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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공 May 27. 2022

취업준비생으로 살아남기 05-취준생의 자아실현

직업에 크리에이터라고 써도 돼요?

어릴 때부터 네이버 카페를 들락거렸다. 고민이 있으면 지식인에 글을 올렸고, 좋아하는 펜을 모아 디카로 시필샷을 찍어 올렸다. 관심사를 공유하며 즐거움을 느꼈던 기억을 되돌아보면 천성이란 게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날로그 감성 가득했던 SNS에 목숨 걸며 나의 하루를 공개했다. 좋아하는 것은 뭐든 찍어 올렸던 초등학생은... 좋아하는 것을 뭐든 찍어 올리는 성인으로 자랐다.


모든 욕구가 거세되는 수험생 시절을 마치고 20살이 되자마자  블로그를 개설했다. 아무 흔적 없이 깨끗한 블로그에 여행기나  리뷰, 일상을 올리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을 끌어오는 것엔 관심이 없었기에 꿋꿋이 좋아하는 내용만 써서 올렸다. 마음에 드는 사진이 나올 때까지 셔터를 눌렀고 빛이 좋은 시간을 기다려 햇빛을 가득 담은 사진을 찍었다. 기록은 나에게 어떤 본능이었다.  눈에 담긴 아름다운 장면은 누구에게든 보여주고 싶었다. 자연히 일상을 담은 브이로그를 찍고 싶어졌다.




Q&A영상을 찍기 위해 받은 질문 중 여럿은 유튜브를 시작한 계기를 물었다. 답은 명확하고 간단했다. 2년 전 나는 나에게 과분한 핸드폰을 샀고, 어떻게든 그걸 활용해야 했다. 이 좋은 카메라로 음식만 찍을 순 없다! 꿈으로만 간직하던 브이로그를 시작하려고 마음먹었다. 당시 내가 구입한 기종은 아이폰 12 pro 256기가다. 물류 대란으로 원했던 128기가는 재고가 없었고 기다리다 지친 나는 홧김에 256기가를 구입했더랬다. 충동구매의 꽃말은 할부금, 기분은 희미해졌지만 약정 기간은 남아있다. 뭐라도 해야 한다.


처음 영상을 찍기 시작해보니 역시 쉽지 않았다. 원치 않는 부분은 잘라내면 그만인 사진과 달리 영상은 폭도 넓고 예쁜 장면만 담기가 어려웠다. 영상을 찍고 확인해보면 화면 끄트머리에 속옷이 덩그러니, 혹은 역광으로 눈이 부시는 식이었다. 생에 처음 해보는 영상 편집도 손이 많이 갔다. 요령이 없어 자막 크기를 일일이 조절했고 노래는 뚝뚝 끊겼다. 숱한 브이로그를 봐 온 나로서는 너무나 초라한 첫 브이로그였지만, 마음에 드는 사진을 합쳐 썸네일을 만들고 손글씨로 "Vlog"를 새겼다. 나에게 중요한 사실은 시도했다는 것, 완성했다는 것 그리고 즐겼다는 것이었다.


친구와 친구의 친구, 친구의 애인, 친구의 직장 동료까지! 의리로 굴러가던 나의 채널도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는 날이 왔다. 가방 속 소지품을 소개해주는 "왓츠 인 마이 백(What's in my bag?)" 영상이 큰 인기를 얻은 것이다. 누군가 처음으로 나의 매니큐어 정보를 물었다. 친구들과의 대화가 포근하다고 했다. 긍정적인 반응이 꿈만 같았고 다시 영상을 편집할 용기가 생겼다. 그렇게 꾸준히 영상을 올렸고, 광고를 하는 날이 왔다.

구독자가 늘면서부터 광고와 협찬 제의는 꽤 잦았다. 유튜브 활동은 좋아하는 취미로 남기고픈 마음에 거의 거절했지만 처음 들어온 광고 제의에 관심이 생겨서 제안에 응했다. 기초 화장품을 제공받으며 구독자 이벤트용으로 핸드크림 열개를 같이 보내주셨다. 영상을 만드는 건 익숙해도 이벤트 참여율이 저조할까 걱정이 됐지만 정성껏 영상을 촬영하고 이벤트를 구상했다. 역시나 중요한 사실은, 시도했다는 것!


다행히 기대보다 많은 분들이 이벤트에 참여했다. 차마 내 손으로 고를 수가 없어서 랜덤으로 다섯 분을 추첨했다. 당첨자를 발표하고 메일을 주고받으니 기분이 묘했다. 내 인생에 구독자 이벤트를 하는 날이 오다니, 정말 유튜버가 된 기분이었다. 당첨자는 연락처와 집주소와 함께 나의 영상에 대한 코멘트를 전해 주었다. 사랑이 담긴 언어들이 따뜻했다. 멀리 있는 나에게 보내준 애정이 생경했으며 영상으로 이어진 인연이 소중하고 귀했다. 그래서 알았다. 나의 모든 글과 영상은 아껴주는 사람이 있기에 유의미하다는 것을.


당첨자에게 직접 고른 선물을 보내드리고자 좋아하는 소품샵에 갔다. 짧은 댓글과 메일이지만 느껴지는 분위기를 곱씹어 작은 선물을 골랐고 엽서에 편지를 썼다. 좋아해 주실지 걱정이 앞섰지만 마음을 담아 보냈다. 우체국에서 접수를 하며 몇 번이나 주소를 확인했는지 모른다. 내용물이 잘 담겨 있는지, 혹시나 뒤바뀌진 않았는지 우려와 사랑을 떨어뜨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후 선물을 잘 받았다는 메일들을 받아보고선 놀라움이 일었다. 구독자가 나와 같은 단어를 썼다.


영상이나 글을 보고 댓글을 남기기는 쉽지 않다. 느낀 바를 문장으로 완성해 전달하는 과정도 노력이거니와 다른 이에게 공개되는 것 또한 부담이기 때문이다. 구태여 단어를 골라 감상을 전하고 나를 격려한다. 그들은 매체를 넘어 나를 봐주었다. 영상에 담긴 장면과 대화에서 나를 발견했고 내면을 느낀다고 했다. 내놓은 결과물에 내가 가득 녹아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니 더 똑바로 살아야겠다는 마음도 생겼다. 위태롭게 걸어가던 중 꼭 잡을 손이 다가온 기분이다.


무언가 창작하지 않았다면 닿지 않았을 인연이 늘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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