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란 뭘까, <패스트 라이브스>

by jjjwy
tempImage0wtdpF.heic



보고싶은 영화에 한참 동안 담아두었던 <패스트 라이브스>를 이제야 보았다. 상도 받았고, 한국계 감독에, 유태오 배우의 연기가 궁금했음에도, 영화의 소재와 시놉시스가 조금 진부하게 느껴져서 선뜻 재생을 하기 어려웠었다.


영화는 현재, 술집에서 술을 마시며 대화하는 나영과 해성, 그리고 아서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 셋의 관계를 짐작해보는 화면 밖 관찰자들의 대화와 함께. 그리고 그들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그 다음 씬인 24년 전(대과거)의 한 서울 골목길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녀는 훌쩍거리며 걸어가고, 소년은 그런 소녀의 눈치를 살피며 발을 맞추고 있다. 소녀가 우는 까닭은 곧 드러난다. 소년이 소녀를 제치고 1등을 차지해서. 바로 주인공인 '나영'과 '해성'의 유년 시절이다.


나영의 가족은 캐나다로 이민을 가게 되고, 돈독했던 해성과의 사이는 흐지부지 멀어져버린다. 초등학생 때 캐나다로 이민을 간 나영이는 얼마나 치열하게 그곳에서 적응해나갔을까? 아마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뒷전으로 놓을만큼 정신없고 처절한 날들이었을 것이다.


시간은 흘러 12년 전(과거), 페이스북을 들여다보는 나영의 모습을 비춘다. (여담이지만, 페이스북을 통해 사람을 찾는 장면에서 너무 기시감이 들었다. 우리 모두가 한번쯤은 해보았던 행위가 아닌가!) 나영의 한국어는 사뭇 어색해져있다. 어머니와 통화를 하며 페이스북을 통해 친구들을 검색하다가 해성을 찾아낸다. 운명처럼, 해성은 나영을 찾고 있었다.


둘은 영상통화를 하며 가까워진다. 머나먼 거리를 무색케 해주는 기술의 힘을 빌려 초등학교 시절 첫사랑은 다시금 꽃피려는 듯 봉우리를 머금는다. 둘은 꼭 연인처럼 일상을 공유하지만 공간의 제약으로 인해 만날 수는 없다. 결국 나영은 이 연락을 정리하자며 해성에게 통보한다. 마치 연인이 헤어지듯이, 정리되는 관계를 향해 나영은 미안하다며 사과한다. "뭐가 미안해. 우리가 사귀기라도 했냐." 해성의 대답은 둘의 관계가 단순한 인연 혹은 연인으로 정의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나영은 아티스트 레지던시에 들어가고, 그곳에서 아서와 만나게 된다. 나영이 한국에서의 '인연'을 소개하는 말을 끝으로 과거는 막을 내린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하죠. 두 사람이 이루어지면, 전생에서 8천 겁의 인연이 닿아있다는 거래요.



아서가 나영에게 그 말을 믿냐고 묻자, 나영은 "아니요. 그건 한국에서 상대를 꼬실 때 하는 말이에요." 라며 웃는다. 암, 그것도 맞는 말이지... 해성 역시 공부를 위해 간 중국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난 것처럼 보인다.


시간은 다시 12년이 흘러서 현재로 돌아온다. 해성은 직장인이 되었고, 나영은 아서와 미국 뉴욕에서 작가로 살고 있다. 해성이 나영을 보러 뉴욕으로 향하고, 둘은 센트럴파크에서 24년만에 재회한다. 눈앞에 서로가 있는 현실을 믿을 수가 없다는 듯, 몇 번이고 감탄을 남발하면서. 둘은 뉴욕을 관광하며 그동안의 소회를 나눈다. 왜 한국에 갔을 때 만나주지 않았냐는 나영의 서운함 섞인 목소리에 해성은 사과만 할 뿐이다. 둘의 대화는, 둘의 인연에 대해 궤뚫는 물음을 던지지 못한 채 겉을 빙빙 돌기만 한다. 마치 그 본질을 직면했다간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어갈 것처럼.


아서는 나영이 감정적으로 동요하고 있음을 알아챈다. 둘의 인연을 가로막는 악역이 된 것 같다는 아서의 말이 쓰라렸다. 저 상황에서 불안해하지 않을 배우자가 있을까. 배우자의 첫사랑이 태평양을 건너 찾아왔는데, 배우자는 그 사람을 '매력적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어린 시절의 인연이니 만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부분이다. 그렇게 불안해하는 아서를 나영은 '사랑한다'고 이야기하며 안심시킨다. 불안해하는 연인에게 나의 사랑을 솔직하게 말해주는 것보다 좋은 방법은 없을 것이다. 나영도 그걸 알고 있었고.


