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겨우 2년 차 카피라이터의 일의 기쁨과 슬픔에 대하여-
시작은 착각이었습니다. 친해지면 서너 글자 정직하게 저장하는 게 민망해서 바꿨던 연락처 이름들, 헷갈려서 꼭 만들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카톡방 이름들, 인스타그램 사진을 올리고 대충 달았던 캡션들.. 그런 것들을 보며 주변 사람들은 저보고 ‘잘한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청첩장에 들어갈 말을 써달라고 하기도 했고, 가끔은 편지도 대신 써주고, 밤마다 애인과 싸우는 친구의 고민을 들어주며 어떻게 카톡을 보낼 지도 고민해주었습니다. 나는 칭찬에 약한 사람이라, 그들이 부탁하고 환호할수록 태평양의 고래처럼 열심히 춤을 추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누가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한마디에 나는 어떤 길에 오르기 시작한 겁니다. “너 꼭 카피라이터 같아.”라는 한마디 말입니다.
나, 소질이 있는 거 아닐까?라는 착각으로 출발한 길은 지도가 있어도 갈 수가 없는 미지의 세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길에 발조차 디디지 않았던 것은 단지 그 착각 하나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었던 것도 '글로 밥을 벌어먹고살 수 있다'라는 착각으로부터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면허도 없이 착각이라는 연료 하나를 가지고서 종착지가 어딘지도 모르는 급행 열차의 운전대를 잡은 셈입니다. 카피라이터를 꿈꿨던 5년 전부터 지금까지 줄곧, 저는 계속 무면허인 채로 운전대를 휘적이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카피라이터를 그만두지 않는 한, 저는 죽을 때까지 이 끝도 없는 이야기를 계속 중얼거리고 있겠죠. 앞으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바로 재미 없는 이런 넋두리일테니,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은 어서 빨리 당신의 소중한 시간을 지켜내시길 바랍니다.
카피라이터로서의 첫 1년을 꼭 채워 보내고 나니 깨닫게 된 것은, 카피라이터에게 중요한 것은 말과 글을 다루는 능력보다 생각을 조리 있게 정리하는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글로 밥을 벌어먹고살 수 있을 만큼 글재주 말재주가 있다는 것도 착각 내지는 허세 따위였다는 것도 이곳에 와서 깨달았습니다. (그만큼 재주가 있었다면 이 일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 소질이 있는 거 아닐까?라는 착각은 제게 기쁨과 슬픔을 주는 가장 무서운 존재입니다. 아마 당신에게도 그러겠지요. 입사 초기, 애매하게 야근을 할 때면 가끔 야근 택시비가 허용되는 시간을 기다리며 선배들과 회사 앞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마셨습니다. 무서운 착각 녀석이 제 뇌를 조여올 때마다 저는 가끔 조심스럽게 그 소주잔에 푸념을 반에 반잔 정도 깔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선배들이 대수롭지 않은 표정과 눈짓으로 말했습니다. 당신과 잘 맞는 팀장님이 있고, 잘 맞는 브랜드와 제품이 있듯이 안 맞는 팀장님도 있고, 안 맞는 브랜드와 제품이 있을 뿐이라고. 그러니 네 아이디어가 잘 팔리고 안 팔리고에 따라 일희일비하지 말라고. 정말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는 말임에도 그 말을 씹어 삼키려 애씁니다.
아이디어가 안 나오는 밤이면 뇌를 꺼내는 상상을 합니다. 꺼내다가 앞에 앉혀 놓고 한대 쥐어박아보고도 싶고, 깨끗한 물로 시원하게 샤워도 시켜줘 보고 싶고, 두 손이 두 발이 되도록 제발 제발 하고 빌어보고도 싶고, 멱살을 부여잡고 앞, 뒤, 위, 아래로 사정없이 흔들어보고도 싶습니다. 그런 상상으로 괴롭고 외로운 밤을 보내고 나면 닭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오듯이 회의 시간이 다가옵니다.
