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앞에 시작하는 운동

작심하루가 될까봐 무서운 마음

by 파란레몬

작년 여름은 그럭저럭 잘 보냈는데 올해는 체력이 작년보다 더 안 좋아졌는지 좀 더 힘들었다.

냉방병으로 컨디션이 수직 하락했고, 업무 능률도 하락했고, 그러다 보니 덩달아 월루로 쓰던 브런치도 뜸해졌다.


여름휴가는 말할 것도 없이 힘들었다.

하필이면 장마기간과 장미축제 기간이 겹쳐 몸도 마음도 지친 휴가를 보내고 온 나는 힐링은커녕, 몸의 회복을 위해 좋아하는 술도 못 마시고 드러누워야만 했다.

밤 12시가 되어서야 눈이 감기는 내가 저녁 9시가 되기도 전에 잠이 들었고, 일주일 정도를 반복하니 겨우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가 되었다.


그 사이 내 몫이던 청소를 남편이 해주었는데 작은 결벽증이 있는 내 기준에는 영 탐탁지 않았다.

그래도 선의로 해준 행동에 뭐라 말을 얹으랴.. 고생했다는 말과 함께 이제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건강 앞에 드디어 결심이 섰다.

다만 나와 남편은 여가생활을 즐기는 저녁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잠을 조금 줄여서 아침 일찍 운동을 하기로 했다.

헬스장에서 사용할 운동화를 준비하고, 샤워용품은 혹시나 헬스장에 갖춰져 있을지도 모르니 등록하면서 물어보기로 하고 곧장 헬스장으로 향했다.


아뿔싸.. 평일에는 항시 간판의 불이 켜져 있는 모습만 봐서 꽤 늦은 시간까지 운영한다고만 생각했던 집 앞의 헬스장이 토요일은 일찍 끝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그렇지, 나는 저녁이 있는 삶과 주말이 있는 삶을 소중히 여기면서 왜 남의 주말은 당연하게 일한다고 생각했을까.

어찌 되었던 집순이인 우리가 모처럼 토요일에 밖으로 나왔으니 겸사겸사 데이트를 하기로 했고, 기쁜 마음으로 오랜만의 음주를 즐겼다.

육회에 소주를 기울이며 사실 이렇게 마시러 다니는 것도 나름의 운동 아니냐는 망언을 주고받으며 내 컨디션이 예전만 못 하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신나게 음주를 즐긴 나는 일요일 하루를 장염으로 날려야 했다.


먹기만 하면 내보내기 바쁜 상태 때문에 쫄쫄 굶으며 누워서 하루를 보내고 나니, 나태해지던 마음이 다시 다잡혔다.

술을 좋아하는 내가 술을 못 마시게 된다니, 이 것만큼이나 뼈저리게 와닿는 경고신호가 있을 수가 없었다.

건강도 건강이지만, 앞으로도 술을 마시려면 운동을 해야 된다.. 기필코..


그리고 월요일 저녁 퇴근하자마자 헬스장으로 가서 등록을 마치고 이것저것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운동화는 미리 준비해 두어 다행이었지만, 샤워용품은 별도로 지참해야 되는 품목이라는 안내를 받았다.

그럼 내일부터 나오겠다는 얘기와 함께 곧장 다이소로 향해 필요한 용품들을 챙겼다.

일회용으로 나오는 여행용 세면도구들이 편해 보여 살짝 혹했지만 환경 문제가 신경이 쓰여 다회용으로 나온 자그마한 세면도구 세트를 구입하고, 물이 잘 마를 것 같은 가방을 구입했다.


헬스장 등록비와 자질구레한 준비용품들을 위해 돈을 썼으니 이제는 정말 안 갈 수가 없었다.

평소 남편은 아침 7시 30분쯤, 나는 아침 8시쯤 깨어나서 여유롭게 출근준비를 했었는데 오늘은 새벽 6시에 깨어나 세수와 양치만 간단히 마치고 또 어디 가냐고 짜증 내는 고양이를 달래준 뒤 미리 준비해 둔 것들을 들고 헬스장으로 향했다.


그렇다. 오늘 아침에 나는 첫 운동을 했다.

첫날은 보통 뿌듯함과 개운한 기분이 든다는데 나는 벌써부터 근육통으로 아픈걸 보니 그간 내 몸이 정말 안 좋기는 안 좋았던 모양이다.

남편은 배고픈 것 말고는 불편함을 못 느끼겠다는데, 나는 아침부터 졸린 눈을 비벼가며 업무를 보고 결국 실수도 한 개 발견했다.

운동 시작한 지 하루도 안 되어서 운동을 시작했다는 글을 쓰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다.

너무 피곤해서 내일부터 안 할까 봐.. 어디라도 써놓아야 마음을 다잡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도 확실하게 하나는 좋은 점이 있다.

술 생각이 전혀 안 난다.. 그저 피곤해서 얼른 침대에 누워 자고 싶은 생각만 든다.. 얼른 집에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