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나는 '환자'다#1

나는 내 선택에 따라 환자가 되었다

by 블루블라썸


© sharonmccutcheon, 출처 Unsplash


출산 마지막 달 산부인과 정기검진에서 의사가 생각해 놓은 출산 방법이 있냐고 물었다. 1초의 망설임 없이 "수술이요"라고 답했다. 출산에 대한 공포도 이유였지만 아이의 머리가 너무 컸다. 남편과 나를 닮았다며 결코 작을 수 없는 머리지만 3주는 너무 빨랐다. 내 결정에 남편, 양가 모두 따라줬고 의사도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그러나 자연분만이냐 제왕절개냐는 단순히 출산 '방법'의 차이가 아니었다. 내가 '산모'가 될 것이냐, '환자'가 될 것이냐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나는 내 선택에 따라 '환자'가 되었다.


예정된 출산, 준비된 수술인 만큼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다만 나는 준비되어 있지 않았고 순조롭지 않았다. 수술 예정일이 다가올수록 두려움과 불안감이 심해 주위 사람들이 걱정할 정도였다. 마지막 1주일은 아이 생각은 1도 나지 않고 오롯이 내 걱정만 들었다. 수술 전 날에는 도살장 끌려가는 소의 심정이 200% 이해되었다. 죽는 건 무섭지 않았다. 다만 살이 찢기고 피가 튀는 고통이 두려울 뿐이었다. 얼마나 아플까, 얼마나 쓰릴까,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얼마나 피가 날까, 얼마나 힘들까...


수술 당일은 도살장 끌려가는 소, 그 자체가 되어 드라마에서 보던 수술실에 들어갔다. 이른 아침 첫 수술이라 다소 적막했던 대기실과는 달리 수술실 안에는 여러 명의 의료진들이 정해진 순서에 따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십자가 형태의 수술 침대에 누워 왼쪽 팔에 라인을 잡고 수액을 달았다. 많은 산모가 이야기 한 새우 자세로 척추 마취를 했다. 두려움에 부들부들 떠는 나를 간호사가 "괜찮아요"라며 말하며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게 붙잡아줬다. 여유 넘치는 말투의 마취과 의사가 와서 척추에 마취제를 투여했다. 중간중간 "액이 어느 쪽으로 흐르나요?"라고 물었고 나는 "왼쪽이요"라고 대답했다. 내가 왼쪽으로 누워 있으니 마취'액'이 왼쪽으로 흐르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런데도 의사는 이상하다는 투로 "지금은요?"라고 재차 물었다. 그렇게 수 분의 시간이 흘렀다. 수없이 많이 찾아본 수술 후기에서는 금방 끝난다 했는 데 너무 오래 걸렸다. '뭔가 이상하다'라는 생각과 동시에 전신에서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흐느끼며 눈물이 흘렀다. 간호사가 "괜찮아, 울지 마요"라고 토닥였지만 내 몸을 통제할 수 없었다. 그저 속으로 '큰 소리 내서 우는 건 아니니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고 생각했다.


"됐다"라는 의사의 말을 끝으로 똑바로 눕혀졌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저 후기를 읽고 수차례 상상했던 시나리오 대로 "선생님 저 좀 재워주세요"라고 나지막이 말했다. 작은 목소리와는 다르게 내 머릿속은 '이제 진짜 시작인가, 진짜 수술하나, 진짜 내 배를 가르나, 이제부터 고통스럽겠지?, 죽을 만큼 아프겠지?'등의 생각으로 더욱 복잡해졌다.

