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

내 삶의 구원

by 오리온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예전에는 좋아하는 것이 많은 게 자연스러웠다. 어린이 시절엔 책을 참 좋아했고, 일기 쓰기를 좋아했고, 합창단 연습이 끝난 뒤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옥상 탈출하는 시간을 좋아했다. 중학생 시절엔 아이돌 가수를 좋아했고, 학교가 끝난 후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놀러 가는 것을 좋아했고, 노래방에서 목이 터져라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고, 한 영화를 10번씩 볼 정도로 마블 유니버스를 좋아했고, 미드와 영드, 심지어는 프랑스와 벨기에 드라마까지 시간을 쪼개가며 보는 것을 좋아했다. 고등학생 때에도 바쁜 시간을 쪼개어 드럼 연습하는 것을 좋아했고, 친구들과 밤새워 떠드는 것을 좋아했고, 기숙사에서 즐기는 일탈을 좋아했고, 천문학을 좋아했고, 공부에 매진하는 나를 좋아했다. 그 모든 좋아함의 감정이 의도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어서 난 평생 내가 무언가를 좋아하는 사람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대학에 와서도, 새내기로서의 첫 학기엔 친구들과 놀고, 대학생활의 낭만을 즐기고, 처음 겪는 대학생의 시험기간에 허덕이고, 드러머로 들어간 밴드에서 연습하다 보니 즐거운 반년이 눈 깜짝할 새에 사라졌더랬다. 그때까진 모든 것이 분홍빛이었고 매 순간이 좋았다.


문제는 그때 시작되었다. 가을 학기가 시작되고, 난 개인적인 일로 그 시간을 너무 고통스럽게 보냈다.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를 1학년이 끝나자, 난 속이 텅 빈 껍데기로 남아버렸다. 자아가 조금씩 무너져 내렸는데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어느새 난 좋아하던 드럼치는 일, 책을 읽는 일, 친구들을 만나는 일, 공부하는 일들마저 버거워하는 상태가 되었고, 세상에 흥미 있는 일이라곤 전혀 없는, 그런 공허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좋아하는 일이 있으면 매일이 아깝다. 비는 시간엔 좋아하는 것을 어떻게든 해내느라 하루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좋아하는 일이 없으면, 시간이 더럽게 안 간다. 어느 순간 나는 내가 아침에 눈을 떠서 그냥 빨리 밤이 되기만을 기다리며 오늘이 몇 시간 남았구나,라는 생각만 하면서 생기 없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좋아하는 것이 없다는 일은 단순히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서, 그것은 신체적, 정신적 증상으로도 나타나는 것 같았다. 좋아하는 것이 없으니 이루고 싶은 것이 없어지고 내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렸다. 평생 물리학을 공부하겠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물리를 좋아하긴 하나?라는 회의마저 들었다. 아빠께 전화해서 수화기를 붙들고 엉엉 울기도 했고, 종일 무기력하니 밥 생각도 없어서 저체중까지 갔다. 몸을 움직이는 것도 힘들어져서 강의 시간 외에는 밖에 잘 나가지도 않았고, 매일 밤 우울에 잠겨 울었다. 삶이 좋지 않았고 그렇다고 싫지도 않아서, 삶을 반짝이게 채워줄 것들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수렁으로 끌어들이는 것도 없어서 매일 그냥 숨쉬기만 하는 기분으로 살았다. 말 그대로, 죽을 이유가 없어서 그냥 사는 수준이었다.


그러다가 죽겠다. 싶었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떴는데 창문으로 어렴풋이 새어 들어오는 햇빛 줄기를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때 살려고 시작한 것이 요가였다. 그러니까 요가는 좋아하려고 시작한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시작한 것이었다. 많고 많은 운동 중 요가를 선택한 이유는 기억이 안 나지만. 처음엔 유튜브에 올라와있는 15분짜리 요가 영상을 비척비척 따라 했다. 일주일에 3번만 하자는 마음으로 룸메이트가 잠을 자고 있는 새벽을 틈타 기숙사의 작은 바닥 공간에서 매트도 없이 츄리닝을 입고 몸을 움직였다. 가끔 용기가 나면 30분짜리 영상을 시도했다. 어떤 날은 영상 두 개를 연달아해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요가복도 한 세트 사보았다. 가을학기 종강 이후 겨우내 매일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2달 동안 내가 따라 해온 영상은 많아졌고 알게 된 요가 동작들도 많아졌다.


