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백합일까
대표님 방에 들어서기 전 벽에는 한 팔 벌려 넓이, 한 팔 올려 높이의 커다란 액자가 걸려 있다. 커다란 백합 두 송이를 클로즈업한 흑백사진이다. 모든 회의와 보고가 대표님 방 안에서 이뤄진 터라 전 직원은 하루에도 몇 번씩 액자 앞을 지나쳤고 나 역시 그러했다.
처음에는 회사생활에 적응하느라 액자가 눈에 들어올 겨를이 없었고 나중에는 익숙해져 관심 밖이었다. 하지만 익숙함과 지루함이 공존하는 생활이 계속되면 사소한 것이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사수에게 액자에 관해 묻자 “대표님이 좋아하는 꽃이야”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때부터였을까 대표님 방을 지나칠 때마다 액자에 시선이 갔다. 아니 액자가 내 시선을 이끌었다. 사회생활 초년생인 나에게 회사는 긴장과 좌절의 연속이다. 그래서인지 무채색의 백합 사진은 대표님 얼굴 같기도 했고 내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의 민낯 같기도 했다.
왜 하필 백합일까.
왜 하필 흑백사진일까.
차라리 어딘지는 모르나 가고 싶게 만드는 풍경 사진이나 익히 보았을법한 명화 그것도 아니면 뜻 모를 추상화였다면.
최소한 알록달록 색이라도 있었다면…
그랬다면 대표님 방을 오가는 내 기분이 조금은 달라졌을까. 그랬다면 회사생활이 덜 어려웠을까. 삶이 덜 버거웠을까.
최소한 액자 크기라도 작았다면…
그랬다면 내가 덜 작게 느껴졌을까.
그깟 액자가 뭐라고 나를 이렇게 슬프게 만드는지.
나는 또 그깟 액자가 뭐라고 액자 눈치까지 보며 꾸역꾸역 회사를 나가는지.
시간이 흐르면 액자를 마주해도 아무렇지 않을까.
아니, 사실은 이 말이 하고 싶었다.
내 인생도 액자 속 활짝 핀 백합처럼 꽃 필 날이 오게 될까? 무채색의 세상이 알록달록하게 보이는 날이 올까? 아니면 백합도 두 송이인 것처럼 지금의 나는 혼자서 견디기 힘드니까 누군가라도 있었으면…
그 모든 말을 눈물 한 방울과 함께 가슴 한 구석에 꾸역꾸역 밀어놓고 나는 오늘 또다시 백합 액자를 마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