그리고 몇 초간 아무 생각이 안 들었다. 깜박 잠이 든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마취과 의사가 내 귀에 대고 "진정제 투여했어요"라는 말에 정신이 잠깐 돌아왔다. 말 그대로 잠깐 돌아왔다가 이윽고 온몸에 '편안함'을 느끼고 다시 의식을 잃었다. 아마 이때는 수면 마취를 했을 때겠지.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주변이 시끄러웠고 누군가 나를 들어 옮기는 느낌이 들어 눈을 떴다. 눈앞에 걱정스러운 표정의 남편이 나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아기는?"이란 물음에 남편이 "건강해, 괜찮아"라고 답했다. 그 답을 끝으로 다시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두어 시간 흐른 후였다. 정신을 차리려 애쓰며 기억을 더듬다 내가 수술 중 마취과 의사에게 "선생님 이건 무슨 약인가요?"라고 물었던 게 기억났다. 마취과 의사는 "그건 말해줄 수 없다"라고 했다. 나는 "바륨인가요?"라고 다시 물었고 의사는 "비슷하다"라고 답했다. 동시에 어렴풋 의사와 간호사로 추측되는 여자의 대화가 기억났다. 간호사가 "그 사람 널스 아니래요"라고 말했다.


맙소사 나 또 쓸데없는 말 했구나.

수면 내시경 후기를 읽다 보면 "나는 해적왕이다" 와 같은 말을 한다고 한다. 물론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나 자신의 행동에 한숨이 절로 났다. 간호사 말대로 의료진도 아니면서 무슨 오지랖인지. 게다가 제왕절개에 관한 수많은 후기를 봐도 안정제를 맞았다는 글은 못 봤으니 나와 같은 경우는 흔치 않은 것 같은데... 혹자는 그게 뭔 대수냐 하겠지만 나로서는 무척 창피한 일이다.


그래, 나는 이런 인간이다.

별일 아닌 일에도 창피해하고 마음 쓰여하는... 방금 한 생명을 잉태한 위대한 일을 하고도 사소한 일에 신경 쓰며 '쓸데없는'생각으로 굴을 파고 들어간다. 이미 그 사람들은 나를 신경 쓰고 있지 않을 텐데. 그저 나는 매일 반복되는 업무의 한 일환일 텐데. 나와 아이에 대한 것보다 이 생각들로 괴로웠다.


긴장감이 풀려서인지 약간의 안도와 함께 우울감이 밀려왔다.

내 인생 최고의 도전이었던 임신과 출산을 했어도 나는 달라지지 않았다. '환자'가 되어도, '엄마'가 되어도 나는 나 그대로였다. 오히려 이날 하루 온종일 내가 나 임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나 인체로 괜찮은가. 아니 조금 더 솔직히 표현하자면 내가 엄마가 되어도 괜찮은가, 그럴 자격 있는 인간인가. 지금 나는 산부인과 환자인 동시에 정신건강의학과 환자다. 환자는 엄마여도 되나? 아니, 엄마라는 역할은 애를 낳는 동시에 필연적으로 갖게 되는 역할이니 더 정확히는 환자인 내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로 인해 아이에 대해 궁금했지만 물을 수 없었다. 그저 두 눈을 꼭 감고 가만히 있었다.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나는 늘 '내가 엄마가 될 자격이 있는가'라고 고민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해 답할 수 없어 오랜 기간 딩크인 채로 지냈었다. 그러다 "응, 자격 필요 없어. 그냥 내 아이를 있는 힘껏 사랑해 줄 거야"라는 답으로 아이를 가졌다. 비록 이러한 나라도, 이 정도뿐인 나라도 사랑을 주고 싶었다. 설령 그게 나를, 아이를 실망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해도 '진심'을 표현해 전해주고 싶었다. 이것 역시 내 '이기심'인 것을 인정한다. 그렇기에 나는 최소한 아이를 낳은 것에 대한 '후회'는 하지 않을 거라 다짐했다. 그리고 언젠가 혹시나 아이가 자신을 낳은 것에 대해 '원망'하더라도 기꺼이 그 원망을 받아 줄 각오가 되어 있었다.


나는 이 두 가지를 다짐하며 임신했다. 이 다짐은 나와 아이를 지키는 명제였고 그 효과는 이때도 찬란하게 발휘하였다. 마음속으로 '그래, 후회하지 말자, 엄마가 된 것 후회하지 말자, 사랑하자'라고 3번 외친 후 힘차게 눈을 떠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나 아기 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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