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 끝자락.
P 시에서 문구점을 하는 정순은 가끔 천사를 만난다.
천사를 매일 만나면 좋겠지만, 가끔이라도 만날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
오늘도 천사가 나타났다.
전대미문의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매출 부진도 이겨낸 정순이지만, 요즘 경기가 불황이라는 걸 피부로 느끼고 있다. 언제부턴가 매출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가게 월세를 올려줘야 하는 일이 발생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가끔 어쩌다 한 두 명의 손님들이 와서 매출을 올려주는 일이 발생하자, 그런 손님들이 너무 감사했다.
딸하고 카톡을 하다가 "오늘 천사가 다녀갔어~~" 하고 표현한 게 시작이 되어 정순은 문구점에 매상을 올려주는 손님을 그때부터 천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천사들은 다양한 모습을 하고 나타난다.
링 바인더를 몇 개씩 사 가는 남자분의 모습으로, 이것저것 문구용품을 고르는 젊은 엄마의 모습으로, 어린이집 선물을 고르는 단골들의 모습으로, 손녀와 함께 들러 말없이 계산해 주는 인자한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요즘은 세뱃돈으로 사고 싶은 카드나 장난감을 사는 아이들의 모습으로 가게를 다녀간다.
오늘은 방학 전에 언니 하린이랑 같이 자주 오던 하연이가 천사가 되었다.
경기가 좋지 않은 지금, 게다가 방학이라 당연히 매출이 반 토막 나는 요즘...
방학 전에는 하루에 한 번꼴로 들르던 하린, 하연 자매도 방학을 하자 얼굴을 못 본 지 한참 되었었다.
사는 아파트가 학교 근처가 아닌 조금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동생 하연이가 오랜만에 문구점을 들른 것이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죠?"
"안녕? 정말 오랜만이네."
하연이는 익숙하게 문구점 문을 열고 들어와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그리고, 몇 가지 물건들을 가져와서 계산을 했다.
그러고는 나가기 전, 집에서 가져온 눈 내리는 워터볼을 선물이라며 정순에게 내밀었다.
느닷없이 내미는 하연의 선물을 차마 뿌리치지 못하고 고맙게 받는 정순이었다.
정순의 문구점은 요즘은 사라져가고 있는 초등학교 앞 작은 소매점이라 사실 물건 구색이 많이 떨어지는 편이다.
손님 입장에서 보자면 종류도 몇 가지 안되고, 많은 양을 구비해 놓은 것도 아니어서, 어쩌다 대량으로 찾는 손님들은 그냥 돌아가기 일쑤이고, 가격적인 면에서도 메리트가 별로 없는 정말 매력 없는 문구점이다.
그런 문구점에 이렇게 하나 둘 천사들이 나타나다니....
사실 정순의 문구점에는 특별한 점이 한 가지 있긴 하다.
그건 바로 정순이 포스기 안쪽 모니터 한쪽에 붙여 놓은 '손님을 위한 확언'이다.
정순은 매일 가게 문을 열고 계산대에 앉을 때, 또는 손님이 없는 조용한 시간마다 "손님을 위한 확언"을 중얼거리고 있다.
이 확언은 조셉 머피의 "부의 초월자" 책의 한 구절이다.
무한한 지성은 나를 인도하고 번영하게 하여 영감을 줍니다.
나에게 치유력이 담긴 사랑이 흘러나와 모든 고객에게 전해집니다.
영적인 사랑이 가게 문으로 들어오고 나갑니다.
가게에 오는 모든 사람은 축복받고 치유되며 영감을 얻습니다.
무한한 치유력이 곳곳에 넘칩니다.
가게를 찾아주신 모든 고객들이 건강하고, 번창하며, 행복합니다.
제일 끝줄은 정순이 첨가한 문장이다.
정순은 가게를 찾는 모든 손님들이 참 고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근처에 대형 매장이나, 없는 것이 없는 게다가 가격마저 환상적인 ㅇㅇㅇ가 자리하고 있어 안 그래도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음에도 이곳을 찾아와 주는 손님들은 모두 고마운 존재들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니 고객들을 어찌 천사라고 표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정순은 오늘도 마음을 담아 확언을 읊조린다.
오늘은 어떤 천사를 만나게 될지 기대하면서 말이다.
오늘도, 내일도 P 시의 어느 문구점에는 천사들이 다녀갈 것이다.
저 하늘 높은 곳 뭉게구름 위에서 정순의 문구점을 내려다보는 누군가가 있었다.
그의 등 뒤에는 찬란한 은빛 날개가 펄럭이고 있다.
오늘은 어떤 모습이 좋을까? 고민하며 익살스러운 미소를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