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긴 연휴, 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떠나고 여기저기로 떠나던 연휴.
하지만 나는 사람이 많은 걸 싫어해서 긴 연휴에 할 게임만 정해놓고 기다렸다.
마침 헬스장도 연휴 동안 쉰다니까 집 밖으로 안 나가고 정말 게임만 할 계획이었다. 분명히 그랬다.
연휴가 시작되던 금요일, 시가로부터 호출이 떨어졌다.
무언가 고장이 나서 수리를 하려고 보니 눈이 침침하고 힘이 부쳐 남편이 필요하셨던 모양이다.
남편도 정보를 검색하는 능력은 나보다 부족한 편이라 옆에서 잔소리를 거들고자 함께 다녀왔는데, 다녀오니 하루가 지나있었다.
토요일은 기필코 편히 쉬리라 생각했는데 축구가 또 기가 막히게 흥미진진한 경기를 하는 바람에 도파민이 돌아 남편과 축구 얘기로 열을 올리느라 늦게 잠이 들었다.
일요일은 일찍 시가 조상의 성묘를 다녀온 뒤 본가에 가서 부모님과 먹을 전을 몇 가지 만들었다.
명절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따로 음식을 해본 적은 없는데, 올해는 이상하게 어릴 적 먹었던 연근 전과 새우전이 먹고 싶어서 만들어봤는데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고 시간도 오래 걸렸다.
그런데 생각보다 도구가 다양하게 많이 있어서 깜짝 놀랐다.
신혼시절 초보는 장비빨로 승부한다고 이것저것 사놓고서는 요리에 흥미를 잃고 기억에서 지웠는데, 튀김 기름 방지망이라던가, 튀김 기름 빼는 밧드라던가, 평소에는 쓸 일이 없어 찬장 구석에 처박아 놓고 까먹었던 도구들이 이번에는 아주 요긴하게 쓰여서 또다시 미니멀리즘으로부터 한 걸음 멀어졌다.
기름에 찌든 도구들을 세척하고, 바닥에 묻은 기름을 대충 밀대로 닦고 뻗어있자니 남편이 술 마시러 가자고 일으켰다.
곗돈을 모으는 친구와의 술자리라 비싸고 맛있는 안주를 먹을 수 있다는 어필에 냉큼 따라나섰지만, 기름 냄새로 입맛이 떨어져 안주보다 술이 더 잘 들어갔다.
그뿐이랴, 생전 처음 해보는 명절 음식 과정이 내 생각보다 체력을 많이 잡아먹었던 모양이었다.
최근에 헬스로 엉망진창이던 체력을 어느 정도 늘려놓았으니 괜찮을 거라는 계산이었는데, 내 생각보다 체력이 저질이었고, 내 생각보다 체력을 많이 소모했다.
평소보다 술을 덜 마셨는데도 다음날 지독한 술병과 함께 깨어났다.
안주를 많이 안 먹은 탓인지 토를 해도 위액만 올라올 뿐 몸이 편해지지는 않았다.
오후에는 본가에 가서 딸의 생애 첫 명절 요리를 맛보시라 하고 자랑할 계획이 잡혀있었는데 차를 타고 이동하는 상상만 해도 헛구역질이 올라올 것 같았다.
반나절을 침대에서 자다 깨다를 반복하니 겨우 차를 탈 정도의 컨디션으로 회복이 되었고, 약속시간보다 1시간 늦게 본가에 방문했지만 술병이 단단히 난 몸은 짧은 이동시간도 견디기 힘들었던 모양인지 도착하자마자 엄마의 편한 옷으로 환복 후 안방 침대에 드러누웠다.
부모님과 남편, 동생은 저런 건 20대에 졸업해야 되는 거 아니냐며 나의 험담으로 화기애애했다..
저라고 이럴 줄 알았겠습니까.. 평소보다 적게 마셨는데 탈이 난 건 분명히 안 하던 짓을 해서 그럴 것이다.
거기에 생리까지 겹쳐서 등등의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며 항변하고 싶었지만 몸을 일으킬 수 없어 그저 거실에서 들려오는 얘기에 억울해하며 누워있었다.
그렇게 술병으로 긴 연휴를 힘겹고 허무하게 보낸 탓일까.. 아직까지 술 생각이 전혀 나지 않는다.
예전이었으면 숙취에 시달려도 사나흘만 지나면 어김없이 술 생각이 떠올랐는데,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더럽고 아니꼬워서 안 마신다 라는 생각과 몸이 아직 덜 회복되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몸이 안 좋으면 알아서 술 생각이 안 나는구나..
남편도 내가 이참에 최장 언제까지 술을 안 마시나 도전해 보겠다며 금주 선언을 하니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자며 유혹하기 시작했다.
과연 오늘 저녁의 나는 삼겹살에 음료수를 마셨을까 소주를 마셨을까..
다음 주 브런치에 당당하게 금주 2주 성공담을 쓸 수 있을지, 아니면 다시 마시기 시작했다며 반성문을 쓰게 될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