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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공 Jul 22. 2022

책의 얼굴들 - 다른 표지 속 같은 서점들

트렌드와 획일성 사이

원하는 책을 사기 위해선 서점에 간다. 


매일 인터넷 서점을 구경하지만 막상 책을 사는 건 오프라인 서점이다. 진공 포장되어 다음날 집까지 배송되는 서비스에 사은품까지 인터넷 서점의 장점은 독보적이지만 구태여 서점을 찾는다. 새 책이 빼곡한 책장과 종이 냄새에 마음이 편해진다. 쏟아지는 신간과 함께 서점의 모습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낸다. 


어느 정도 규모 이상의 서점에 방문하면 기획전이나 홍보 칸이 있다. 책을 독특한 모양으로 쌓아놓기도 하고 특정 주제로 묶인 컬렉션을 선보이기도 한다. 벚꽃 콘셉트로 분홍빛의 표지를 모아둔다거나 갓 성인이 된 독자들을 응원하는 스무 살 컬렉션까지 다양해서 늘 보는 재미가 있다. 일반 서가에 비해 평대는 방문객의 눈에 띌 수 있도록 직관적이고 확실한 콘셉트를 가지곤 한다. 서점은 출판계뿐 아니라 정치와 경제, 사회까지 모든 분야의 이슈를 반영하고 발 빠르게 평대를 채운다. 평대에 깔린 책을 보면 이 사회의 키워드를 찾을 수 있다. '갓생'과 mz세대, mbti까지 우리가 즐기는 모든 것이 평대에 누워있으니 서점은 트렌디하다. 



직사각형 틀 안에 책의 분위기를 담기 위해 다양한 요소가 고려된다. 책의 매력을 한눈에 선보이기 위해 과감히 책 제목을 생략하기도 하고 매 쇄 표지에 다른 색을 입히기도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책 표지에도 트렌드가 반영된다. 내가 접하는 요즘의 책 표지들은, 조용하다. 화려하고 채도 높은 색보다는 물 탄 듯 여린 색이 주로 쓰이고 제목과 지은이는 깔끔한 폰트로 간결하게 나타낸다. 미니멀리즘의 유행으로 깔끔한 인테리어와 옷차림이 인기를 끄는 추세의 영향일지도 모르겠다. 


그중 유난히 눈에 띄는 표지들이 있다. 바로 책 표지 속 서점 일러스트다. 어두운 밤에 불 켜진 서점이든 밝은 낮의 따뜻한 서점이든, 혹은 서점이 아니라 주택이든 건물을 형상화한 표지가 많이 보인다. 대체로 인기가 많은 책들이라 베스트셀러 서가에는 다양한 '서점 표지'들이 나열되어 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히가시노 게이고, 현대문학)


아마도 시작은『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었던 것 같다. 일본의 유명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로, 살인과 죽음이 난무하는 작가의 다른 작품과 비교해볼 때 무척 따스하고 동화 같은 책이다. 반전에 반전을 더하는 스릴이 아니라 사실은 이랬답니다! 하는 뭉클한 이야기로 꽤 오랜 시간 베스트셀러 1위의 자리를 지켰다. 사전이나 성경책과 견줄 만큼 두께가 있지만 워낙 유명한 도서라 입문자들도 한 번쯤 읽어봤을 책이다. 이렇게 똑똑히 기억하는 건, 나 또한 독서가 남의 얘기였을 때 관심을 갖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구입했기 때문이다. 깔끔한 폰트와 함께 별이 빛나는 밤하늘, 지붕 위 고양이와 자전거까지 보기만 해도 몽글몽글한 기분이 드는 표지다. 양장본이라 책을 넘어 인테리어 소품으로 써도 될 법한 자태다. 


엄청난 인기를 끌어서일까? 책 표지 속 아름다운 건물의 그림이 많이 보인다. 표지는 책을 대표하는 얼굴이다. 영화화를 기념으로 리커버를 하기도 하고 브랜드와 협업하여 특정 서점에서만 판매 가능한 에디션을 출시할 만큼 공을 들이는 사안이다. 건물 일러스트의 디테일은 모두 다르지만 얼핏 보면 너무나 비슷하다. 이미 건물이 그려진 표지는 익숙해진 지 오래지만 불과 3개월 전에도 서점이 그려진 책이 출간되었다. '서점 표지' 트렌드는 계속될 듯하다. 


표절 의혹을 제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표지를 디자인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갔을지 알기에 감히 말을 얹기도 조심스럽다. 독자 입장에서 정말 단순하게, 헷갈릴 뿐이다. 읽은 책을 인상 깊은 문장으로 기억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대부분 표지가 먼저 떠오른다. 책을 구입할 때도 눈에 띄는 표지가 있으면 가만히 서서 몇 줄 읽어보기도 한다. 비슷한 표지는 비슷한 감상이 남는다. '서점 표지'를 가진 책을 들여다보면 판타지부터 힐링까지 각자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다. 익숙한 느낌의 책으로 넘기기엔 아쉬울 만큼 극찬을 받고 있지만 머릿속에서 '서점 표지'를 가진 책으로 인식되어 버렸다. 한 명의 독자로서 더 이상 서점이 그려진 책에는 가슴이 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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