체가 정해지고 나서 민영은 매일 버리기를 실천했다.
몇 년째 쟁여만 놓고 입지 않던 부피 큰 겨울옷부터, 이건 왜 아직까지 버리지 않고 옷장을 차지하고 있었던 건지 모를 결혼 전에 입었던 옷까지 모두 꺼내 놓았다. 어쩜 옷들은 세월이 무색하게 그대로일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이 모든 것들이 포장이사를 했기 때문이었다.
그분들이 옷장에 들어 있던 걸 옮겨와 그대로 넣어 두었고, 그동안 한 번도 정리란 걸 하지 않은 채로 필요한 옷들만 꺼내 입었기 때문에 아직까지 이런 옷들이 남아 있었던 거였다.
살림이 줄어드니 이렇게 정리할 여유가 생기고 나름 좋은 점들이 있구나 싶었다.
이번에 이사할 집은 어쩌다 보니 지금보다 넓은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사실 여기 있는 짐을 모두 가져가도 썰렁해 보일 지경이긴 했다. 하지만 가구를 바꾸고 새로 장만하기에는 망설여졌다.
물론 조금 무리를 하면 할 수 있기는 했지만,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보여지는 것에 연연하지 말자는 그런 마음도 있었다.
진정한 미니멀라이프를 실행해 보는 거지 뭐~
요 몇 년 동안 민영은 모든 걸 긍정적으로 보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의 삶은 피폐해졌을 것이다.
남편 정식의 주식투자 실패로 갑자기 모든 것이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고 민영은 심각하게 이혼을 고려해 본 적도 있었다. 하루아침에 곤두박질친 기울어진 경제 상황을 회복하는 데는 정말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나마 바닥을 치고 이제서야 겨우 조금씩 회복하는 중이었다.
그러기까지 민영은 마음고생을 참 많이 해야 했다. 하지만 세상 일이라는 게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는 것이라는 걸 배웠다. 이 어려움은 민영의 생각과 마음가짐을 바꿔 놓는 계기가 되었다.
내 환경이 바뀔 수 없다면 나를 바꾸면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하루하루 힘든 날들을 버티고 견딜 수 있었다. 덕분에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고, 부정적인 마음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꿀 수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조금씩 민영을 둘러싼 환경들이 바뀌고 있는 걸 느끼는 중이다. 경제적인 상황도 조금씩 채워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랬기에 이사를 하면서 목돈을 써야 하는 것이 망설여지고 있었다.
고민이 깊어가던 어느 날, 동생 민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언니, 이사한다며? 보니까 언니네 옷장이랑 가구들 오래돼서 다 버리고 새로 사야 할 것 같던데, 내가 사줄게.... 그리고 엄마도 언니한테 선물해 준대. 이번 기회에 낡은 가구들 싹 바꿔!!"
정말 눈물 나게 고마운 동생 민희였다.
이 아이는 어쩜, 이렇게나 마음이 깊을 수가 있을까?
그렇다고 민희네가 돈이 아주 많은 잘 사는 집이냐 하면 절대 그렇지가 않다는 사실이다.
그저 작은 집을 자가로 가지고 있는 정도이다. 물론 빚은 없다.
동생 민희는 빚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사람이다.
어찌 보면 답답해 보일 수도 있다.
요즘은 레버리지를 이용해서라도 가능하면 큰집에서, 가능하면 많은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세상이던가! 모두 더 조금이라도 많이 갖기 위해 애쓰는 세상이 아니던가!
그런데 민희는 자기 가족이 살기에 조금은 작은 집이 살기 딱 좋단다. 요즘같이 난방비가 많이 오를 때는 더더욱....
굳이 빚을 내서 큰집으로 이사하기도 싫고, 그 빚을 갚으려고 아등바등 살기도 싫단다.
너무 많은 돈을 갖는 것도 싫고, 그렇다고 돈 때문에 쪼들리며 사는 것도 싫다고 했다.
적당한 지금이 좋다고 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안분지족(安分知足),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이 아닐까?
나 같으면, 나와 민희의 형편이 바뀌었을 때 내가 먼저 선뜻 이런 제안을 할 수 있었을까?
자신이 없다. 민희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일까?
그 이쁘고 따뜻한 마음 씀이 너무도 고맙고 또 미안해서 많이 울었다.
명색이 언니라고 민희에게 경제적이든, 심적이든 도움이 되어 준 적이 있었을까?
그저 먹고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늘 도움만을 받아 왔던 못난 언니였다.
민영 역시 그다지 돈에 대한 욕심이 많지 않은 편이었다. 그랬기에 지금의 경제 상황을 맞이했을지 모르겠다.
지금 내 삶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창조한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너무나 착한 동생에게, 고마운 주변 사람들에게 지금까지 받은 걸 모두 돌려주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 아니 지금 받은 것의 10배, 100배로 갚아주고 싶었다.
그리고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돕는 삶을 살고 싶어졌다.
그래서 꼭 경제적 독립을 일구고 싶다는 소망이 자라났다.
누구보다 선하고, 포근한 마음을 가진 동생을 둔 것만으로도 민영은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민희의 삶이 마냥 풍요로운 삶인 건 아니다.
남편 때문에 속앓이를 하고, 몸이 약한 아들 때문에 늘 마음을 졸이고 산다. 그럼에도 그런 고난은 민희의 곱고 깊은 심성을 조금도 흐려놓지 못한다. 그렇기에 민희가 더 대단한 건지도 모르겠다.
흐린 하늘에서 펑펑 서설(瑞雪)이 쏟아져 내린다.
눈송이가 점점 커지면서 시기(猜忌)와 욕심에 가득 찬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는다.
내리는 눈이 꼭 민주를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민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