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경계를 보고 사물을 구분할 수 있다.
이전 글에서 갓 태어난 아이의 시각형성 과정을 이야기하며 누워 있는 아이 위로 흑백으로 된 모빌장난감이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결국에는 흑백의 강한 대비가 경계를 만들고 경계가 사물을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과정이라 이해했다
경계는 색이든 재질이든 두 개의 다른 특성이 강하게 만날 때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반대로 때로는 강한 대비가 생기지 않을 경우 경계에 제3의 물질은 놓아 인위적으로 경계를 강조하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경계로 사물을 규정하기도 하다.
올여름 랜트카로 유럽 남쪽을 가다가 잠시 차를 세우고 내려다본 사진. 바다와 육지사이 서로 다른 특성으로 자연스럽게 생긴 경계가 보이고, 좀 더 자세히 보면 인위적으로 놓인 철길로 구분된 경계도 볼 수 있다.
경계에 서면 사물을 알 수 있다.
경계로 사물을 구분할 수 있지만 사물자체를 알기 위해서는 경계에 다가가는 방법이 있다.
경계에 서 있으면 무엇이 경계를 만들었는지 실제로 알 수 있게 된다. 발등에 부딧치는 물을 느낄 수도 있고, 서걱서걱 들어가는 모래를 느낄 수도 있다. 물이 어떤 건지 모래가 어떤 것인지 몸으로 느끼고 비교할 수 있게 된다.
무엇이 경계를 만들게 되었는지 좀 더 다양한 감각으로 깊게 알 수 있다.
삶에 있어서 경험이라는 것 지식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 많은 학습을 하게 된다.
책이나 방송을 통해 알게 되는 학습도 가능하지만 나는 항상 몸으로 부딧치며 얻으려 했던 것 같다. 생각하기 전에 몸을 먼저 움직이는 타입이었던 것 같다.
경계에 서서 세상을 보려 한다.
사춘기시절
전학 간 학교에서, 동네를 떠난 대학교에서 새로운 환경에 속하지 못하는 것 같은 나 자신에 '이방인'이란 말이 깊게 다가왔었고..
유학을 와서 20년을 넘게 살아도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미국 이민자의 삶 속에..
그리고 18년 다녔던 직장을 떠나 새로운 직장에서의 생활에서..
이제는 이방인으로 살기보다는 경계에 서서 두 개의 사물을 더 잘 볼 수 있는 경계인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