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딩크인 줄 알았던 내가 육아일기를 쓰다니
나는 딩크였다
'였다'는 과거형으로 표현하는 이 순간조차 어색하다. 그만큼 나는 꽤 오랜 시간 딩크였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초경 때부터 일까. 중학생 때부터 찾아간 산부인과만 10곳이 넘고 진찰 횟수만 100번 이상이다. 내 인생 처음 수술대를 올라간 것도 자궁 때문이었다. 그 어느 곳에서도 뚜렷한 원인, 해결책을 찾을 수 없었다. 의사로부터 막연하게 "크면 아기를 빨리 낳아라"는 말만 들었을 뿐. 앞에 '크면'이 붙는 이유는 내가 교복을 입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나도 막연하게 '아, 나는 아기 낳기 힘들겠구나'라고 생각해 왔다.
무엇보다 아기였던 내 삶이 그리 행복하지 않았기에 아기를 낳고 싶지 않았다. 아기였던 나로 인해 부모님이 힘들어하는 걸 보는 게 너무 괴로웠다. 그래서 나는 나와 같은 '아기'를 만들기 싫었다.
그리고 나의 대표 수식어 중 하나인 가난 역시 한 몫했다. 수능 시험을 100일 앞둔 날, 수능이 끝나면 하고 싶은 일 중 가장 처음이 아르바이트였다. 실제로 나는 20세 이후 아이를 출산하기 2주 전까지 월급을 안 받아본 달이 없이 일했고 그만큼 경제적 여유 없이 살아왔다. 물론 시간이 흘러 아르바이트에서 직장으로 옮기고 나서는 경제적인 면은 나아져 '가난'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서적 여유는 그에 비례하지 않았고 '돈'에서는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랬기에 '아기'는 내가 가질 수 없는 존재라 여겼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짐', '부담'이었다.
20대 청춘을 일로 날렸으니 30대는 나에게 투자하고 싶었다. 그래서 40대, 50대는 여유를 가지고 편안하게 살리라 생각해 왔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60대 이후 탄탄하게 준비한 노후대비로 여생을 누리다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그게 내 인생의 전부인 줄 알았다.
이 완벽한 계획에 아기는 없었다.
아니, 없어야 했다.
그런 내가 엄마가 되고 육아일기를 쓰는 지금이라니.
계획에 없던 임신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거창한 깨달음이나 인생의 전환점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단지 "나는 아기를 낳고 기르고 싶어"는 작은 발견이 있었을 뿐.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아기를 가질 수 없어'라는 굴레에 매여 '낳지 않겠다'는 결론으로 살아왔지만 정작 내가 '무엇을 원하고 바라는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내 인생의 많은 지표가 '너는 아기를 가지면 안 돼'를 가리키고 있는 만큼 누구보다 '나는 아기를 갖고 싶어, 엄마가 되고 싶어'를 외치고 있던 나라는 걸.
그러한 나라는 걸 발견한 순간부터 나는 아기를 낳고자, 엄마가 되고자 열심히 노력했다. 뒤늦은 임신인 만큼 쉽지 않았고 많은 고통스러운 경험을 해야만 했다. 그랬기에 임신인 걸 알았을 때 누구보다 기뻐했고 감사했다.
그래, 감사였다.
감사가 부족했던 내 삶이었는데, 감사와는 어울리지 않는 내 삶이었는데...
감사와 함께 아기가 찾아왔고 나는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육아일기를 쓰고 있다.
내가 육아일기를 쓰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