이제 영화의 첫 장면이었던 술집으로 돌아온다. 나영과 해성은 한국어로 이야기를 한다. 만약에 나영이 미국에 가지 않았다면 어땠을지에 대해서.



너는 떠나야 하는 사람인 거야. 나는 네가 너라서 좋아한 거고.



나영은 떠나는 사람. 해성은 남겨지는 사람.


과거에는 그랬지만, 이번에는 해성이 떠나는 사람이 된다. 24년의 세월을 지나, 미국이라는 장소에서는 나영이 이곳에 남는 사람이다. 택시를 타기 직전에 해성과 나영은 마지막 작별인사를 한다. 다음 생에서는 우리의 연이 닿을 수 있지 않겠냐고. 이 전생들이 모여서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해성을 보내고, 나영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간다. 집앞에는 아서가 문앞에 앉아있다가 일어나서 울고 있는 나영을 안아준다. 마치 나영이 울 것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처럼. 영화는 그렇게 끝이 난다.




인연. 일상에서 참 많이 쓰는 단어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는다. 그 인연은 악연이 되는 경우도 있고, "이런 사람이 있었나?"하며 고개를 기울이게 하는 옛 사람들도 수없이 많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다 한번 마음 속에 깊게 스며드는 인연은 그 울림이 크다. '처음'의 의미가 깃든 인연이라면 더더욱. 바로 첫사랑이다.


내 첫사랑은 언제였던가. 첫사랑을 정의하는 형태에 따라서 다르겠지만(첫 연애냐, 처음 좋아한 사람이냐 등), 나는 대학교 신입생 때로 보통 이야기한다. 그 사람 빼고는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이름만 떠오려도 가슴이 벅차오르고, 그 사람과 함께한 시간들은 색 보정이라도 한듯 찬란하게 각인되어있다. 나영과 해성은, 첫사랑이라고 하기엔 조금 어린 나이일 수도 있지만 서로의 어린 시절에서 갑작스럽게 끝나버린 인연이란 점에서 더 애틋한 인연으로 마음 속에 남았을 것이다.


군대에서 나영이 생각을 했다는 해성의 말은 정말 현실 고증이었다. 머리를 요하지 않는 육체노동을 하다보면 과거에 소중했던 사람들이 차곡차곡 생각나기 마련이다. 그 기억의 한켠에, 과거에 자신을 떠나버렸던 나영의 뒷모습이 놓여있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향수를 자극한다. 그래서 그때의 인연 역시 더 애틋하게 느껴진다. 첫사랑이라는 이름을 굳이 붙히지 않더라도. 누구나 하나쯤은 떠올리면 아쉬움이 남는 그런 관계가 있다. 둘은 서로에게 그런 대상이 아니었을까.


만약 정말로 나영이 이민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둘은 과연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을까(물론 결혼이 사랑의 종착점인 것도 아니지만.)? 해성의 대사에서, 우리는 그러지 않았으리라고 유추할 수 있다. 너는 떠나는 사람이고, 나는 네가 너여서 좋아했다는 말.


그러니까 인연이라는 것은, 우리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헤어진 연인이 아니면 안될 것 같다가도 다른 인연으로 그 자리를 금세 채운 경험도 있고, 정말 안맞는다고 생각했는데 두고두고 생각나는 인연도 있다.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에 따라서도 인연을 향한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절대적인 인연이라는 것은 없다. 우리는 그저 흘러가는대로 살 뿐이고, 그 속에서 얽히고 섥히는 관계에 늘 진심을 다할 뿐이다.


전생 같은 건 믿지 않기에, 인연 따위의 말은 상대방을 꼬시기 위한 말이라는 나영의 말에 공감한다. 나는 인연은 타이밍이라고 생각한다. 인연을 맺기 적합한 시기에, 서로를 향한 호감이 얽혀들어야 인연은 형성된다. 해성과 나영은 그 타이밍이 맞지 않았던 인연이고, 과거를 반추하며 '이랬으면 어땠을까', '저랬으면 어땠을까' 하고 미련을 가져보는 행위는 현재의 인연을 자칫 등한시하게 할 수도 있다.


불가능한 인연은 흘려보내야 한다. 모든 인연을 다 간직하며 살 수는 없다. 우리의 시간과 마음은 한정적이니까, 가능한 인연들에 정성을 쏟자. 과거의 인연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간혹 술 한잔 하며 추억에 잠기고 싶을 때 하면 된다. 과거에 얽매여있다가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저, '그런 사람도 있었지' 하며 추억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인생은 풍성해지니까.


두 사람이 추억은 마음 한켠에 간직하고, 각자의 인연을 만나 행복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사랑으로의 회귀, <이터널 선샤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