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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푸른색 May 20. 2023

어쨌든 아이와 홍대로 나가봅니다.

나의 인생네컷

사진출처_픽사베이


벌써 여름내음이 가득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극세사 이불과 온수매트 속으로 몸을 구겨 넣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길가에 무렇게나 핀 민들레를 보니 탐스러운 씨앗을 한가득 품고 있다. 살랑바람이 불어와 작디작은 요정의 우산모양 같은 작은 씨앗을 저 멀리로 여행을 보내주는 주말 아침이다.




오늘은 첫째와 둘째를 데리고 홍대 나들이를 가기로 했다. 보통은 차를 타고 이동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대중교통을 접하는 일이 드물었던 아이들에게 선뜻  버스를 타고 가자고 권했다.

"좋아요"

아마존 익스프레스를 타러 가는 아이들처럼 한껏 들뜬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다. 아빠팀과 엄마팀으로 나뉘어 2인 1조로 움직인다. 혼잡한 도시에서 미아를 방지하는 우리만의 방식이다.

아빠 전화번호는? 엄마 전화번호는?

아이들에게 다시 한번 외워보라고 한 다음, 버스에 탑승했다. 주말이라 꽉 막힌 도로지만 버스는 전용차선으로 시원하게 달려 나갔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기분까지 설레게 한다.




홍대에 도착해서 인생네컷을 찍었다.

아이들과 1:1 데이트를 하거나 우연히 여행지에서 사진을 남기기에는 인생네컷 만한 게 없다.

여러 가지 모양의 머리띠를 요리조리 바꿔 써 보며 찰칵찰칵 사진을 남겼다. 4인가족이니깐 각자 마음에 드는 사진을 하나씩 골라 네 컷의 사진을 만들었다. 찰나를 남겨두는 사진은 시간이 흘러도 순간을 기억하게 하는 마법 같은 힘이 있다. 사진만 보아도 그날의 날씨 옷차림 길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맛있게 먹은 음식과 디저트까지 모조리 기억상자에서 줄줄이 사탕처럼 딸려 나온다.



인생네컷.

나의 인생네컷은 무엇일까? 딱 네 컷만 고른다면 나는 어떤 장면을 골라서 넣을까. 문득 생각에 잠겼다.

제일 첫 번째 사진은 남편을 만나 임신과 출산에 관한 사진이 될 것 같다. 내 인생이 거세게 뒤집어진 순간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아마도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지금의 사진을 선택할 것 같다. 글을 쓰게 된 지금 이 순간들이 소중하고 의미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 두 장은 아껴두고 싶다. 작은 소원 두 가지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언젠가는 책을 출간하고 싶은 소망이다. 3년 정도 공을 들여 글을 써 볼 예정인데 꼭 이루고 싶은 마음이 있다. 마지막 하나는 작은 서점을 가지는 것이다. 서점 한편에는 작은 카페가 있고 누구나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는, 책이 잘 읽히는 북카페 느낌이 나면 좋겠다. 잔잔한 재즈음악이 흘러나오고 아늑한 조명이 있는 곳, 통창 밖으로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면 좋겠다. 맑은 날은 맑아서 흐린 날은 흐려서 비가 오는 날은 비가 와서 이곳에서 책을 읽고 싶은 그런 곳이면 좋겠다. 




마흔이 되니 자꾸 나이라는 숫자가 진득한 상태로 마음을 붙잡고 늘어진다. 이럴수록 더 과감하고 산뜻하게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서울살이를 턱걸이하며 아등바등 사는 것이 더 이상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었던 날들이 많았다. 평범하게 잘 지내는 듯했으나 들여다보면 그렇지 못한 순간들도 많았으리라.


이제 두 장의 사진을 만들 시간이다.

꽤 잘 나온 사진이 되면 좋겠다.




훗날,

마지막 사진을 선택하는 내가 있다.

인생 네 컷을 손에 쥐고 환하게 웃어 보인다.

시원한 바다 바람이 두 뺨을 스치는 순간

사진은 바람을 타고 민들레 씨앗처럼 자유롭게 날아가버린다.

무던히 후련한 인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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