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에 일곱

8. 성북동 디너쑈

by 늙은 아빠

나이가 들면 거추장스러운 일이 많아지는 것이 사실이다. 은행 잔고가 늘어가고 거리낌 없이 소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생활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사회적 책임과 주변의 경제적 기대가 어깨를 짓누른다. 눈가의 주름은 거침없이 늘어나고 살갗에 거무스름한 얼룩이 번지기 시작한다. 피부는 메마르고 소화는 더디다. 내가 꿈꾸는 상대는 스무 살의 그때와 같은데 나 혼자 마흔을 넘었고 외형은 변했다.


새로운 사람은 만난다는 것이 거추장스러운 일로 느껴졌다. 소개를 받고 연락을 남기고 10분쯤 먼저 약속 장소에 나가 어떤 사람일까 기대하며 여닫는 문을 바라보는 일련의 행동이 부끄럽게 느껴진 것도 그때쯤이었다. 신선한 긴장보다 익숙한 편안함에 기대는 나이가 되었고, 서로를 탐색하는 날 선 위선이 버겁게 느껴졌다. 혼자인 게 수월한 나이가 되었고, 침묵의 밀실에 파열음이 생기는 것이 두려웠다.






지금 만나는 사람 없지? 괜찮은 사람이 있는데 만나볼래?


아, 말씀은 감사한데 제가 아직…….


상대에게는 이미 말해 놓았어. 너무 괜찮은 사람이야. 일단 만나봐. 연락처 남겨 놓을 테니까 꼭 연락해.






내뿜는 열기가 한층 잦아든 사월의 주말 오후였다. 한옥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혼란스러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어루만졌다. 기대보단 번거로움이 앞서 숙제하듯 나간 자리였다. 상대와 만날 약속을 정한 후 며칠 동안 일상이 편치 않았던 탓에 옥죄는 부담을 털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기대하며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예약한 식당에 조금 일찍 도착했다. 삼삼오오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 속에 나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낯선 이가 저 문을 열고 들어오겠지. 그리고 찰나의 시간 동안 서로를 견주고 자리에 앉아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눌 거야. 크게 관심 없는 주선자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가족 관계나 취미 등을 물어보며 시간을 채우겠지. 상대가 무례한 사람이 아니라면 식사 후 차 한 잔쯤은 사겠다고 하겠지. 난 예의 바른 사람이니까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주어진 숙제를 성실히 마칠 거야. 그런데 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상대에게 이 시간이 얼마나 고통일까, 무의미한 염려와 배려로 시간의 간극을 때우고 있었다.

6시 정각, 전화벨이 울렸다.



도착하셨죠? 제가 미리 나온다고 했는데, 지금 주차했어요. 바로 들어갈게요.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제가 지금 나갈게요.



앉아서 저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낯선 이를 맞이할 용기가 없었다. 혹여 일순간 마음을 두드린 낯선 이가 다른 자리에 앉아 버리면 남은 시간은 온전히 버틸 수 없기 때문이다. 처음 눈에 담는 사람이 정확히 그 사람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황급히 식당 문을 열었을 때, 전화기를 든 그녀 또한 맞은편 손잡이를 잡고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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