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점자의 합격 비법은 오답노트라길래-
사랑한다는 감정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오천 배는 더 복합적이다. 느끼고 느껴봐도 내가 아는 것이 다인지 알 수가 없고, 어쩔 때는 내가 느낀 것이 사랑이 맞나? 모르고 지나갈 때도 많다.
수많은 사랑의 실패를 겪었다. 몇 개의 터널을 지나올 때마다 수천 개의 다짐을 한다.
매번 그 다짐은 편의점 일회용 우산처럼 잃어버리게 되지만, 어쨌든 하긴 한다.
이 이야기는 관찰자 시점이 아닌 1인칭 주인공 시점이기에, 실패한 사랑은 곧 짝사랑을 칭한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은 내게 다양한 영향을 주지만, 지난 10년 간의 나를 돌이켜 보았을 때, 대체로 나는 그 일을 즐기는 편이다. 특기까지는 모르겠고 한, 취미 생활 정도 되는 것 같다.
새 문서의 깜빡이는 커서를 마주할 때마다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이 “짝사랑”에 대한 것이고, 평소엔 그렇게 귀찮고 쓸 게 없다며 투덜대던 글쓰기인데 누군가를 좋아할 때마다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들끓어 오르며, 단 한 번도 짝사랑에 성공한 적이 없지만 아직도 짝사랑 타령을 하고 있는 걸 보면.. 확실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짝사랑” 자체를 즐기는 위인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지.
뭐였더라, 명언 중에 열심히 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던데 나는 그래서 그 누구에게도 이길 수가 없었나 봐.
내가 정말 짝사랑을 즐기는 사람이었다면, 쓰디쓴 실패의 맛을 안주삼아 그렇게 술을 마시지 않았겠지. 내가 진짜 짝사랑 특기자였다면, 나를 거절한 그들을 저주하고 분노하며 스스로에게 연민을 느끼지도 않았겠지. 내가 진정 짝사랑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면, 이런 글도 쓰고 있지 않았겠지.
늘 사랑에 실패하면, 다음 사랑은 꼭 성공하겠지? 하고 기대하며, 새롭게 찾아오는 사랑이 있으면 두 팔 벌려 꼭 안았다. 하지만 결과는 늘 같았다. 유난히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져서 그런 건지, 아니면 계속되는 실패의 학습에 넌덜머리가 나버린 건지, “나답지 않게도” 나는 그 결과를 분석해보고 싶어 졌다. 사랑에 빠질 때도, 그리고 거기서 헤어 나올 때마저 메모장에 그 애와 나에 대한 추상적이고 모호하고 아주 사소한 것들(예를 들자면 걔랑 함께 걸었던 길에서 했던 아주 별거 아닌 대화, 혼자서 길을 걷다가 걔 생각이 나게 했던 어떤 간판 따위의 것들, 그리고 그때 어떤 생각과 마음이었는지..)을 적고서 혼자 볼을 붉혔던 나라는 사람이 말이다. 어쩌면 더 이상 “짝사랑에 심취한 나”를 짝사랑하기보다 이제는 누군가를 정말로 “사랑”하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낯선 행동인 것 같기도 하다.
한마디로, 지겨웠다. 맨날 차이고 스스로를 연민하는 일이.
아무튼, 그래서 그려본 나의 짝사랑 순서도는 다음과 같다.
크게 생각하지 않고 적느라, 그리고 나도 로봇이 아닌 사람인지라, 늘 이 알고리즘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그렇다. 특히나 결괏값은 대체로 변함이 없다.
내가 시시콜콜한 연애 이야기를 자주 하는 친구의 핸드폰엔 내 번호가 “로맨틱 불도저”라고 저장되어 있다. 원래라면 “개노답 불도저”라고 저장되었어야 할 텐데, 아무래도 날 좋게 봐주는 친구인 것 같다. (덜 친한 건가?) 아무튼 고맙다.
주로 내가 껄떡댈 때 하는 이상한 짓들은 이런 거다. 뭘 어쩌라는 건가 싶은 틀딱스 타일의 말장난 개그, 그 사람은 별로 관심 없는데 내가 좋아하니까 들어봐! 이거 봐! 읽어 봐! 하면서 보내는 무슨 링크들, 글들, 음악들.. 뭐 그런 거. “로맨틱 불도저”라는 이름표를 가지기엔 너무나 이기적이고, 일방적이고, 속은 뻔히 보이는데 별로 받아주고 싶지 않은.. 뭐 그런 거다.
