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따뜻하고 기분 좋은 바람이 부는 날이면 늘 같은 생각부터 든다. 와... 빨래 잘 마르겠다. 모아놓은 빨랫감을 전부 빨아서 널고 싶다.
날이 좋으니 피크닉을 간다거나 자전거를 타기보다 일단 밀린 손빨래를 한다. 세탁기에 돌리기 애매한 옷들을 중성세제로 손빨래 후 잘 말려둔다. 햇빛에 바짝 말라가는 빨래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든든하고 뿌듯해진다. 건조기보다 햇빛 건조를 선호하는 건 아마 옷을 빨고 햇빛에 말리는 모든 과정을 사랑하기 때문일 거다.
빨래 바구니에 넣어두면 언젠가 세탁되어 돌아오던 어린 날을 지나, 타지에서 혼자 살기 시작했다. 일본 시골에 있는 대학으로 교환학생을 간 것이다. 밖으로 나가도 한국말이 들려오지 않고 수업 첫날이 되면 모두가 나를 신기한 듯 쳐다봤다. 무슨 말을 하려다가도 일본어가 생각이 안 나 입을 다물었다. 자연스럽게 말했다고 생각했건만 어디 나라에서 왔는지 물어왔다. 아무리 가깝고 비슷한 나라였어도 난 이방인이었다. 학교 가면 친구 있고 집에는 가족이 있던 내가 처음 느껴본 외로움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기숙사는 일인실이었다. 사실 친하지 않은 룸메이트보단 혼자가 낫다고 생각했지만, 외로움은 증폭되었다. 하루 종일 한 마디도 안 하는 날도 왕왕 있었다. 하지만 외로움과는 별개로 나는 내게 주어진 방을 제대로 관리해야 했다. 아무도 내 방을 대신 치워주거나 떨어진 샴푸를 사다 주지 않는다. 가족과 함께 살며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내가 생활력 만렙, 집밥 이선생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생필품을 마련하고 백종원 김치찌개를 검색해가며 끼니도 잘 챙겼다. 숨어있던 아빠의 청소 유전자가 발현하여 1년 내내 열심히 청소기를 돌리고 주기적으로 화장실 청소도 했다. 어찌어찌 지내다 보니 시간이 흘렀고 빨랫감이 쌓여갔다. 이제는 뭉쳐놓은 수건들을 빨아야 한다. 그런데 나... 빨래를 돌려본 적이 없다.
일본 교환학생 시절 찍은 빨래 사진. 기숙사는 남향이라 햇빛이 아주 잘 들었고, 일본 국민 세제라는 '보르도'에서는 포근하고 달콤한 향이 났다.
기숙사는 층마다 코인 세탁기가 있었다. 100엔짜리 동전을 넣으면 약 30분간 세탁기가 돌아간다. 코스도 없고 물 온도 조절 없고, 그냥 냅다 돌아간다. 그래서 나도 냅다 넣고 돌렸다. 드럭스토어에서 적당히 고른 세제와 섬유유연제를 넣고 돌린 빨래에서는 좋은 향이 났다.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수건들을 보니 마음도 편해진다. 잘 말라서 개어놓으면 당분간 수건 걱정할 일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든든했다. 친구도 가족도 없이 외로웠던 나의 소확행이 그렇게 생겨났다. 날이 좋은 날엔 옷장을 뒤져 빨래 거리를 찾아냈고, 드럭스토어 세탁 코너 앞에 한참 서서 섬유유연제를 골랐다. 눈치 보며 몰래 향도 한 번씩 확인하고 언제나 대용량 리필용을 사 왔다. 매번 정량의 10배 가까이 되는 섬유유연제를 들이붓고 세탁한 결과 내 방에서는 언제나 빨래 냄새가 진동을 했고 내가 머물다 간 자리에도 빨래 냄새가 났더랬다. 한국에 돌아와 다시 세탁을 해도 일본 섬유 유연제 향이 옷에 남아있는 것을 보면 말 다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유연제를 낭비한 걸까? 그래도 그 덕분에 유학에 대한 기억이 마냥 외롭지만은 않다. 포근하고 향기로웠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빨래 예찬은 계속되었다. 오랜만에 햇빛이 뜨는 겨울날에는 일어나자마자 빨래를 돌렸다. 여름이 되면 외출 후 집에 오자마자 손빨래를 해버리고, 반나절만에 마른 티셔츠들을 보며 흡족해한다. 장마철이 되면 빨랫감을 이고 지고 빨래방에 간다. 하도 빨래를 좋아하니 해가 좋은 날이면 친구들에게 어김없이 연락이 온다. 빨래했니? 대개 이런 경우 이미 세탁기가 돌아가거나 건조대에 널고 있는 상황이 많다. 나도 이런 내가 웃기다. 도대체 왜 이렇게 빨래를 좋아하는 걸까?
거실에 앉아 널어놓은 빨래를 보며 책을 읽으면 더 이상 행복할 수가 없어진다. 깔끔하게 살기 위한 내 노동력의 결과물이 저기 저렇게 바람을 쐬고 있다. 널어놓은 빨래들을 보면 이번 주 내 생활이 보인다. 운동을 열심히 한 주엔 색색깔 발레복들과 타이즈가 누워있고, 외출을 거의 안 한 주에는 양말이 없다. 실제로 온 가족이 코로나에 걸려 격리 중이던 주는 수건과 속옷이 빨래의 전부였다. 놀고먹는 백수에서 잠시 출근하는 인턴으로 레벨이 올라가자 옷장에 잠자고 있던 셔츠들이 전부 세탁되어 마르길 기다리고 있었다. 빨래는 내가 살아 움직인다는 증거였고 삶을 정돈하기 위한 움직임의 실증이었다. 뮤지컬 <빨래>의 넘버 중에도 이런 가사가 있다. 뭘 해야 할지 모를 만큼 슬플 땐 난 빨래를 해, 살아갈 힘이 남아있는 우릴 돌아보지! 매일 깨끗하게 씻고 로션을 바르고, 텀블러에 물을 담아 챙겨마시는 모든 행위가 내가 나로 살아가게 만드는 작은 노동이다. 그중 빨래는 세탁기를 돌리고 마른빨래를 개기까지 며칠이 걸린다는 점에서 꽤 수고롭다. 그래서 더 뿌듯하고 기쁘다. 보송한 옷을 걸치기 위해 오늘도 기꺼이 빨랫감을 구분한다.
우리 집 빨래 대장인 나는 나름 확고한 빨래 철학들이 생겼다. 빨래는 역시 햇빛 건조, 겨울에는 다우니 실내 건조용 섬유유연제가 좋다. 오랜만에 꺼내 든 옷에서 좋은 향이 나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으니까!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베란다에는 지난주 입었던 옷이 기분 좋게 말라가고 있다. 아끼는 옷은 찬물 울코스로, 수건들은 섬유유연제 없이 세탁을 돌리며 한주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다음 한주를 대비한다. 깨끗하게 세탁되어 접어놓은 옷들은 내가 나에게 보내는 격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