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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씨 Jul 24. 2022

눈치




살면서 꼭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없으면 안 되는 것 중에는 돈, 품위, 겸손 그리고 ‘눈치’가 있다. 상대가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그 순간의 공기와 표정만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마음을 읽어내는 능력. 대개 눈치가 빠르면 사회생활을 잘한다고들 한다. 언제 어디서든 알아서 필요한 일을 척척 해놓고 해줬으면 하는 말을 쏙쏙 집어서 할 수 있는 사람은 쉽게 미움받지 않는다. 제삼자가 보기에는 그런 행동이 얄밉게 보이기도 하겠지만 어쨌거나 좋은 자리를 선점하는 건 늘 눈치가 빠른 사람들이었다. 그건 단지 직감이 뛰어나다고 해서 가능한 것도 아니다. 당연히 노력이 필요하다. 일상에서 타인에게 관심을 주고 세심하게 반응을 살피는 사람들이 상대방의 사소한 행동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


그래서 눈치는 일종의 배려가 아닐까 생각한다. 남에게 일말의 관심도 없는 사람이 눈치가 빠를 수 있을까. 어떤 상황에서 판단을 내릴 때 나의 기분이 제일 중요한 사람이 타인에게도 좋은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물론 가뜩이나 작은 손해에도 바들바들 떠는 사람이 가득한 이런 각박한 시대에 눈치가 다 무슨 소용이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인간은 절대로 혼자 살 수 없다. 그게 가능하다고 믿는 건 착각이다. 당신이 아무도 만나지 않고 철저하게 집안에 틀어박혀 살고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당장 당신이 주문한 음식을 배달해줄 사람이 없다면, 당신이 입고 있는 다 늘어진 티셔츠를 파는 사람이 없다면, 당신이 들고 있는 휴대폰 속 반도체를 만드는 사람이 없어도 지금처럼 태평하게 살 수 있을까. 그러므로 타인과 무리 없이 어울려 살기 위해서는 때때로 이타심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나 또한 어디에 가든지 환영받는 존재가 되고 싶다. 하지만 지금 갓 태어난 게 아니라면 존재 자체로 환영받을 거라는 믿음은 너무 위험하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갈 땐 일단 눈치를 살핀다. 내가 끼어들어도 괜찮은 상황인지 내가 하는 말이 찬물을 끼얹지는 않을지 분위기를 파악한다. 이것이 비굴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눈치를 본다는 말은 때로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는데 너무 줏대 없이 남의 의견에 맞추려고만 할 때 그렇다. 타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채고 난 후의 행동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센스 있는 사람인지 비굴한 사람인지가 결정된다. 쉽게 말해 입장에 허락이 필요한 곳에서는 그곳에서 원하는 조건에 맞게 태도를 취한다. 그 조건을 살피는 것이 눈치다. 조건에 맞췄는데도 누군가의 시선이나 말 때문에 들어가기를 포기한다면 그때부턴 비굴한 사람이 된다.


비굴한 순간이 반복되면 당연히 상처를 받는다. 그러니까 분위기를 파악하되 타인의 말이나 행동에 휘둘릴 필요는 없다. 한때이긴 했지만 눈치 없는 사람인 척하며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눈치 없는 척하는 사람이란, 제멋대로 아무렇게나 행동하고 뒤늦게 “어머 그랬구나 미안해”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사실 조금도 미안하지 않지만 ‘미안해’ 세 글자로 내 태도의 불손을 때우고 상대방의 입을 막아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좋았던 건 말 그대로 내맘대로 말하고 행동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휘둘리는 일이 없었다는 점이고 싫었던 건 그로 인해 나를 멀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단점을 깨달았을 땐 이미 여러 사람이 나를 떠난 후였다.


인간관계에서 밀고 당기기만큼 쓸모없고 피곤한 일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세상엔 진심만으로 사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텐션조차 유지할 의지가 없다면 동등한 관계를 만들기 어렵다. 괜히 눈치싸움이란 표현이 생긴 게 아닐 것이다. 지금 이 글에서 조차 이타심을 가지라고 했다가 휘둘리지 말라고 하고, 눈치가 빨라야 한다고 했다가 너무 눈치 보지는 말라고 하니 말이다. 너무 복잡하고 피곤한 느낌이 들지만 반대로 눈치 보지 않고 산다고 과연 편하기만 할까. 경험적으로 말하면 편하지 않다. 자발적 고립이라도 외로움은 찾아온다. 언제까지나 제멋대로인 사람을 그대로 두고 봐주는 사람은 흔치 않다. 그러니까 외롭지 않을 만큼은 눈치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초라하게 울고 싶지 않다면, 그것이 두려워 혼자임을 감수하고 집안에 틀어박히고 싶은 게 아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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