불도저도 불도저 나름이지, 나는 사거리에서 음주운전 및 신호위반으로 들이박는 개노답 불도저다.
뉴스나 시사프로그램 같은 것들 보면 모든 사건 사고에 가해자들이 적반하장으로 나오던데, 나도 마찬가지다. 내가 먼저 들이박아 놓고, 모든 관계가 망쳐버리면 난 이렇게 말한다.
“진짜 이해 안 가네. 왜 나를 안 좋아하지? 나랑 사귀면 지가 더 좋을 텐데??”
한 번은 내가 정말 분노에 휩싸여서 열분을 토한 적이 있는데, 이 말을 들은 친구가 어이없다며 웃었다.
“나는 너가 진짜 이해가 안 간다. 보통 짝사랑을 하면 그 사람이 좋아 죽겠어서 아, 그 사람이랑 사귄다면 나 정말 좋겠다.. 하는데 너는 어떻게 된 게 그 반대냐?? 정말 그 사람 좋아하는 거 맞기는 해?”
그때는 니가 뭘 알아? 하고 소주나 마셨는데, 순서도를 그려보니 걔 말이 맞는 것 같다.
사실 친구들이 말하는 ‘불도저 짓’을 할 수 있는 것도 다 거기서 시작된 것 같다. 짝사랑을 할 때면 내 안의 행복 회로와 착각 엔진이 풀가동을 하는데 그 연료가 되는 게 “나랑 사귀면 너한테 훨씬 이득이다”는 뻔뻔한 마음 가짐이다.. (써놓고 보니 진짜 개노답이네.)
그래서 매번 내 짝사랑의 목적지는 고작 연애였다.
나 지금 너에 대한 마음 이~~~ 따시만 하거든? 너만 오케이 하면 돼. 그러니까 너도 당장 오케이라고 말해.
요약하면 이런 거. 그러니까 매번 실패하는 거였다.
뭐였드라.. 요즘 인터넷에 “고백으로 혼내준다”는 말이 있던데, 어이없지 내가 생활지도부 호랑이 체벌 교사였다니..
그래서 다음에는 목적지를 바꿔보려고도 했다.
내비게이션에 목적지 설정을 ‘연애’에서 ‘걔 마음 동나게 하기’로 바꿨다.
음, 그러니까 너 나랑 사귈래? 그래! 이 그림이 아니라.. 내가 걔때문에 발 동동 굴렀던 것처럼 그 애도 나 때문에 발 동동 구르면 좋겠다-는 거였다.
나의 새로운 내비게이션 설정에 나의 연애코치들은 이렇게 피드백했다.
“잘 생각했어. 이제 혼내는 일은 그만하고 꼬시는 걸 좀 해봐. 걔한테 물어보지 않아도 걔가 먼저 자기 마음 너한테 들킬 수 있게, 그렇게 좀 해봐 제발.”
(어떻게 했는지 적기에는 너무 창피해서 결론만 말하자면..) 근데 잘 안됐다.
주된 이유는 내가 상대를 어떻게든 바꿔보려고 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마음을 고쳐먹기 전에도 “나의 물음에 예쓰라고 말해!!!”라는 마음가짐이었다면, 고쳐먹었다는 마음가짐도 고작 “나 때문에 너도 피눈물 좀 흘려봐!!!!”라는 거였으니까..
“너 걔 진짜 좋아하는 거 맞아?”라던 친구의 물음처럼 내가 했던 게 진짜 짝사랑이 맞았나? 하는 의심을 한다.
“걔가 너무 좋다”라는 사랑하는 마음보다 “걔가 날 좋아했으면 좋겠다”라는 바람, 아니 집착에 가까운 요구하는 마음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내게 누군가 짝사랑이 즐거운 일이냐 묻는다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뭐, 재밌긴 한데 즐길 정도로 재밌는 수준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제대로 짝사랑을 했던 거도 아니었던 거다. 겨우 짝사랑 따위에 “제대로”란 게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올해 마지막으로 내 마음의 문을 닫고 나간 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제 짝사랑 안 해야지, 짝사랑이 끝날 때마다 했던 의미 없는 다짐 같은 건 그만두고, 더 열심히 짝사랑해야지. 다만, 앞으로는 바라지 말고, 요구하지도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좋아해야지. 아무 대가를 바라지도 않고 그냥 좋아하는 것에만 집중해서 실컷 너를 좋아해야지. 그럼 어느 날 너를 똑바로 쳐다보고, 아주 담백하고 산뜻하게 “나 너 좋아한다”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 말을 듣게 될 너가 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