그렇게 다가온 회의 시간은 대체로 자괴감과 감탄의 연속입니다. 극과 극의 대척점에 있는 것만 같은 이 두 감정은 속으로 "씨발"이라는 소리를 자아내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광고회사의 회의 시간은 평등합니다. 아무도 모르는 정답을 찾는 시간이기 때문에 1년 차의 생각이 정답이 될 수도 있고, 10년 차의 생각이 정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책상에 모인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생각을 팔기 위해 그림을 그려올 때도 있고, 열정적으로 연기를 할 때도 있습니다. 이제 겨우 1년을 채운 저에겐 이것이 최고로 부담스럽고도 짜릿함을 주는 일입니다. 비장의 카드로 준비해 온 생각은 의외로 냉담한 공기에 파묻혀 버리기도 하고, 그냥 대충 해본 생각은 박수를 받기도 합니다. 박수와 웃음을 하나도 받지 못하는 날에는 속으로 생각합니다. "씨발.. 죽고 싶다.."
진땀으로 축축해진 영겁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선배들의 시간이 됩니다. 밀려오는 자괴감을 한껏 만끽할 틈조차 주지 않습니다. 나는 눈치 없이 회의실에 쳐들어온 자괴감을 꾸깃꾸깃 접어다가 주머니에 대충 넣고 선배들의 생각을 열심히 듣습니다. 그때 나는 또 “씨발”소리가 나옵니다. "씨발.. 저런 생각을 어떻게 하지.. 개천 잰가.." (저는 선배들을 보면 늘 의사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도저히 살릴 수 없을 것 같은 아이디어도 조금의 골똘한 표정 이후 기적 같은 심폐소생술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때 마다도 속으로 생각하지요. "씨발.. 개쩐다.." ) 이 일은 아무래도 씨발 같은 일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만두지 않는 건, 작지만 또렷이 기억나는 박수의 순간 때문입니다. 이게 바로 무서운 착각이라는 놈의 정체입니다. 착각은 생각보다 더 무시무시해서 성취의 순간에는 성층권까지 사람을 올려놓았다가, 실패의 순간에는 맨틀 내지는 외핵 정도까지 끌어내립니다. 1년이 되어서야 조금, 이 무서운 오르내림이 더 짜릿한 롤러코스터를 타는 일처럼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건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를 일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착각은 저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 같습니다. 한창 이 일을 하고 싶어 할 때 멘토처럼 여겼던 선배가 저에게 한 말이 있습니다.
"네가 갖고 있는 건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은 것 같다. 근데 정리가 잘 안 되어 있어. 그런데 갖고 있는 건 노력으로 안 되는 거거든? 정리하는 건 노력해서 될 수 있어. 좋은 사람을, 좋은 선배를 만나면 넌 최고가 될 거야."
이 말이 저를 결정적으로 착각이라는 급행열차에 타게 했던 트리거였던 것 같습니다. 오늘 밤처럼 머릿속은 꽉 찼는데 도무지 해답이 나오지 않는 책상 위에서 동태 눈깔을 게슴츠레 뜬 채 깜빡이는 커서를 보며 저는 생각합니다.
그에게 지금이라도 달려가 묻고 싶다고.
그때 나한테 왜 그랬냐고..
제게는 딱 이 말만 들렸으니까요.
“넌 최고가 될 거야.”
사실 저는 아직도 스스로를 “카피라이터”라고 소개하지 못합니다. 그토록 바라 왔던 이름표인데 자꾸만 숨기려는 이유는 뭘까요. 아마도 첫 시동부터 지금까지 줄곧 무면허라는 생각 때문인 걸까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를 만드는 구교환이라는 사람이 상을 타고 많은 사람들 앞에 서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연기를 하라는 뜻으로 오해하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비록 무면허일지언정 계속 착각하고 오해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럼 언젠가 부끄럼을 많이 타는 최고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