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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푸른색 Nov 19. 2024

무지개, 너를 만나.



늦은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소설 쓰기 강의를 들으러 가는 날이라 아침부터 분주하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많은 비가 내렸다.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차와 스쳐 지나갈 때, 앞 유리에 물이 튀었다. 나는 자동차 속도를 천천히 줄였다. 오늘은 늦어도 어쩔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폭우 속에서 운전을 하다 보니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모든 감각을 비가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조금씩 앞으로 나가는 것뿐이었다.
내비게이션이 도착 장소와 가까워짐을 알려주었다.



"잠시 후에 우회전입니다"


나는 핸들을 꺾어 오른쪽으로 차를 움직였다. 작은 언덕길을 내려가는데 거짓말처럼 선명한 무지개가 보였다. 나는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소리를 질렀다. 작은 경계를 지나왔을 뿐인데 비는 멈추었고 하늘은 더없이 맑았다. 파란 하늘에 당당하게 피어난 무지개, 나는 그 우연함과 찰나의 황홀함에 반해버렸다.



그날의 무지개는 내가 지나온 길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폭우 속에서 옷이 흠뻑 젖을 때는 무지개를 떠올릴 겨를조차 없다. 심지어 무지개는 환상 속에 있는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보란 듯이 뜬 무지개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가던 길을 멈추면 안 된다고.
계속 걷다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하늘이 개고 무지개가 뜬다고. 묵묵히 발을 내디뎌 시간을 걸어 나오면 된다고.


사실 무지개는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
다만 내가 폭우 속에 있어서 몰랐을 뿐이다.


시간의 경계를 넘었다.

영원할 것 같던 어둠도 사라졌다.

무지개가 이렇게 가까이 있는 줄 알았더라면

조금 덜 슬퍼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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