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문제는 아무것도 모른 채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다
산모(産母)
: 아기를 갓 낳은 여자
-표준 국어 대사전-
병원에서 퇴원 후 조리원에 갔다.
제대로 씻지 못해 꼬질꼬질한 얼굴과 냄새나는 몸으로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이라) 2층 계단을 네 발로 기어 올라갔다. 나는 내 몸 하나 간수하기 힘들었고 아이와 큰 캐리어 2개, 작은 가방 3개는 남편의 몫이었다. 간단한 안내 후 방을 배정받았다. 나는 역시나 한 손으로 허리를 부여잡고 걸음마하듯 걸었으며 남편은 큰 캐리어 2개, 작은 가방 3개를 트레이로 실어 옮겼고 아이는 신생아실에 맡겨졌다.
조리원을 지칭하는 많은 표현 중 유명한 것(내 마음에 드는 것)은 '조리원 천국'이다.
나 역시 병실에 비해 6배가량 큰 방에 입실하자 숨통이 확 트였고 통증도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폭신하고 포근한 침구류가 놓인 침대 위에 누우니 지난 며칠이 꿈처럼 느껴졌다. 모션 베드가 아니라 아쉬웠지만 병원 침대에서는 느낄 수 없던 편안함과 안락함이었다.
'오늘부터 2주간 매일 마사지받으며 맛있는 음식 먹고 룰루랄라 즐겁게 보내면 되겠지?'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번졌다.
'아이는 선생님들이 봐주니 나만의 시간이 많겠지?, 오늘 저녁에는 넷플릭스로 영화나 볼까?, 그래 이제 집에 가면 시간이 없으니까 여기서 영화나 실컷 보다 가야겠다, 잠을 쪼개고 쪼개서 최대한 나만의 시간을 즐기겠어' 따위의 망상(그때는 몰랐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리고 그건 정말 '망상' 그 자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입소 당일에는 '첫날은 무리하면 안 돼, 아직 몸도 회복되기 전이잖아'라는 생각에 아무것도 안 하고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끼니마다 나오는 밥도 너무 맛있어서 반찬 하나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먹었고 하루 3번 간식이 나온 다는 것에 감탄하며 하루를 마감했다.
조리원을 지칭하는 또 다른 표현은 '모유 사관학교'다. 아니 '모유 사관 지옥'이 더 맞는 표현이다.
그래, 천국은 무슨. 여기는 지옥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내 문제는 아무 생각 없이 애를 가진 건 아닌데 아무것도 모른 채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다.
산모라면 모유냐, 분유냐를 결정해야 한다. 나는 '모유가 나오면 모유 먹이고 안 되면 분유 먹이지 뭐'라고 두루뭉술하게 생각했다. 조리원 입소 당시 원장과도 그렇게 이야기한 게 전부였다. 나는 조리원에 들어간 이튿날부터 젖이 돌았다. 몇 방울 안 나왔지만 몸에 좋다는 초유니까 적은 양이라도 먹이는 게 좋을 거 같았다. 초산모라 잘 몰라 젖 물리는 방법을 알려 달라고 하는 나를 향해 원장은 걱정 말라며 사람 좋은 미소로 아이를 데려왔다.
아이는 자신을 옮기는 손길에도 두 눈을 꼭 감고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원장은 젖 먹이는 기본자세를 알려준 후 아이의 턱을 한 손으로 잡아 입을 살짝 벌린 후 내 가슴에 밀어 넣었다. 지금 다시 떠올려봐도 '밀어 넣었다'라는 표현 외에 적절한 단어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밀어'와 '넣었다'의 단어 그 자체였다. 곤히 잠들어 있던 아이는 '밀어 넣은' 행위에 놀라 자지러지게 울었다. 나는 그 모습에 한쪽 가슴을 밖으로 드러낸 상태에서 엉거주춤 젖 주는 자세 그대로 얼어붙었다. 울고 얼어붙은 우리 둘 사이에서 원장만 태연했다. 원장은 당황한 내 표정을 읽었는지, 아니면 이러한 경우가 종종 있었는지 "이렇게 해야 하는 거야, 이렇게 해서 빨아야 해, 아이도 엄마도 빠는 법을 익혀야 해"라며 계속 '밀어 넣는'시도를 반복했다. 옆에서 다른 산모를 돌보던 '모유 실장'이 흘깃 보고는 "아휴, 아이가 배가 고파야 빨죠, 자는 애를 무작정 들이밀면 되나"라고 한 마디 거들었지만 그 말도 아이의 울음소리에 묻혔다. 몇 번의 시도에 아이는 쬽쬽 가슴을 빨았고 원장은 "옳지! 옳지!!"라고 했다. 그러나 아이는 빨개진 얼굴로 두세 번 빨고는 다시 울었다. 그것도 더 큰 소리로. 그제야 원장이 "이렇게 하는 거예요"라며 우는 아이를 달랬고 나는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봤다.
이게 대체 뭔 상황이지.
