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기지 에세이 수업 1회차 과제 <봄의 의미>에 관하여
2020년 4월부터 비밀기지에서 서윤후 선생님의 에세이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수업에 제출했던 과제를 수정 없이 기록했습니다.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는 매주 수요일마다 특별한 석식 메뉴가 나왔다. 대체로 식판의 거의 모든 칸이 심혈을 기울인 메뉴였지만 유난히 영양사 선생님의 고뇌가 느껴지는 메뉴들이 꼭 하나씩 있었다. 닭인지 비둘기인지 구별이 힘들었던 작은 크기의 닭고기 볶음은 수요일만 되면 크고 실한 닭이 되어 나왔고, 전국의 급식소가 같은 소스로만 만드는 것 같은 제육볶음도 수요일만 되면 어딘가 비법이 느껴지는 맛이 났다. 그런 날에는 '디저트'라는 음식이 본연의 의미를 완전히 잃어 버렸다. 다시 말해, 식사의 끝에 먹는 음식이 달콤한 디저트가 아니라 내게 가장 맛있다고 여겨지는 메뉴였던 것이다.
그렇다. 나는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제일 먼저 먹어버리는 사람이라기보다 아끼고 아껴 가장 나중에 맛을 느끼는 사람에 가깝다. 처음부터 다 먹어버리면 어쉬우니까, 그 아쉬움이 나중에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느껴지는 만족의 효용을 다 없애버리니까, 최대한 만족스러운 느낌은 아끼고 아껴다가 나중으로 보류해두는 것이다. 이런 나와 함께 밥을 먹는 이들은 대체로 이렇게 말한다. "맛 없냐? 내가 먹는다"와 같이 다양성을 존중하지 못하는 경우 혹은 "아껴먹냐?"라는 식의 조롱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두 경우 모두 내게 늘 "아끼다 똥 된다"라고 한다. 뭐.. 먹고 나면 똥이 되니까 말이 되긴 하지만 대체로 음식에 있어서는 아끼고 아껴서 먹은 가장 맛있는 음식이 내게 주는 만족이 더하면 더했지 덜한 적은 없었다.
문제는 나의 이런 쓸데없는 자린고비식 만족법이 음식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며는 것이며, 음식을 제외한 것에는 대체로 '아끼다 똥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특히 나는 행복한 감정에 있어서 스쿠루지 영감보다 오백배는 더 고약한 구두쇠가 된다. 나는 고진감래라는 말이 있다면 감진고래라는 말 또한 있다고 굳게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행복한 순간이 내게 오면 불현 듯 두려움을 느낀다. 언젠가 이 행복도 끝이 나겠지? 그러고 나면 어마어마하게 공허해지고, 불안해지고, 또 슬퍼진다. 마치 맛있는 음식을 다 먹어 없애버리고 나서 최고의 만족을 느낀 후 더 이상 먹을 수 없다는 아쉬움이라는 경사 90도에 가까운 내리막길을 내려오는 느낌처럼 말이다.
그로 인해 생긴 아주 별로인 버릇이 있다. 정말 행복한 순간을 피해버리는 것이다. 작년 봄, 거의 같이 살다시피 했던 7살, 4살짜리 조카들이 형부의 직장 문제로 몇 년 간 해외에 나가게 됐다. 매일 함께 보냈던 일상이 이별이라는 기약 하나로 너무나 소중해졌다. 출국일이 가까워질 수록 우리 가족은 개인적인 일을 줄이고 조카들과 보내는 시간이 늘었는데, 나는 반대였다. 자꾸만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 이들이 정말로 떠났을 때 이 순간이 자꾸만 생각날 것 같아서, 그러면 진짜로 미친듯이 슬플 것 같아서 그랬다. 조카들이 떠난지 1년이 되니까 비로소 그게 너무나 후회가 된다. 그야 말로 '아끼다 똥이 된' 단적인 사례다.
내게는 봄이 그런 계절이다. 늘 아끼다 똥 된다. 너무나도 아름답고 만족감이 거의 최상에 달하지만, 그로 인해 떨어지는 낙차도 어마어마해서. 내 마음을 한껏 뒤집어다가 안달복달하게 만들어 놓고는 "우리 좋았잖아! 너도 좋았다며!?"하면 "응? 내가 언제?"라며 재수 없게 선을 긋는 짝사랑처럼 나를 한없이 슬프게 하는 행복의 계절.
그래서 봄이 되는 나는 절약왕이 된다. 돈 말고 마음을 아낀다. 올해 이 봄의 아름다움을 너무 다 누려버린다면 다음 계절에서 그걸 또 그리워할 테니까. 그 그리움에 사무쳐서 봄의 행복을 다 까먹어버릴지도 모르니까. 이게 결국 후회라는 똥을 만드는 절약인 걸 알면서도 말이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좀 낭비를 해볼까 한다. 작년에 우연히 먹었던 충무로 실내 포차의 쑥전도 두어번 먹으러 가고, 도다리 쑥국도, 멸치회 무침도, 달래장도 질려 죽겠다 싶을 정도로 가장 먼저 먹어치워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