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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가 사는 법

by 감성토끼

영은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 입주하기 전까지, 남편이 군인이나 교사가 아님에도 이사를 참 많이 다닌 편이었다.

포장이사가 보편화되기 전에는 이사를 많이 하다 보니 쓸데없는 재능이 발휘되었다.

포장 솜씨가 얼마나 야무지고 깔끔한지 이삿짐센터에서 오신 분들이 감탄을 할 정도였다.


이사 횟수가 많다는 건 그만큼 다양한 인간 군상을 접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대부분의 주인분들은 평범한 보통 분들이었고, 옥상에 텃밭을 재배하는 한 주인 아주머니는 때마다 상추며, 푸성귀들을 나눠 주시기도 했다.


그런데, 질량 보존의 법칙처럼 사람의 만남에도 그런 법칙이 존재하는 게 아닌가 싶은 일이 발생한 적이 있다.

좋은 사람을 만났으니 나쁜 사람도 그만큼 만나게 되는 건 당연한 이치인 것일까?

정말 인생에서 다시는 만나기 싫은 그런 사람을 집주인으로 만나게 된 적이 있었다.


영은이 아파트로 이사 오기 5년 전의 일이다.

당시 살고 있던 상가주택의 전 주인은 영은이 사는 S 시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유치원을 운영하는 원장님이었다. 이곳에 살다 몇 년 전에 이사했다고 들었다.


영은은 그때 S 시에서 작은 베이커리 카페를 막 창업했을 때였다. 카페 창업은 생각보다 이것저것 돈이 많이 들어가, 대출을 받았음에도 계획보다 초과가 되었다. 그래서 가게에 투자하느라 아파트보다는 세가 저렴한 상가 주택을 알아보게 되었고, 마침 가게와 멀지 않은 곳의 적당한 전세가로 나온 집을 만날 수 있었다.


그때 전세 계약을 하려던 영은이 주인분에게 양해를 구하고 천만 원을 월세로 돌리게 된 것이다. 주인분은 상황을 이해해 주고 흔쾌히 그렇게 하라고 편의를 봐 주었다.

그 후에도 갑자기 주방 천장에 물이 새는 바람에 연락을 했더니 차로 1시간 40분 거리에 살고 있음에도 남편과 함께 직접 찾아와, 불편하게 해서 미안하다며 해결을 해 주고 간 적도 있었다.


그런데 얼마 후 주인분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거리가 멀어 관리가 힘이 들어 얼마 전에 건물을 다른 사람에게 매매를 했다는 것이었다.


© RyanMcGuire, 출처 Pixabay


그리고 바뀐 주인이 바로 영은이 잊을 수 없는 이 남자였다.

새로 계약서를 쓰러 온 남자는 70대 초반에 얼굴에 혈색이 돌고, 평균 키에 다부져 보이는 인상으로 부인과 둘이 시장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노라고 했다.


당시 상가건물 1층에 있는 가게를 내보내고, 자신이 그곳에서 돼지갈빗집을 할 거라는 남자는 젊은 시절 각종 알바, 부동산 중개인 등 안 해 본 일이 없다는 둥, 부인이 자신보다 4살 연상이라는 둥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영은에게 주저리주저리 털어놓았다.


그 후 1층에 있던 족발집이 나가고 리모델링 공사를 하는 모양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뚝딱 뚝딱 위잉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한 달 정도면 공사가 끝나겠지... 그때까지는 소음을 참는 것밖에는 도리가 없어 보였다.

어차피 영은은 아침이면 출근을 하고, 저녁에 집에 들어가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런데, 공사 기간은 한 달이 지나도, 두 달이 지나도 심지어 장마철이 끝나도 완공이 되지를 않고 지지부진하기만 했다.

그 사이 가끔 시끄러운 소리로 주인과 일하는 분들이 싸우는 소리가 출근길에 들려왔다.


202호도, 301호도 계약이 만료가 되어 모두 비게 되었고, 영은만 기한이 남아 계약을 유지하고 있는 터였다.


상가는 공사가 중단되었는지 한동안 잠잠했고, 대신 202호 공사가 시작되는 모양이었다.

옆에서 드릴 소리가 들려오고, 시끄러운 소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또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돈 문제가 걸려 있는지 거친 소리들이 왔다 갔다 했고, 급기야는 몸싸움으로까지 번지는 것 같았다.


© chrisstenger, 출처 Pixabay


그리고, 8개월 후 아직도 1층 상가는 공사 중이었다.

공사가 계속 연결되지 못하고 하다가, 중단됐다, 다시 시작하다 중단됐다 이런 식으로 진행이 되고 있었다.


영은의 계약기간이 끝나고 재계약을 하는 상황이었는데, 재계약은 월세가 아니면 안 된다는 거였다.

기한을 줄 테니 월세 계약이 아니면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라고 했다.

다달이 나가는 가게 세도 있던 터라 영은은 월세를 많이 내기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지금 다른 곳으로 옮기려면 이사 비용이며 오른 월세를 감당해야 했기에 어떻게든 주인을 설득해서 20 정도만 더 올리기로 합의를 하고 겨우 재계약을 했다.

그리고, 이사 비용을 아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 순간의 선택을 두고두고 후회를 하게 될 줄 영은은 그때는 알지 못했다.

(다음주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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