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는 '초보'다

무지에서 오는 두려움이 절박함으로 변해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by 블루블라썸

우여 곡절 끝에 병원과 산후조리원을 거쳐 집으로 왔다.

이제는 정말 남편과 나, 둘이서 오롯이 아이를 돌봐야 한다.

그것도 24시간 하루 종일.


전에도 언급했지만 나는 내 아이가 내가 안아 본 첫번째 아이다.

그 말인즉슨 그전까지 아이를 안아 본 적이 없다는 거다.

물론 내가 아이를 안았을 때 펼쳐질 망상에 가까운 무시무시한 상황들에 대한 겁 때문이기도 했지만 친척, 친구 등 주위에 아이 키우는 사람이 없어 아이를 안아볼 기회조차 적었다.

아이에 대해서는 무지한 내가 엄마라는 이름을 안고 한 생명을 돌봐야 하는 것이다.






평소 나에 대한 객관화가 잘 되어 있는 나는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서도 목표치를 낮게 잡았다.


'너도 나도 (안 좋은 일로)TV에만 나오지 말자'


내가 임신했을 당시 세상은 아동학대 관련으로 매우 시끄러웠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야기, 관련 행정기관과 법제화 등에 대한 이야기가 며칠이고 인터넷 메인 화면을 도배했다.

아이가 있든 없든 전 국민이 분노하고 슬퍼했다.

그 때 나는 부른 배를 어루만지며 다짐하고 다짐했다.

'저기까지는 가지 말아야지. 가지 말자'


산후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비슷한 다짐을 했다.

'죽이지만 말자, 어떻게든 살려야지'


혹자는 내가 왜 저렇게까지 생각하나 싶을 것이다.

(지금보면 너무 비장해보이긴 하다)

아동학대의 가해 부모 중 일부는 자신이 그 아이를 학대하리라 생각 못 했을 것이다.

물론 애초에 육체적, 정신적, 상황적 여건 등 아이 낳을 준비가 제대로 안 된 이들이 아이를 낳아 벌어지는 예견된 비극도 있다.

그러나 개중에는 산후우울증, 산후 예상치 못한 상황의 변화 등의 이유로 결코 원치 않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이들도 있다.(물론 이렇다 한들 아동학대를 이해하거나 옹호하는 건 아니다)


다만 나 역시 100% 장담할 수 없다는 게 내 다짐의 근거였다.

세상 살다 보니 '나는 절대 안 그래야지'라는 생각만큼 쉽게 무너지는 게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이 아이를 살려야 한다.

그런데 아는 게 없다.


아는 게 없으면 배워야지.

유튜브로 '기저귀 가는 법', '수유하는 법', '트림 시키는 법' 등을 검색해 배웠다.

병원에서 내 가슴을 봐주러 들른 모유 실장님을 붙잡고 아이 안는 법을 배웠다.

산후조리원에 도착하자마자 방을 안내해 준 원장님을 붙잡고 속싸개, 겉싸개 싸는 법을 배웠다.

모자동실 시간에 아이를 받아 올 때는 원장님이 내 등을 손으로 탁탁 쳐주어 트림시키는 법을 배웠다.

정말 곁에 조카라도 있었으면 곁눈질로 배웠을 법한 기초적인 내용조차 하나하나 배워야 했다.

게다가 뭐든지 처음 배우는 게 느린 나라서 그 과정이 너무 고되었다.


그렇게 배우고 배웠음에도

예방접종 시 아이를 데리고 간 병원에서 우리 아이만 겉싸개가 훌훌 풀어졌다.

기저귀를 제대로 못 채워 오줌이 새어 나왔다.

트림을 제대로 못 시켜 눕히면 토한 적도 여럿 있다.


'겉싸개는 꽉 묶어도 왜 자꾸 헐거워지지?'

'젖병은 이 각도로 드는 게 맞나?'

'기저귀 줄 선이 아주 희미하게 일부 변했는데 바로 갈아줘야 하나, 더 내버려 둬도 되나?'

'트림 때 아이 등 두들기는 건 이 정도 강도가 맞나, 조리원에서는 더 세게였던 거 같은데, 그러면 아이에게 무리 가는 거 아니야?'

'아이 응아는 이 색, 점도가 맞는 거야?'

'용쓰기가 심한데 저게 용쓰기가 맞아?, 어디 아픈 거 아니야?'

'아기 체온이 왜 36.5도 이하인 거지, 저체온증인가?, 병원 가야 하나?'

'맘마 먹을 시간인데 잠을 계속 자네, 깨워서 먹여야 하나, 잘 자게 둬야 하나?'


이런저런 생각이 끊이지 않고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물음표로 시작해 물음표로 하루를 마감했다.

느낌표는 늘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떠올랐다.


새근새근 잠든 아이 곁에 다가가 숨 쉬는 지도 여러 번 확인했다.

아이가 먹고 자고 싸고 노는 모든 순간을 어플에 1분의 오차도 없이 기록해 나갔다.

안 그래도 아이 보느라 제대로 먹고 자지 못하는데 아이 잠자는 틈을 타서 유튜브, 네이버 검색하느라 더 내 몸을 돌보지 못했다.


보통 첫아이 키우면 우는 아이 붙잡고 한 번쯤 같이 운다는데 나는 단 한 번도 울어본 적이 없다.

어떻게든 이 아이 살려보겠다고.

살려야 한다고.

'무지'에서 오는 두려움이 절박함으로 변해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든 이 순간을 잘 넘겨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


여기까지 쓰고 문득 현타가 왔다.

이게 육아일기가 맞나.

왜 이렇게까지 나는 긴장하고 불안해하는가.

왜 내 삶은 늘 비장한가.

다만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건

나와 비슷하거나 같은 이들이 어딘가에 또 있으리라는 것.

세상에 나만 겪는 상황은 없다는 것.

이것 역시 내가 세상 살며 깨달은 것 중 하나니까.


아무튼 나는 아직도 '초보'엄마다.

시간이 흘러 아이가 나이를 먹어가도 이 개월 수의 아이는 처음 다루니까.

아마 둘째를 낳지 않는 한 나는 평생 '초보' 엄마일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초보의 서투름과 긴장으로 좌충우돌, 우당탕탕 순간이 여럿 있겠지만 초심자의 행운 역시 함께 할 테니까.

처음이란 열심과 진심이 담겨있을 테니까.

그래서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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