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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여성들의 강렬한 이야기

<어린 심장 훈련> 이서아

by 오리온

너무나 강렬한 이야기들이었다.

그 강렬함이 버거워서 하루에 이야기 하나 이상을 읽어내기가 버거울 정도로 강렬했다. 좋은 뜻입니다.

책의 화자는 온통 어리고 젊은 여성이다. 그러나 절대로 전형적이지 않다. 과거 한국 문학이 어린 여성을 어떻게 타자화 했는지 생각해 보면, 과거의 ‘어린 여자 아이’는 명랑하거나, 순진무구하거나, 수동적이거나, 비주체적으로 그려졌음을 쉽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한국 문학의 어린 여성들은 능동적이고, 때로는 세계를 관통하는 인물이며 전통 한국 문학이 그려내는 남성처럼 어떠한 욕망을 추구하고 쾌락의 주체가 되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이 이서아 작가님의 <어린 심장 훈련>에서 극대화된다고 생각한다. 그의 소설 속 주인공인 ‘어린 여성들’은 본능적으로 욕구를 파악하고 행동에 옮긴다.

이 책에서도 어린 여성들은 어른들에 의해 전형적 어린 여자 아이의 모습으로 타자화된다. 인종차별, 성 차별 등에 의해 타자화되고, 심지어는 동물화 되어 나타난다. 동물화 된 주인공들의 태도는 정말 흥미로웠다. <어린 심장 훈련>의 주인공들은 그것을 즐기는 듯싶어 진다. 하대당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인간 사회에 대항하는 하나의 몸짓으로 옮긴다.

이야기 대부분의 구조는 사실 단순하다고 생각했다. 위계질서, 폭력, 억압, 입막음으로 가득 찬 어른들과 그에 대항하는 어린 여성의 대립이 반복되어 나타난다. 그 대항은 때론 의도치 않은 변수의 개입으로 처음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 실패하거나, 어른들의 세상에서 결국 벗어나지 못 하지만, 대항하는 어린 여성의 정말 강렬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의지와 모습이 큰 인상을 준다. 그리고 그것을 그려내는 방법이 다양해서 매 이야기 새롭게 강렬한 느낌을 느꼈다. 그리고 매 이야기, 그 중심 스토리의 곁가지로 다루어지는 주제들도 이야기 전체의 흥미를 높인다.

예를 들어,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이야기 중 하나인 <악단>에서는 어리석은 인간들이 자연을 파괴하는 것에 대한 절망을, <빨간 캐리어>에서는 결국 반복되는 시스템 속 갇혀버린 인간 군상의 모습을, <사하라의 DMZ>에서는 인종 차별로 인한 또 다른 타자화에 대해 다룬다. <검은 말>에서는 어린 여성을 보호하려는 성인 여성의 모습도 나온다. (조금 과격한 방식이지만, 그 장면이 좋았다.)



나는 욱신거리는 온몸을 일으켜 세우며 그네를 바라보았다. 빈 그네가 아이 없이 혼자 철컹철컹 움직이고 있었다. 그곳부터 내가 있는 곳까지 온몸으로 쓸어 만든 자국이 보였다.

뭐,
어찌 됐든 이건 내 무대였다.

<서울 장미 배달> 97


모든 이야기에서 반복되는 모습 아닐까. <서울 장미 배달>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인 어린 여성은 그네를 타다 떨어진다. 그리고 그 이후에 하는 생각이 참 재밌다. 울거나 다쳤다고 어쩔 쭐 몰라하는 전형적 서술이 아니라, 본인이 남긴 흔적을 바라보며 ‘내 무대’라고 표현하는 점이. 입을 떡 벌어지게 했다.

현실에서의 여성을 생각해 본다. 여전히 타자화되고 있다고 느낀다. 미디어는 어린 아이돌/가수/인플루언서/연예인 여성을 귀엽게, 예쁘게, 동경할 수 있게 찍으려고 혈안이 되어있다. 그래서 그 여성들은 더 예뻐야 하고, 더 말라야 하고… 그런데 그 목적이 ‘사랑받기 위함’에 있다니. 최근 보다 능동적인 여성의 모습을 그려내려는 기조가 많이 보이고 그 시도가 늘어서 기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갇혀있다. 그리고 그를 닮기 위한 어린 여성들의 목매닮에도 생각해 본다. 비정상적으로 마르려고 애쓰고, 여전히 사회는 그렇게 마른 사람들을 원하고, 그 속에서 그들은 방황하고, 세상에 억압받고 스스로를 잃는다.

이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린 심장 훈련> 속 주인공인 어린 여성들의 모습일 것이다. 현실의 어린 여성들이 이를 배워야 한다! 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현실의 어린 여성들을 비난할 일말의 마음도 갖고 있지 않으니까. <어린 심장 훈련>에서 본인의 욕구와, 쾌락과, 욕망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그를 행동에 옮기고, 실패하고, 또 대항하고 또 부딪히는 어린 여성들의 모습에서 나는 쾌감과 해방을, 그 의지의 강렬함을 느꼈다. 그것이 우리의 현실에서도 이루어지길 바란다.

조금 버겁고 이해하기 어려운 글로 읽힐 수 있다. 나도 처음엔 그랬으니까. 하지만 책을 덮은 후 이 이야기는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계속 맴돌며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어린 여성의 주인공들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한다.

판타지적인 여성의 주체적 이야기가 부족했다면 꼭 한번 읽어보시길.

읽는 내내 강렬한 날들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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