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좋아하던 길이 있다. 해운대에서 송정으로 넘어가는 달맞이 길. 이 길은 벚꽃으로 된 가로수가 즐비한 길이었는데 봄이 되면 이 길을 지나는 것이 나의 봄맞이 행사였다. 드라이브는 그날의 공기와 햇빛의 강도 그리고 들려오던 음악까지 선명하게 기억된다. 한 장의 사진처럼 말이다.
벚꽃길에서 느끼는 마음은 봄을 온전히 담고 있다. 설렘과 행복한 핑크빛이 흩날리면 차 안에 있어도 따뜻한 공기와 화려한 벚꽃잎이 날리는 황홀함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보이는 해운대 바닷가는 마음을 시원하게 만들어주고 차창 안으로 날려서 들어오는 벚꽃 잎에 마음에 담는다. 달맞이 길을 천천히 걸으며 벚꽃을 즐기는 사람들 사이로 시원하게 달려 나가는 자동차.
그 자유로운 순간을 마음에 담는 것을 좋아했다.
늦은 밤의 드라이브도 좋다. 광안리 해변을 지나 광안대교의 불빛을 보고 있으면 거짓말처럼 예쁜 밤바다의 풍경을 담을 수 있다. 해변과 가까운 테라스 카페에 앉아 바다를 보며 커피를 마신다. 오가는 사람들을 자세히 탐구하는 재미는 덤이다.
커다란 대형견을 데리고 나와 산책을 하던 남자가 있었는데 크고 복슬복슬한 털을 가진 강아지를 보기 위해 아가씨들이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뒷모습은 원빈 같은 느낌이었다. 얇은 하얀색 긴 바지가 바람에 휘날리는 자유로운 느낌의 그 남자는 쪼리를 신고 대형견을 산책시키며 이쪽 바다에서 저쪽 바다 끝까지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만약 바다가 보이는 테라스가 싫다면 모래사장에 철퍼덕 주저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친구들은 바닷가에 앉아 파도 소리를 들으면 센치해진 마음으로 연애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남자지만 그 당시에는 꽤 심각했었다. 지나고 보니 바다와 드라이브는 나에게 20대의 추억이 가득한 장소가 되어준 특별한 곳이다.
비 오는 날의 드라이브는 수분크림의 텍스처를 닮았다. 촉촉하게 머금은 습기와 살짝 선선한 온도가 피부에 닿는다. 비 오는 날의 감성은 번거로운 것들을 특별하게 해 준다. 아이들도 비가 오는 날이면 장화를 신고 우산을 쓰고 물웅덩이를 첨벙거리며 즐거워하듯이 자동차 바퀴가 튀겨내는 물방울들이 팝콘처럼 날아다니면 그 물방울을 눈으로 만나는 시간이 마냥 즐겁다.
시동을 꺼두고 둔탁한 소리로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면 마음까지 편안해진다. 빗소리를 들으며 따뜻한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 나에게는 힐링이다. 비 오는 날에 누군가를 만난다면 정말 중요한 사람이 아닐까. 모든 수고스러움을 감당한 시간들이 만나야 열리는 열매처럼 함께 하고픈 마음이 커야만 가능한 시간이다. 비 오는 도로를 함께 달리고 싶은 사람은 마음이 잘 맞아 편안한 상대임에 틀림없다.
드라이브 갈래? 이 말이 주는 기분 좋은 안정감은 어떨까.
영화도 좋고 맛집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차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목적지를 향해서 시간을 나누는 것. 그 다정함이 주는 여유도 사랑스럽다. 남녀의 드라이브뿐만이 아니다. 여자들의 드라이브도 얼마나 맛있는 시간인지 모른다. 좋아하는 친구와 비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날에는 테이크아웃 커피를 사들고 한강으로 간다. 주차장 구석에 차를 세워놓고 좌석을 편안하게 조절한다. 거의 눕다시피 한 좌석에 누워 남들이 보면 오해하기 딱 좋겠다며 웃어 보인다. 커피도 있고 친구도 있는 한가로운 시간을 조용히 즐긴다. 신나게 이야기를 하고 나면 카페보다 자동차가 훨씬 편하다는 이야기가 절로 나온다.
평일을 보내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토요일 아침, 졸린 눈을 겨우 부여잡고 차에 탄다. 가족들과 함께 주말의 드라이브를 즐긴다. 요즘은 드라이브 쓰루 매장이 많아져서 간단한 음식과 함께 하기도 한다. 이상하게 드라이브를 하면서 먹는 음식은 더 맛이 좋다. 급하게 목적지를 향해서 나아간다면 음식을 먹을 여유조차 없겠지만 여유로운 시간에 속도를 줄여 천천히 가는 드라이브는 입안에 맴도는 맛까지 다르게 만들어주는 마법이 있나 보다. 멋진 풍경과 평소와 다른 느낌의 음식,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시간에 쫓겨 차창 밖의 풍경을 놓치고 있다면 당신은 지금 운전 중이다. 반대로 좋아하는 사람과 여유롭게 나아가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면 그것은 바로 드라이브가 아닐까. 시원하게 뻗은 도로를 달리며 답답한 마음까지 하늘로 날려버린다.
매일 가던 길도 신호에 멈춰 서면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기듯이 앞으로만 나아가는 인생이지만 가끔은 신호등의 빨간불처럼 억지로 잠시 쉬어가면 어떨까.
드라이브를 하는 마음으로 나만의 여유를 찾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