TV에서는 모유 수유를 엄마와 아이의 따뜻한 교감, 거룩하리만큼 아름다운 광경으로 묘사했었는데 나와 아이의 첫 모유 수유는 충격 그 자체였다. 아니, 충격받았으면서도 원장 말대로 이게 맞는 건가 싶어 그 충격마저 애써 지우려 노력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그 원장을 욕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뭐가 맞는 건지 아직도 모르기 때문이고 이 일 외에 원장은 늘 웃음으로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해 나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 상황을 마무리하고 내 방으로 올라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나는 그제야 모유 수유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고 '유축'이라는 결론이 이르렀다. 분유보다 모유가 아이에게 좋다는 것 알지만 방금의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해 내린 내 나름의 절충안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3시간 간격으로 하루 8개의 알람을 맞추고 유축했다.
하루 8번 유축으로 인해 내 하루는 3시간 단위로 흘러갔다. 그 시간 안에 나는 충분히 잠을 자야 했고(그래야 모유가 잘 나오므로), 매일 3번의 식사와 3번의 간식을 섭취해야 했으며(그래야 모유가 잘 나오므로), 마사지와 골반교정기 등 몸의 빠른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그래야 모유가 잘 나오므로).
하루가 너무 바쁘게 흘러갔다.
오전 7시에 일어나 씻고 아침 식사 후 오전 모자 동실 한 뒤 간식을 먹고 가슴 마사지를 받은 후 점심 식사 먹고 전신 마사지를 받은 후 간식을 먹고 찜질을 한 뒤 저녁 식사를 하고 오후 모자 동실 한 뒤 씻고 잠자리에 들다가 유축 알람에 맞춰 중간중간 일어난다. 이 모든 과정 안에 3시간 단위로 유축을 해야만 한다.
침대가 아늑하고 포근하면 뭐 하나, 제대로 누워 즐기지를 못 하는데. 모든 게 내가 아닌 '아이'를 위해 맞춰져 있었다. 나는 내가 낳은 아이를 기르기 위한 '산모'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할 뿐이었다.
'소'가 된 것 같았다.
아니 그건 그냥 젖소와 역우를 합쳐 놓은 소 자체였다.
어느 하루는 새벽에 유축하며 조용한 목소리로 "음메메- 음메-"하고 소리 내 보았다.
어두운 방, 작은 스탠드 하나 켜진 적막함 속 조용히 '촉- 촉- 촉- '유축기 소리만 들렸지만 그나마 위안이 된 건 이 조리원에서 나만 '음메-'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이었다.
'병원에서 이미 털릴 때로 털린 상태라 여겼는데 더 털릴 게 남아있었다니. 아니, 내가 애초에 이렇게 털릴 게 많은 인간이었는지 새삼스럽네. 다들 조리원 천국이라는데. 그럼 집에 가면 어떻게 된다는 거지. 안심하지 말고 최악의 최악을 생각해서 이번처럼 무방비로 당하지 말아야지'라는 식의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도중에 조리원 내의 유축을 말리는 목소리'들'로 인해 직수를 두 어번 시도해 봤으나 자신감 하락으로 결국 포기했다.
그렇다고 모유 수유를 포기하기에는 자존심보다 내가 '엄마 노릇' 못 한다는 생각 때문에 못 했다. 엄마라면 모유는 '기본' 아닌가 하는 생각. '먹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요소 아닌가. 그리고 모유가 좋다는 건 누구나 알기에 그걸 포기하기에 내 아이가 너무 불쌍해 보이고 나는 자격 없는 엄마가 된 것 같았다. 물론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지만 적어도 조리원에서의 나는 그랬다.
새벽에 반쯤 감긴 눈으로 유축된 모유를 들고 신생아실로 가는 도중 모유 수유를 마치고 돌아오는(나와 비슷한 눈을 하고 있는) 산모들과 마주칠 때마다 나는 위의 생각들로 마음을 다져갔다.
몸도 마음의 아픔도 나는 '산모'라는 단어 하나로 꾹꾹 눌렀다.
나중에는 '생각'이라는 것도 눌러버렸다.
그건 모유 유축에 도움이 안 되므로.
나는 '산모'이니까 내가 낳은 내 아이를 위해 참아야만 했다.
그러는 게 당연하다 여겼다.
그래서 참았다.
버티고 버텼다.
왜냐하면 나는 '산모'니까.
직수나 유축하는 엄마들이 모두 나처럼 고통스러운 건 아닐 거고 완분 하는 엄마들이 나보다 덜 고통스러운 건 아닐 테다. 다만 나는 주체적으로 선택한 상황이 아니라 더 힘들었다. 임신 기간 때 병원, 조리원에 가져갈 물품 말고 이런 것도 미리 결정해 갔으면 더 좋았었을 텐데. 상황에 맞춰 주먹구구식으로 대응하다 보니 나도 아이도 고생이었다. 주위에 휩쓸리지 말자고 아무리 다짐해도 이제 막 아이를 낳은 '산모'인 이상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오히려 그 다짐 때문에 더 힘들다.
그러나 이게 당연한 거고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산모'에서 벗어나 '엄마'로 나아가는 '시간'.
이제 막 내가 낳은 아이를 조리원 기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긴 시간을 돌봐야 한다. 모든 것은 나와 아이의 선택이며 책임 역시 우리가 지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이를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하고자 노력할 것이며 우리의 선택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는 경우는 드물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는 비록 지금 '산모'이지만 결국 '엄마'라는 것을. 이 아이는 병원의 아이도, 조리원의 아이도 아닌 산모인 내 아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