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아이를 통해 구원받는다
아이의 칭얼거림에 졸린 눈 비비며 일어난다.
아이 방에서 아침 첫 수유 후 밤새 묵직해진 기저귀를 갈고 거실에 나온다.
이때부터 나와 아이의 하루가 시작된다.
매트가 깔린 베이비룸에 아이를 놓고 아이가 좋아할 만한 장난감들을 바닥에 놓는다.
아이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장난감을 향해 기어가고 나는 잠이 덜 깬 눈으로 청소를 한다.
아이 방 침대를 정리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빨랫감을 정리해야 한다.
여유가 있다면-아이가 혼자 잘 놀아준다면-어젯밤 설거지 해 놓은 그릇도 정리할 계획이다.
그리고 아이와 놀아줘야지.
"이잉- 잉-"
혼자 놀기 지겨워졌는지 아이의 칭얼거림이 들린다.
목소리의 세기와 톤으로 볼 때 아직은 괜찮을 거 같다.
하던 일을 계속한다.
그래도 귀는 아이를 향하고 손은 더 빨라졌다.
"흐엥- 으으으- 으으- 아아-"
아까보다 더 높은 톤과 세기로 부른다.
"응, 알겠어"
말 한 나도 뭘 알겠다는 건지 모르지만 들은 아이는 '엄마 목소리' 하나 만으로 진정되었다.
청소기 돌리는 속도가 빨라지다 못해 문 턱을 탁탁 때린다.
아직 할부도 한 참 남아있는 청소기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여력이 없다.
다만 얼른 남은 방 두 개를 마저 청소해야 한다는 생각만 있었다.
"아앙- 아아아앙- 으으앙!"
이 소리는 이제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
거실을 향해 "엄마 갈..."라고 외치다 말을 맺지 못했다.
거짓말이니까.
'엄마 갈게'라고 말 하지만 내 머릿속에 있는 청소 계획을 다 마친 후에야 갈 것이다.
손에 청소기라도 놓고 말하던지 내가 봐도 거짓말에 성의가 없다.
하루에 몇 번이나, 몇 분이나 아이와 눈을 바라보며 얼굴을 마주하는지 생각해 본다.
많은 시간 아이의 뒤통수, 옆모습, 장난감 사이로 비친 몸의 일부들로 아이의 안전을 확인한 후 내 할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내 계획', '내 생각'에 눈이 멀어 코 앞에 있는 아이를 외면한다.
하루에도 여러 번 "알겠어, 지금 갈게, 곧 갈게, 금방 가, 이것만 하고" 라며 태연하게 거짓말한다.
아이가 원하는 게 뭔지 알면서도 "잠시만, 잠깐만, 엄마 여기 있어" 라며 당당하게 오답을 들이민다.
내 할 일에 집중하느라 아이의 시선이 느껴짐에도 외면할 때가 많다.
이런 염치없고 뻔뻔한 상습범인데도 아이는 어제나 환한 미소로 반겨준다.
나를 부르다 눈물과 침으로 범벅된 얼굴을 하고도 내가 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헤-"하고 웃으며 두 팔을 벌려 맞이한다.
그 거룩한 용서의 순간, 아무리 부끄러움 모르는 나라도 절로 무릎을 꿇고 가슴 가득 아이를 안는다.
부드럽고 따뜻한 온기에 잘못을 뉘우치고 속죄의 은혜를 경험한다.
부족하고 나약한 나는 또다시 죄를 반복할지라도 이 거룩함은 변치 않는다.
나는 오늘도 아이를 통해 구원받는다.
오늘은 집안일 대신 아이의 눈을 마주하고 그 은혜의 샘에 몸을 뉘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