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이면 끝날 1층 상가 공사가 8개월에 걸쳐 끝나고 3층에 그 남자 부부가 이사를 왔고, 1층에는 돼지갈빗집이 생겼다. 그사이 옆집 202호에는 두 아이를 둔 젊은 부부가 새로 이사를 왔다.
영은이 사는 집은 1층에 가게가 있고, 2층에 2가구, 3층에 1가구가 있는 상가주택이었다.
그래서 전기세는 따로 나오지만, 수도요금은 1층 상가만 따로 나오고 세 가구가 합해서 요금이 합산되어 나오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그동안 수도요금은 영은이 사람 수로 나누어 계산을 해 왔었다. 영은은 남편과 두 명이 살고, 202호가 네 명이니 수도요금을 사람 수로 나누고 인원수만큼 곱해서 계산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남자가 들어오고 나서 갑자기 가구 수로 계산을 한다는 거였다.
너무 황당해서 사람 인원이 다른데 왜 그렇게 하냐고, 지금까지처럼 사람 수로 계산을 해 달라고 영은이 그 남자에게 따졌다.
그러자, 그 남자는 무슨 그런 계산이 있느냐며 한술 더 떠 이제부터는 관리비를 내라는 거였다.
그동안 따로 관리비를 낸 적이 없었지만, 주인세대가 들어와 관리를 해주면 좋으니 영은은 반대하지 않았다.
어지르는 사람은 없었기에 계단 청소를 따로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관리를 하면 좋겠다 싶은 생각은 있었다. 하지만, 관리비를 꼬박꼬박 받은 그 후에도 계단 청소를 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이 남자의 횡포는 거기서 끝나지를 않았다. 공동 전기세가 엘리베이터가 없는 3층 건물이기에 많이 나와야 한 달에 천 원, 이천 원 정도 나오는 거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남자네가 이사 온 후로는 아무래도 1층 상가 손님들이 화장실을 사용하면서 왔다 갔다 하니 더 나올 수는 있겠지만 그래야 3천 원이 넘지는 않을 거였다.
그런데, 공동 전기세를 한 달에 한가구당 5천 원을 청구하는 거였다.
그나마 수도요금을 영은의 이야기대로 사람 수로 계산하는 게 다행이다 싶었다.
카페에 진상 손님을 상대하느라 영은은 힘이 빠질 대로 빠져 퇴근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가게 입구에 있던 주인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 남자는 다짜고짜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월세가 너무 싸니, 월세를 올려주던지, 아니면 이사를 나가라는 거였다.
영은은 너무 어이가 없었다.
계약서까지 작성했고, 아직 이사를 하려면 1년도 넘게 계약기간이 남아 있는데, 갑자기 뜬금없이 월세를 올려 달라니, 아니 이사를 나가라니 이 무슨 개소리인가 싶었다.
안 그래도 기운이 빠져 대꾸할 힘도 없는데, 이 남자가 무슨 헛소리를 이렇게 당당하게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영은은 화가 나서 계약서대로 하라고, 부동산 중개업 한거 맞냐고 물어보았다.
부동산 중개인을 했다면 그런 어이없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싶었다.
뭐라 뭐라 하는 그 남자의 말을 무시하고 영은은 집으로 올라갔다.
어느 날, 주방 쪽에서 또 물이 새고 있었다.
영은은 주인 남자에게 전화하기가 껄끄러웠지만, 어쩔 수 없이 전화를 했다.
다행히도 그 남자가 내려와 천장을 보더니 수리를 해야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출근하고 집이 비기에 영은은 어쩔 수 없이 그 남자에게 집 비밀번호를 알려주었다.
점심시간, 영은은 빠뜨리고 두고 온 재료가 있어 집에 들렀다가, 마침 수리를 마치고 나가는 수리기사 아저씨를 만나게 되었다. 영은은 이제 물이 새지 않냐며 물어보았고, 시원한 음료 한 잔을 대접해 드렸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그 아저씨에게서 왜 1층 상가가 장장 8개월에 걸쳐 수리를 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한 곳에 수리를 전적으로 의뢰를 한 것이 아니라 바닥공사, 전기공사 이런 식으로 팀을 나눠서 일을 진행시켰던 것 같았다. 한 팀이 일이 끝날 때쯤 갖은 트집을 잡아 정산을 제대로 해주지 않고 공사 금액을 후려치든지, 그게 먹히지 않는 사람들과는 싸움을 하고 고소고발까지 갔다고 한다.
그래서 그동안 그렇게 공사가 지지부진하고, 싸우는 소리가 들렸구나 이해가 되었다.
그렇게 재계약 기간이 끝나갈 무렵 영은은 계약일을 채우기 전에 미리 이사를 나가게 되었다.
그 남자에게는 이미 한두 달 전에 이사할 날짜를 통보해 주었다.
그리고 이사 날, 정말 그 남자는 끝까지 최악이었다.
보증금을 돌려받아야 하는데, 돌려주어야 하는 돈을 다 지급하지 않고 백만 원을 빼고 주는 게 아닌가!
이삿짐은 다 실었고, 이삿짐센터 직원들은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왜 백만 원을 빼냐고 하니, 수도요금과 공동 전기세, 전기 요금, 가스 요금을 정산해야 한다는 거였다.
전기 요금은 한전에 그동안 사용한 양을 불러주고 직접 입금하면 되고, 가스 요금도 기사분이 오시면 정산해서 직접 드린다고 하니, 어떻게 믿느냐는 거였다. 그러면서 자기가 확인을 해서 오후에 정산을 하고 잔액을 돌려주겠다는 거였다.
갑자기 머리가 하얘지면서 대꾸할 말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더 이상 이삿짐센터 직원들을 기다리게 할 수도 없고, 저쪽 세입자분도 기다리고 있을 터여서 잔금 백만 원을 남기고 어쩔 수 없이 이사를 하고 말았다.
그날 오후 그 백만 원에서 정산한 금액을 돌려받기 위해 전화를 했더니 약속이 있어 다른 곳에 와 있다며 나중에 이야기하자며 전화를 끊는 게 아닌가! 그 돈을 다시 돌려받기 위해 며칠 동안 속앓이를 해야만 했다.
결국 일주일 후에야 수도요금, 공동전기 요금, 전기 요금, 청소비 명목으로 내가 사용한 금액보다 두 배 많은 20만 원을 뺀 나머지 금액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이 S 시의 월세는 선불이라 날짜를 채우지 않고 일찍 이사를 나갔기 때문에, 원래대로면 남은 일수만큼 월세를 돌려받아야 하는 거였지만, 이 남자에게는 어림없는 이야기였다. 그럼 그냥 계약일에 이사를 나가지 누가 일찍 나가라고 했느냐고 헛소리를 해대니 정말이지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도저히 상식이나 원칙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나마, 나머지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만 했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바로 이게 그 남자가 살아가는 법이었다는 것을....
그 집의 공사도 그런 식으로 완성될 수 있었다는 것을....
영은은 그저 운 나쁘게 정말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최악의 사람을 만난 것뿐이었다.
이 세상은 이런저런 사람들로 구성되어 굴러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그 식당은 지금 어찌 되었을까?
어쩌면, 원칙을 지키며 바르고 상식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보다 오히려 잘 살아가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왠지 저 깊숙한 곳에서 씁쓸함이 치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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