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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레순 Dec 16. 2020

구태여 버리는 이름

나는 아직도 나를 소개하는 이름이 맞지 않는 옷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이름이 누군가를 설명할 수 있는 전부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서점에서 책을 고를 때도, 시간을 때우러 영화관에 들렀을 때도, 매일 듣던 플레이 리스트가 지겨워 다른 노래를 찾을 때도 나의 선택의 기준은 언제나 ‘매력적인 제목’이었다. 사람도 그랬다. 예쁘고 왜인지 좋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와 몇 마디 나누지 않아도 나는 그 사람을 좋아 했다. 반대로 좋아 하는 사람의 이름이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땐 내가 부르고 싶은 이름으로 별명처럼 지어 불렀다.

이름에 대한 집착의 화살은 급기야 스스로를 향하기 시작했다. 남들에게 나를 소개할 수 있는 이름은 사전적 의미의 ‘이름’ 외에도 많았다. 대학에 입학해 나름의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내게 물었다. 어디에 살고 있고, 학교는 어디를 다니고 있는지부터 무슨 공부를 하고 있으며, 무엇이 되고 싶은지, 그리고 좋아하는 예술 작품은 무엇인지까지… 그런 것들이 나의 새로운 이름이 됐다. 사람들은 나의 진짜 이름보다 내가 사는 곳의 이름,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의 이름에 더 관심을 보였다. 지금보다 더 관심 받기를 좋아하고 갈망했던 그때의 나는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려 애썼다. 페이스북에 우리 동네에서 맛있다고 유명한 떡볶이 집을 올리면서 ‘추억’이랍시고 우리 동네 이야기를 자꾸만 했고, 프로필에는 내가 다니는 학교를 학과까지 써서 걸어 놨다. (심지어 출신 중고등학교까지 전시했는데 이건 ‘동네부심’의 연장선 같은 거였다.)

만성적인 ‘타이틀 집착증’을 가졌던 그때 나는 피디가 되고 싶은 막연한 마음을 가지고서 어느 문화센터의 언론사 시험 작문 수업을 등록했다. 첫 번째 수업의 과제에서 ‘그리움’을 주제로 글을 쓰라고 했다. 집착증세가 최조고에 달했었던 나는 주저하지 않고 또 동네 얘기를 갖다가 썼다. 어떤 피드백을 받을까,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지고 두 번째 수업에 갔다. 수업이 시작하자마자 선생님은 수강생이 모두 다 있는 앞에서 나를 따끔하게 혼냈다. 적어도 동네 이름은 밝히면 안 됐었다면서, 이 글을 쓴 사람은 동네에 대한 그리움보다 이 동네에 살고 있는 자신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수업이 끝날 때까지 나는 너무 창피해서 고개를 못 들었고 집에 오는 지하철에서 페이스북에 써놨던 각종 ‘이름들’을 모조리 지워 버렸다. 선생님이 밉지는 않았다. 오히려 외면하려 애썼던 유치한 나를 정면으로 부딪히게 해준 선생님이 고마웠다.

그렇게 이십대 중반부터는 이름을 잃으며 살기 위해 애썼다. 누군가 내게 어디 사냐고 물으면 대충 그쪽 살아요, 라고 말했고 학교도 굳이 안 밝혔다. 교내 교지 편집부에 들어가서 ‘정치적 올바름’을 이야기하며 과거의 나를 반성했다. 그러자 비로소 좀 자유로워진 것 같았다. 이십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우리 집은 이사를 했고 나는 소속된 학교도 없이 취업 준비를 했다. 그때 나는 완치된 줄로만 알았던 타이틀 병을 이상한 데서 다시 마주하게 됐다.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의 이름이 멋지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카피 쓰는 사람’. 직업의 이름에 ‘쓰는 일’이 들어간다니, 간지 그 자체였다.

게다가 미디어에서 만나는 카피라이터들이 멋있었다. ‘카피라이터입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그가 걸치고 있는 평범한 자켓도 왜인지 권지용이 입는 리미티드 에디션처럼 느껴졌다. 그 사람이 멋지다기보다 ‘카피라이터’라는 이름 자체가 그 사람을 돋보이게 해준다는 느낌이었다. ‘N년차 카피라이터의 생각’이라는 타이틀을 단 책들이 불티나게 팔렸고 강연이 열리면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몇백명이 모였다. 그래서 나는 카피라이터라는 ‘이름’을 가져야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 이름을 가지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자리는 몇 개 없는데, 나 말고도 그 이름을 원하는 이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가끔 겨우 면접 기회를 얻기라도 하면 어쩔 때는 너무 긴장해서, 어쩔 때는 너무 간절해서, 여러 이유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쓴 술도 많이 마시면 취하듯이 쓰디쓴 불합격 통지를 수십번 받은 나는 취한 것처럼 이성을 잃었다. “제발 카피라이터라는 이름을 갖고 싶다. 나도 인스타그램 바이오에 카피라이터라고 적고 싶다”던 처음의 마음가짐은 “그깟 카피라이터라는 이름이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로 변했다. 이 시절의 나는 실제로도 술을 되게 많이 마시고 다녔는데 술만 마셨다 하면 친구들에게 “그깟 이름이 뭐라고 재수 없어 진짜”라는 말을 지겹도록 반복해서 친구들이 엄청 싫어했다. 급기야 이 술주정을 면접장에 가서도 하게 됐다. (물론 제정신인 채로 했다) 그 말을 들은 면접관들이 무슨 생각에서인지 나를 뽑아줬다.

그렇게 카피라이터가 된지 1년이 좀 넘었다. 그런데 아직도 그렇게 하고 싶어 했던 ‘인스타그램 바이오에 카피라이터라고 적기’를 단 한 번도 안 했다. 이름에 집착하는 것이 너무 가볍게 느껴지는 마음 때문이었다. 이 마음은 입사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친구와의 약속 시간이 조금 떠서 서점을 돌아다니다 우연히 만난 어떤 책 하나로 인해 급속도로 감수분열하기 시작했다. 제목은 <발가벗은 힘>이었다. 회사 생활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회사를 떠난 이의 능력은 잔재주에 불과하다는 내용이었다. 그걸 읽고서 카피라이터라는 이름을 뗀 나를 상상해봤다. 카피라이터라는 이름이 나의 ‘발가벗은 힘’을 앗아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퇴사할 때까지, 그리고 퇴사하고 나서도 절대로 나의 이름 앞에 카피라이터 혹은 카피라이터 출신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사실 아직 이런 글을 쓰기에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어딘가에서 나를 소개해야 할 때 종종 길을 잃은 기분이 들어서 “저는 카피라이터입니다”라고 소개를 한다. 그게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모순적으로 인스타그램 바이오에 “카피라이터”라고 적어 놓는 동료들을 속으로 비웃기도 하면서… 오늘도 이렇게 나는 발가벗은 힘을 위한답시고 구태여 이름을 버렸다가 주웠다가 한다.



2020년 4월에 쓴 글.

에세이 수업에 과제로 냈던 글인데 어젯밤 잠이 안와서 나와의 채팅방을 뒤져보다가 발견했다.

당시에 "타이틀병"이라는 표현을 썼었는데 선생님이 이에 대해 온화한 걱정을 해주셨다. 

지적 아닌 걱정이라 표현한 것은, 그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의도가 완전히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놈의 카피라이터 타령-

이제는 딱히 하지 않게 된다. 생각도, 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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