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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푸른색 Oct 29. 2023

시계 속에 갇힌 시간


시간의 건너편에 있었다. 건너편에 서서 나를 바라보는 것이 더 편했다. 내 삶에 깊숙이 관여하기 싫었던 마음도 있었나 보다. 무기력한 마음을 가득 안고 하루를 그냥 살아내고 있었다. 이렇게 살아도 하루 저렇게 살아도 하루인데 뭐가 어때. 고갈되어버린 에너지는 좀처럼 채워지지 않았고 나는 기름이 떨어져 경고등이 켜진 자동차 계기판처럼 가끔 깜빡이며 경고음을 냈다.




시간을 마냥 흘려보내기에 적합하게 설계되어 있다.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 본 적이 있는가. 시간은 내버려 두면 자연스럽게 흘러가니 잡을 필요도 막을 필요도 없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지내면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로 잠이 든다.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다. 나만 속이면 된다. 얼마나 편하고 좋은가.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들어볼까. 갑자기 어디서 이런 용기가 생겼는지 모르겠다. 저 너머에 있던 시간을 힘껏 당기기 시작했다. 내 삶의 중요한 곳까지 와닿을 수 있도록 양 팔에 힘을 주고 시간을 당겼다. 하지만 시간은 원래 있던 곳에 찰싹 붙어있었다. 비에 젖은 낙엽처럼 바닥에 엎드려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시간과 나의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다. 물컹거리고 찐득한 커다란 덩어리는 원래의 관성 때문인지 움직이고 싶지 않았나 보다. 커다란 갈고리를 걸어 당겨봐도 요지부동. 나에게 남은 힘도 점점 떨어져가고 이대로 가면 영영 시간과는 안녕이었다. 시간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나는 지금 네가 필요하다고 나에게 다시 돌아와달라고. 망설이던 시간의 덩어리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스멀스멀 나에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들었다. 새벽의 시간 속에서 일어나 책을 읽고 필사를 하고 글을 쓴다.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미련과 집착은 버려두고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내었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온전한 나로 존재한다. 동시에 살아있음을 느낀다. 시계 속에 갇혀있던 나의 발 한쪽이 잠시 풀려나 자유롭게 두 발로 돌아다닌다. 온전히 나의 의지로 흘러가는 시간. 그렇게 나의 하루하루가 나이테처럼 쌓아간다. 커다랗고 튼튼한 나무가 될 때까지 나는 이 시간을 즐기려고 한다.




째-깍-째-깍-

동그란 시계 안에 시간이 살고 있다. 그 속에는 시와 분과 초가 함께 한다. 그들은 가끔 만나고 또 헤어지기도 하면서 울고 웃으며 일생을 살아간다. 안타깝게도 한쪽 발은 한곳에 묶여 있어서 나머지 한쪽 발로만 움직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초, 1분, 1시간 정확하고 세밀하게 한 지점을 가리킨다. 쉴 새 없이 움직이지만 정확도도 놓치지 않는 전문가다. 시간을 살아내며 시계 속에 갇혀있는 그들은 우리와 다르지 않다. 시계라는 세상 속에서 각자의 역할이라는 한 지점에 발목이 잡힌 채 살아간다. 발버둥 쳐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아내로 엄마로 딸로 살아야 하는 여자는 다만 책임감이 강할 뿐이다.


이제는 책임감보다는 나를 위한 삶을 살고 싶다. 유한한 시간의 의미를 되뇌며 소중한 나의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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