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에 민감한 편은 아니지만 왠지 뒤처지면 아쉽다. 온도 차가 심해지더니 폐렴에 걸린 둘째와 입원 생활을 시작했다. 우리가 들어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맞은편 침대에 남자아이가 들어왔다. 커튼 밖으로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첫 입원인가 보다. 간호사 선생님께 제가 처음이라서요 라며 정중한 말투로 질문하는 엄마. 두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작은 아이를 안고 힘겨운 밤을 시작하고 있었다.
우리 집 둘째는 초등학생이다. 입원은 처음이다. 여러 가지 검사와 계속되는 주삿바늘에 눈물을 보이기도 했지만 이렇게 설득하고 저렇게 꼬셔서 무사히 입원 절차를 통과했다. 반면 반대편 침대에 있는 아이는 집에 가자. 엄마 안아. 이거 싫어. 나가자. 를 반복하며 밤새도록 엄마를 찾았다. 아빠가 있어도 엄마가. 엄마가 안아. 라며 오로지 엄마만을 원했다. 아이 엄마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아기띠를 하고 병실 복도를 돌고 돌았다. 아침이 올 때까지. 떠나가라 목청을 높이는 아이를 안고 엄마는 몇 번이고 부드러운 말투로 이해시켰다. 나는 저렇게 못 해. 나는 저런 엄마가 아니야. 나는 이미 모성애가 가출했어. 듣고 싶지 않아도 들리는 병실이라는 공간에서 나는 예전의 나를 떠올리게 되었다.
우리 집 둘째가 그랬다. 딱 18개월까지 매일 울었다. 나와 남편의 취침 시간은 새벽 4시였다. 밤을 꼬박 울어야만 지쳐서 잠들었던 둘째. 우리는 아기띠를 하고 겨우 소파에 기대어 아침이 오기 전 잠깐 눈을 붙였다. 다시 돌아가라고 하면 죽어도 가기 싫은 그 시절. 첫째와는 반대의 성향이었던 둘째라 더 힘겨웠으리라. 어깨에 아이라는 책임감을 업고 한 발짝도 떼기 힘겨웠던 시절이었다. 어느새 부모라는 못이 나에게 정확하게 꽂혔고 누군가 망치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 못의 무게에 짓눌려 도망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엄마니까.
병실에 아침이 밝았다. 아이는 여전히 울고 있었다. 아이 엄마는 긴 한숨을 쉬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얼마나 힘들까. 혼자서 온전히 이겨내야 할 시간이. 계속 마음이 쓰였지만 커튼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기에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때, 엄마도 힘들어. 엄마도. 아이 엄마는 밤새 아이를 안고 맞이한 아침이 반갑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복도로 나가려고 커튼을 열었다. 아이 엄마는 병실 안에 있는 화장실에서 울고 있었다. 아기띠로 아이를 안고 컴컴한 욕실 거울 앞에 서 있었다. 나는 침대 옆 서랍장을 열었다. 멀티 비타민 한 통을 꺼내 화장실로 갔다. 저기. 많이 힘들죠. 이거. 비타민이라도 먹어요. 아이 엄마는 여전히 울면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뒤돌아서 나오면서도 나는 마음이 아렸다.
1시간쯤 지났을까. 커튼 사이로 바나나 우유 두 개가 불쑥 들어왔다. 저기.. 아까는 너무 감사했어요. 수줍게 웃던 아이엄마는 화장실에서 만났을 때보다 맑아진 얼굴이었다. 다행이었다. 엄마라서 엄마니까 무수히 나를 조여오던 중압감을 떨치고 싶었다. 나는 그런 엄마가 아니라며 반기를 들기도 했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건 나는 엄마라는 사실 뿐이었다. 어쩌면 그녀도 나와 같은 시간을 지나고 있는 건 아닐까.
침대 테이블 위에 우유 두 개가 방굿 웃고 있다.
이제 혼자가 아니라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