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삼킨 공허와 올인의 굴레

by Bluebrowny

지난날의 나를 복기하다 보니, 내 인생에는 커다란 구멍 하나가 뚫려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사춘기를 겪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사춘기라는 사치를 부릴 여유가 내게는 할당되지 않았다. 남들은 부모와 각을 세우며 자아를 찾던 시기에, 나는 여전히 부모의 말에 거역하지 못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남아 있었다.

폭발하지 못한 사춘기의 에너지는 안으로 곪아 허기로 변했다. 그 결핍을 채우는 도피처는 문구점에서 산 싸구려 불량식품이었다. 길 위에서 먼지 섞인 설탕 가루를 털어 넣으며 허기를 달랬다. 사실 그건 간식이었다기보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외로움을 삼키는 나만의 방식이었을까. 아무리 부어도 채워지지 않는 밑 빠진 허기를 달래던 그 청소년기는, 내 인생에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계절이 되었다.


20대가 되어서도 생존을 위한 나의 파닥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혼자서 해내야 한다’는 뒤틀린 강박이 뼈에 새겨진 탓인지, 나는 융통성이라는 것을 배우지 못했다. 무엇 하나를 시작하면 다른 모든 것을 제쳐두고 내 삶 전체를 던져야만 직성이 풀렸다. 이른바 불안장애는 내게 '적당히'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나를 구해줄 구명조끼는 없다는 공포가 일상을 지배했다. 친구들과의 만남도, 소소한 일상도 모두 사치로 전락했다. 오로지 정해둔 목표에만 올인하며 나를 소진시켰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고 독하다거나 열정적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그것은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발버둥이었다. 성취라는 굴레는 참 잔인했다. 하나를 이루면 또 다른 하나가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또다시 다음을 향해 파닥거렸다. 그렇게 삶은 만끽해야 할 여정이 아니라, 해치워야 할 거대한 굴레가 되어 있었다.


이제 30대가 된 나를 돌아본다. 10대의 과자 봉지와 20대의 숨 가쁜 올인이 나를 어디로 데려다 놓았는지. 나는 여전히 좁은 방 안에 누워 불안으로 고통받는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그토록 필사적으로 파닥거렸던 이유는, 누구도 나에게 ”이제 그만 헤엄쳐도 돼, 여기 따뜻한 수건이 있어"라고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는 내가 나에게 그 말을 해주고 싶다. 길 위에서 불량식품을 씹던 아이에게, 융통성 없이 스스로를 볶아대던 그 불안한 청춘에게.

"이제 그만 파닥거려도 돼. 밖으로 나와서 젖은 몸을 말려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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