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너무나 유명한 영화 <이터널 선샤인>을 다시 보았다.
이 영화는 태어나서 총 3번 보았다. 첫 번째는 내가 20대 초반이었을 때, 졸면서 꾸역꾸역 봤고, 두 번째는 20대 중반 시절, 그 때는 그래도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30대 초반인 지금, 다시 보고나서 엉엉 울었다. 20대 초반의 나, 중반의 나, 그리고 30대 초반의 나는 각각 다른 관객이 되었던 것 같다. 영화는 받아들이는 관객의 경험에 따라 그 감동과 해석이 달라지곤 하니까.
20대 초반의 나는 사랑을 잘 몰랐다. 짝사랑에 매달리기만 할 줄 알았다. 사람들 간에 이루어지는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잘 알아채지 못했다. 사람은 어려웠고 사랑은 일차원적이었다. 사랑은 지극히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했고, 언젠가는 그런 사랑을 나도 할 날이 오겠지, 하는 꿈을 꾸었다. 그래서 영화에서처럼 치고받을 듯 싸우는 연인의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다.
20대 중반의 나는 그래도 사람과 삶에 대한 경험이 조금 쌓여서 삶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소 비관적으로 되었다. 사람에 상처받았고 사랑에 대한 깊은 감정은 여전히 부족했다. 여전히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었지만, 적어도 사랑이 늘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쯤은 알았다. 현실에 있는 사랑의 형태들이 그러했으니까.
30대 초반의 나는 이제 제법 깊은 사랑을 해보았고, 그로 인해 심한 감정의 변화들을 경험했다. 나는 구름 위에 있는 것처럼 행복하기도 했다가, 깊은 땅굴을 파고 들어가 그 속에 한동안 은신하기도 했다. 사랑은 내가 꿈꾸던 것만큼 아름답지 않았고 너무나 고통스러운 순간들이 자꾸 삶에 침투했다. 그러나 그만큼 진심으로 사랑했고, 나 역시 상대에게 상처를 준 기억들이 떠오를 때마다 죄스러워 괴로웠다. 내가 받은 상처보다도 그 사람은 더 힘들었겠지. 내가 더 성숙하고 멋진 사람이었어야 했는데. 내가 좀 더 여유로웠어야 했는데. 후회되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가도 그 사람이 밉다가도 다시 미칠듯이 그리워지곤 한다.
이 영화는 사랑으로 야기되는 많은 감정들을 포괄한다. 사랑에 빠졌을 때의 설렘, 관계를 지속해나갈 때의 안정감, 어느새 찾아오는 권태, 갈등, 그로 인한 이별과 상실감, 그리고 미칠 것 같은 후회.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관계를 따라가며 우리는 또다시 아픈 사랑을 하는 경험을 한다.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결국엔 헤어지고 마는, 그러나 결국엔 내가 그 사람을 너무나 사랑했었구나, 하는 깨달음과 함께 찾아오는 후회와 미련.
사랑에 능통한 사람은 없다. 사랑은 항상 어렵다. 왜냐하면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은 '주고 받는' 것이다. 상대가 있고, 시간과 공간이 있고, 상황이 있고, 우연들이 있다. 이 모든 것들이 100% 다 완벽하게 돌아갈 수는 없다. 결국 나의 뜻대로 되지 않는 관계 때문에 고통받는다.
그러나 나만 힘들었을까? 상대도 나의 부족한 면들과 우리 주위의 제약으로 인해 힘들었을 것이다. 분명하다. 사랑을 하는 두 사람은 이어져있다. 나의 감정은 100% 나만의 감정이 아니다. 나의 감정을 상대방도 느낀다. 그것이 어떠한 실선으로 그려진 정물처럼 확실한 형태의 공감은 아니겠지만, 그저 느끼는 것이다. 이 사람이 지금 불안해하고 있구나, 이 사람이 지금 불만족스럽구나, 이 사람이 나로 인해... 힘들구나. 그런 것들. 그러한 순간들이 동반될 때가 사랑을 할 때는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은연 중에 느끼는 감정은 내버려두면 그저 감정으로 부유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들을 밖으로 꺼내서, 사랑에 대한 불안과 한 편으로는 확신을 이야기했더라면. '나는 네가 이렇게 행동해서 힘들어. 그렇지만 난 널 정말 사랑해.' 따위의 말들로 상대방을 안심시켰더라면. 상대방의 때로는 치기 어린 모습에 '괜찮다(Okay)'라고 말해주었더라면.
이 모든 생각들은 그러나 사랑에서 한 발짝 떨어지고 나서야 떠오르기 마련이다. 사랑의 한복판에 있을 때 우리는 보통 눈이 멀고 귀가 닫힌다. 상대에 대한 감정이 너무나 커서 이성적인 판단을 잘 못하게 된다. 적어도 나는 그러했다.
그래서 후회가 된다. 상대방을 더 아껴줄걸. 상대방의 감정에 귀기울일걸. 다름을 인정하고 기다릴걸. 하는 후회들... 그러나 그래봤자 소용이 없다. 왜냐하면 당신은 이미 내 곁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괴롭다. 그래서 상대방을 너무나 잊고 싶다. 당신이 내 마음 속에 계속해서 남아있는 한 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아서이다.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그래서 서로를 잊으려 한다. '이성'적인 과학기술을 동원해 '감정'을 없애기 위해. 그러나 잊힌 것은 '감정'이 아닌 '기억'이다. 상대방에 대한 기억. 너와의 첫만남, 관계의 발전, 다툼, 이별, 후회. 기억들은 사라진다.
관계 중심적인 감정에서 벗어나, 내가 너에게 위로받고, 네가 나에게 위로받았던 그런 순간들이 있다. 정말 행복했던 순간들이 있다. "이 기억만은 지우지 않게 해주세요." 조엘은 애원한다. 후회한다. 그러나 기억은 지워진다. 그러나, 괜찮다. 그와 같은 경험이 또다시, 충분히 많이 쌓게 될 테니까.
다시 돌아와서, 지난 사랑의 기억 때문에 괴로워도 나는 너를 잊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관계는 끝났지만,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순간들, 추억들은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 그 추억들이 떠오를 때마다 내가 괴로운 것은 다시 그 때로 회귀할 수 없다는 마음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내가 너를 정말 마음을 다해 사랑했다는 사실이기도 하다.
지금은 이렇게 생각하지만, 또 기억들이 떠오르면 나는 괴로워하겠지. 그러다가도 다시 마음을 고쳐먹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가 함께 나눈 소중한 순간들이 있었다고. 나는 내 삶의 어떤 특정한 시기에 나보다도 너를 더 아꼈고, 사랑했고, 그로 인해 욕심이 너무 많았다고. 그래서 너를 놓쳤다고. 그래도 네가 없었다면 내 삶이 너무나 공허했을 거라고. 좋은 순간들을 나눠줘서 고맙다고.
사랑이라는 강렬한 감정은 뇌가 잘 잊지 않는 것 같다. 메리가 하워드를 마음 깊은 곳에서는 떠나보내지 못한 것처럼,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다시 만난 것처럼. 어차피 사랑이 한 번 시작되어버린 순간, 우리의 뇌는 그것을 기억한다. 아무리 잊으려해도 방법은 없다. 그러니까 그만 받아들이자. 뜨겁게 사랑했었노라고.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거라고. 당신으로 인해 힘든 순간들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들을 할 거라고. 다 괜찮다고.
당신이 인생의 남은 시간 동안 많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당신 역시 나를 잊지 말아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바라는 것은 이렇게 딱 두 개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