그즈음 요가를 정식으로 배우고 싶어졌다. 실로 반년만의 어떠한 욕구였다. 너무 오래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지 않아 온 터라 처음엔 겁이 났다. 요가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면 어떡하지, 내가 제일 못하는 사람이면 어떡하지, 오히려 재미를 잃으면 어떡하지... 오만 상상을 다 했다. 엄마께 한 오십 번은 요가 배울까? 근데 잘 못하면 어떡해? 를 물었다. 근데 사람이 완벽하게 변하는 것은 아닌지, 뭐든 일단 시도해 보았던 과거의 나의 어떤 충동이 어느 날 모습을 드러냈고 그 길로 학교 근처 요가원에 원데이 체험을 하러 갔다. 그리고 그날 수업이 끝난 뒤 나는 3달 결제를 했다.


오늘은 요가를 수련한 지 딱 1년이 되는 날이다. 1년 동안 나는 어떻게 변화했는가? 이젠 건강한 체중의 건강한 몸을 가졌다. 좋아하는 것은 요가 이외에도 20가지 넘게 말할 수 있다. 물리를 계속 공부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책을 1년에 200권씩 읽어대고 협찬도 받는다. 매주 블로그를 쓰고, 이젠 글도 쓴다. 과대표로 1년을 보냈다. 마라톤에 두 번이나 나갔다. 기타 등등... 어쨌든 이것만 보아도 그 1년 사이 내가 얼마나 많이 긍정적으로 변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의 나에게 요가는 내 삶의 숨통이요, 평생을 함께할 동반자이며, 나를 위한 최고의 위로이다.


내가 수련하는 요가는 아쉬탕가이다. 흔히들 요가라고 하면 유연성을 요구하는 어려운 동작을 떠올리거나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차분히 몸을 움직이는 이미지를 생각한다. 하지만 아쉬탕가 요가는 근력 운동에 준하는 요가로, 온몸의 근육을 다 써서 한 번 수련하고 나면 땀이 한 바가지 흐른다. 요가를 하는 내내 지금 동작과 다음 동작 이외에는 다른 것이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심지어 스승의 안내 없이 오롯이 혼자 순서를 익히고 자신의 몸과 호흡을 살피며 수련해 나가는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에 그 시간에는 온전히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게 된다. 시작할 때의 수리야나마스카라에서 오늘도 움직일 수 있음에 감사하고, 스탠딩 시퀀스에서 하체와 아랫배 힘, 호흡을 살피다가, 시팅 시퀀스에서 척추와 시선을 신경 쓰고, 피니싱 시퀀스에서 세상을 역으로 바라본다. 그렇게 헉헉거리며 수련을 마치고 나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찾아온다.


모든 요가에선 마지막에 '사바아사나'라는 아사나를 한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송장 자세'. 말 그대로 온몸의 힘을 풀고 송장처럼 편하게 누워 휴식하는 것이다. 처음 정식으로 요가를 배운 날에는 힘들어서 오만 생각이 다 들었고, 수련이 조금 익숙해진 후에는 뿌듯함에 미소가 실실 나왔고, 어느 정도 수련한 후에는 온몸을 감싸는 개운함을 힘껏 느꼈다.


어제는 그런 생각을 했다. '요가를 배우기 전에도 나는 자주 송장처럼 누워있었다. 무기력하고 우울한 채로. 힘을 내려해도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몸으로. 찝찝하고 불쾌하고 죄책감 가득히 무거운 몸을 침대에 뉘인 채로. 그런데 지금의 나는 어떤가. 지금의 나도 송장처럼 누워있다. 하지만 생기 넘치고 개운하고 뿌듯한 채로 누워있다. 힘이 넘쳐나는 내 몸에게 휴식을 주면서, 일부러 미간까지 힘을 쫙 빼고. 오늘도 잘했고 잘할 거라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요가 매트 위에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며 가볍게 누워있다. 신기하다. 같은 움직임인데도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이...'


그래서 내 삶을 바꿔준 요가가 나는 좋다. 너무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