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새벽, 산책의 여유

by 여름의푸른색


일주일을 마무리하는 날, 아쉬움이 가득한 일요일이다.

일요일 아침에는 남편이 요리사. 아이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며 아침시간을 보낸다. 간단한 볶음밥과 떡국 그리고 제일 쉬운 주먹밥. 아이들도 어린이용 장갑을 양손에 끼고 조물조물 요리를 만든다. 직접 참여해서 더 맛있는 아침식사 시간이 완성된다. 아침을 즐기지 않는 나는 침대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남편이 친절하게 방문도 닫아준다. 아침이 여유로우면 기분이 좋아지는 마법이 생기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겹의 서비스가 추가되면 나는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도 좋지만 라테에 샷을 추가하고 저지방 우유를 뜨겁게 그리고 거품 많이! 남편은 까다로운 라테를 성실히 사다준다.

커피 한 잔으로 마음이 전해지는 따뜻한 일요일 아침이다.




커피를 사러 가는 날은 아이들과 동행한다. 이른바 일요일 아침 데이트다. 뭐든 데이트라는 말을 붙이면 신이 나는 아이들에게 남편은 대장처럼 이야기한다. 오늘 아빠랑 데이트할 사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옷을 갈아입고 현관에 서 있는 아이들. 엄마의 커피를 위해 세명이나 나갈 일인가 싶다가도 아이들도 남편도 없는 일요일 아침의 고요함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 남편의 배려로 잠깐동안 가지는 휴식시간이 너무 달콤하다.



아이들이 산책을 시작한 건, 제주여행으로 긴 시간을 보내면서부터였다. 한 지역에 오래 머물며 우리는 관광지를 다니는 대신 동네 산책을 했다. 골목마다 아기자기함이 묻어있고 길가에 피어있는 이름 모를 풀을 만나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고요한 아침에 낯선 여행지의 마을을 이곳저곳 탐색하는 동안 신기한 벌레도 만나고 길냥이와 야옹~소리를 내며 인사를 주고받기도 했다. 그렇게 매일 아침의 기운을 담고 숙소로 돌아왔다. 아침이라 부스스한 머리였지만 지금 보아도 소중한 사진들이 참 많이 남았다. 게다가 숙소로 돌아와서 먹는 아침은 꿀맛이다. 산책을 하며 만났던 많은 생명들을 다시 떠올리며 대화의 주제를 반찬삼아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아이들이 소소한 행복의 소중함을 알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동시를 만들거나 그림으로 표현하는 걸 보니 머릿속에 산책이라는 감정은 생각보다 강하게 남아있었다.




저녁에도 저녁 산책을 갔다. 간식도 사 먹고 버스킹 공연도 본다. 밤바다를 거닐며 반짝이는 상점의 불빛과 저 멀리 오징어 잡이 배의 빛나는 조명도 볼 수 있다. 바다 위에 별이 떠있는 것처럼 영롱한 빛이 아른거리는 모습은 꽤 낭만적이다. 해변에 앉아 파도소리를 들으며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바다를 바라보기도 한다. 짙은 색감이 주는 무거움이 마음을 제법 편안하게 만든다. 선선한 바닷바람이 찐득거리기는 하지만 여름의 밤바다는 그 자체로도 멋이 있다.




저녁 산책은 달랐다. 아침에는 보지 못했던 상점들과 시끌시끌해진 골목은 또 다른 생기를 전하고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서 저녁을 먹는 사람들, 간단한 안주와 기분 좋은 술자리를 가지는 사람들을 보며 골목을 지나간다. 노란 가로등에 의지해 걸어 다니다 보면 가정집의 작은 창문으로 새어 나오는 빛이 보인다. 우리도 서울에 있었다면 이 시간에 집에서 쉬고 있었겠지? 여행지라서 특별한 저녁시간을 보냈다. 숙소에 돌아와 깨끗하게 샤워를 마치면 몸도 가벼워지고 기분도 상쾌해지는 저녁산책의 효과를 체감하게 된다. 다시 배가 고프다는 것만 빼면 정말 완벽하다.




제주를 자주 방문하게 되면서 관광지와는 살짝 멀어졌다. 산책이 점점 생활 가까이에 자리하게 되자 우리는 여행 중간중간 차를 세우는 일이 잦아졌다. 길을 가다가 산책하기 좋은 해안 도로를 만나거나 이름 모를 작은 해변을 찾은 날은 그곳을 탐색하며 산책을 한다. 우리만 알고 있는 보물지도가 만들어지고 해마다 그곳을 찾아 사진을 찍는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과 우리가 늙어가는 모습도 동시에 눈으로 확인하게 된다.




산책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시간을 통제하기 위해서다. 바쁜 아침을 보내느라 에너지를 쏟아내는 나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남편도 출근 준비로 바쁘고 아이들도 각자 옷을 입고 준비물을 챙기느라 바쁘다. 가족 모두가 바쁘다. 아침 인사를 충분히 할 시간이 부족했다. 아이들을 오랫동안 껴안고 잠에서 편안하게 깰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 때문에 이 모든 것이 불가하다고 생각하니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산책을 하며 우리는 서로에게 조금 더 집중해서 눈을 맞추고 아이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준다. 서로가 서로에게 부족했던 시간을 산책을 통해 메워나가는 것이다. 송송 구멍이 뚫려있던 부분들도 따뜻한 대화가 오가는 산책을 마치면 매끈하게 채워져 있다. 이렇게 산책은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었다.


그래서 나는 산책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이전 07화토요일 드라이브의 여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