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보러 왔다

(제목 정하는 게 가장 어려운 1인)

by 파란레몬

어둑어둑하고 조용한 산길을 10분 정도 올라가다 보니 주차할 수 있는 공터가 나왔다.

아까보단 조~금 더 잘 보이겠지 정도의 기대감 한 스푼과 조금 피곤해져서 집에 가고픈 마음이 아홉 스푼 정도 있던 나는 문을 내리자마자 보이는 광경에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연신 대박을 외치는 나를 보고 후다닥 커피를 들고 따라 내린 남편도 똑같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조금 잘 보이는 수준이 아니라 별빛 때문에 어둡지 않게 느껴질 만큼 밝고 선명하게 보이는 별자리.

이 정도면 맨 눈으로도 안드로메다 은하의 존재감이 보이겠다 했지만 당연하게도 그런 일은 없었다.

아주 어릴 적에 본 뒤로 이렇게 밝고 선명한 국자모양의 북두칠성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심지어 옆에 붙어있는 작은 별까지 흐릿하지만 아주 미세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북두칠성이 떠있는 곳의 반대쪽 하늘은 차들의 안전을 위해 아주 밝은 가로등이 있었고, 그 너머로는 산이 우뚝 솟아있어 볼 수가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별자리 어플과 하늘을 번갈아보던 중 남편이 또다시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했다.

남편 친척 어른의 밭이 약 30분 정도만 더 가면 있는데, 비교적 주변의 산이 낮고 가로등이 적어 몹시 어두우며 하늘이 맑은 시골이라 기왕 별을 보기로 했으니 그곳에 가서 오리온자리까지 보고 가는 게 어떻냐는 제안이었다.


이미 시간은 밤 10시를 지나고 있었지만 토요일을 앞둔 직장인들의 패기는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또다시 별을 보기 위해 차에 몸을 실었다.

사실 나야 조수석에 앉아서 창밖 풍경이나 구경하면 그만이지만, 운전하는 남편은 몹시 고단할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남편은 거기 가면 별이 얼마나 더 잘 보일까 하는 기대감에 부풀어 매우 즐거워 보였다.

나보다도 더 즐거워 보이는 남편을 보니 갑자기 만화 유리가면에서 본 아주 인상 깊었던 내용이 생각났다.


주인공인 마야를 좋아하는 마스미가 약혼녀와 별얘기를 하는 부분인데, 나는 처음에는 이 둘이 잘 되길 바랐었다.

마야랑 마스미의 나이차이가 좀 많다 보니 차라리 나잇대가 비슷한 약혼녀와 잘 되라는 마음이었는데, 마스미는 별 보기를 좋아하고 약혼녀 시오리는 그런 마스미가 특이하다며 밤하늘의 별보다 발밑에 빛나는 야경이 더 아름답다고 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별 좋아하는 사람과 야경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좀 결이 다르기는 하지..

물론 사이좋게 지낼 수 있고, 친하게도 지낼 수 있지만 영혼의 반쪽이라고 부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유리가면에서 진짜 사랑은 영혼의 반쪽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마당에 별과 야경이면 말 다한 셈이니 말이다.


남편에게 이런 내용을 설명해 준 뒤 우린 둘 다 별 보는 걸 좋아해서 다행이다, 한 명만 별 보는 거 좋아했으면 다른 한 명은 무지하게 지루했을 것 아니냐는 얘기를 했더니 남편이 굉장히 느끼한 대답을 했었던 것 같은데 너무 느끼해서 기억에서 지워버린 것 같다.

아무리 떠올려봐도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

아무튼 이런저런 시답잖은 얘기를 나누며 드디어 우리는 목적지 아닌 목적지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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