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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연못 Aug 06. 2021

산책 토닥임_ 우리는 어떻게 상처를 주고받는가

그럼에도 결국 상처는 치유된다




엄마가 옛날에 우리 키우기 힘들다고 임신한 여자들 보면 발로 뻥 차주고 싶다고 그랬잖아!



수화기 너머로 훅 하며 숨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한참을 말없이 침묵을 지키던 엄마는 "그러게.. 내가 그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중얼거리셨다.

몇 년 전의 일이라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의 말이 엄마에게 비수가 되어 꽂혔음을 확실히 기억한다.



그날은 새벽 5시 기차를 타고 대구 마리아병원에 다녀온 길이었다.

선생님은 '지금 당장 폐경이 와도 이상할 것 없다'는 말로 내 마음을 후비었고, 그런 마음과는 상관없이 오후 1시까지 직장으로 복귀해야 했기에 기차역으로 내달리던 참이었다.



플랫폼에 도착하니 출발 시간까지 5분 정도가 남았을까 숨을 헉헉 몰아쉬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결과를 묻는 엄마에게 퉁명스럽게 나 내일이라도 당장 폐경 온대라고 말했다. 엄마는 깜짝 놀라 그게 무슨 말이냐고 상황을 꼬치꼬치 물었고, 심통이 날대로 나버린 나는 엄마에게 상처가 될 것임을 뻔히 알면서 그렇게 내뱉고 말았다.







우리는 어떻게 상처를 주고받는가



나에게 업무 관련으로 자주 문의를 하던 동료가 있었다. 나도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내 조언이 그녀에게 꽤 유용했는지 발령 첫 해는 자주 연락이 왔는데, 그럴 때면 나도 성심껏 대답해주고는 했다.


우리는 두어 달에 한 번씩 밥을 먹는 사이였고, 자연스럽게 서로의 개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십 년 가까이 아이를 간절히 바라는 내 마음에 대해 '아이 없는 사람들도 잘만 살아요. 괜찮아요!'라며 그녀만의 방식으로 위로해주었다.

업무가 익숙해졌는지 그녀의 전화가 점차 뜸해지던 어느 날, 일 년 만에 연락이 왔다.



저 출산휴가랑 육아휴직 낼 건데 어떻게 내는 게 가장 유리해요?



나는 순간 숨이 콱하고 막혀와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가까스로 평정을 되찾고 말했다.



제가 아이가 없어 관련 휴직을 내 본 적이 없어요. 이번에는 도와드릴 수 없겠네요.


담담하게 말하려고 노력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내 목소리에 담긴 노기를 느꼈는지 그녀는 그 후 단 한 번도 전화하지 않는다.






세 번째 난임 휴직 기간에 다녔던 요리교실에서 만난 그녀는 꽤 붙임성이 좋았다. 알고 보니 같은 단지에 살고 있었고, 심심하다는 이유로 그녀는 자주 나를 호출하고는 했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혼자 있는 것이 더 좋았지만 낯선 타지에서 언니라고 부르며 친근하게 구는 그녀를 매몰차게 거절할 수 없었다.

어느 날(아직도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겠으나),  그녀는 브런치를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신의 '미니미'가 곤히 누워 자고 있는 유모차를 나에게 넘기며 이야기했다.



이런 거 밀어보고 싶죠? 자, 밀어봐요!


뿌듯한 그녀의 표정이 너무 당당해서 당혹스러움을 채 표현하지도 못한 채 얼떨결에 그 유모차를 잡았다.

여기서 발끈하면 나의 자격지심이 드러날 것만 같아서.

붉게 물든 얼굴을 감추려 고개를 숙이고는, 대단히 신중하고 안전하게 유모차를 밀고 있음을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그렇게 100여 미터를 밀고 오면서 황당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그 후로도 그녀는 만나자고 전화를 걸었지만, 마침 요리 클래스도 끝났고 병원에 다닌다는 핑계로 만남을 더 이어가지 않았다.






난임 기간이 길어질수록 타인에 의해 할퀴어진 상처들이 많다. 그래서 생각했다.  


왜 남들은 가만히 있는 나에게 상처를 주는가?


그런데 그들만 나에게 상처를 주었을까?

내가 그들에게 상처를 준 적은 없을까?



결혼한 지 삼 년이 넘도록 아이 소식이 없어 마음 졸이던 신혼 초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리 딸을 낳던 언니가 늦둥이 겸 막둥이로 아들을 임신했다. 무려 넷째를!

나의 사정과는 별도로 당연히 축복해야 하는 일이었고, 나도 진심을 담아 축하해줬다. 언니는 민망한 듯 너도 빨리 와야 하는데 하며 말을 흐렸는데 나는 아마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언니들이 내 것까지 다 가져가니까 나한테 아기가 안 오지!


오 마이 갓! 지금도 타임머신이 있다면 그때로 돌아가 내 입을 틀어막고 싶다.

후에 사과했지만 언니는 내가 했던 말이 '태어나 들었던 말 중 가장 가슴 아픈 이야기' 중 하나였다고 말해주었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할퀴어짐을 당했다 라고 생각했지만, 나 또한 난임을 무기로 사람들의 마음을 많이도 후비어 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결국 상처는 치유된다



밤늦은 시간, 남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다섯 살 어린 동생은 다섯 살 많은 오빠 같을 때가 있다. 조증과 울증을 한없이 오가는 셋째 누이가 걱정되는지 종종 안부를 묻고는 한다.

처음에는 담담하게 받지만 끝은 꼭 나의 울음으로 끝나는 통화. 동생은 내가 울 때마다 한참을 기다려준다. 그리고 푸념반 한탄반의 쓸데없는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준다. 그리고 마지막에 늘 이렇게 말해준다.


누님, 나는 얼굴도 모르는 조카보다 누나가 더 소중해. 누나는 존재 자체로 소중해요.


이번에도 그러했다. 많이 움직여서 안된 건지, 너무 안 움직여서 안된 건지, 얼음을 너무 많이 먹어서 안된 건지 횡설수설하는 나에게 동생은 이렇게 말해주었다.


참 이상해. 우리 집 사람들은 원인을 스스로에게 돌려. 그런데 말이야. 좀 더 자신에게 너그러워도 돼요. 이번에도 얼마나 고생했어요. 그냥 스스로에게 괜찮다, 고생 많다고 말해줘요.



(아직도) 이번에는 잘 될 거라고, 느낌이 좋다고, 성공할 거라고, 나의 손을 잡고 기도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응원이 진심임을 알기에 똑같은 무게로 부담스러워지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감정을 예민하게 세우고 마음을 꼬아 바라본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칼날은 스스로에 더 엄격하게 돌아온다.

내가 이러니까 애가 안 생기지 식의 자승자박.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느 날, 존재 자체가 소중하다한 마디는 그간의 예민함과 조바심으로부터 한 걸음 벗어날 수 있는 힘이 되어주는 것 같다. 그 힘은 내가 남들로부터 얻은 상처의 깊이를 헤아려보는 대신, 나 또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적은 없는지 되돌아보고 조심하게 한다.


그렇게 우리의 상처는 치유되어간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 저에게 내리는 처방은 <산책하기>입니다.


크게 기대하지 말자고 했지만, 누구보다 가장 크게 기대했기에 전화 결과를 듣자마자 울음이 터졌습니다. 베개에 얼굴을 묻고 소리 내어 엉엉 울다가, 무작정 운동화를 구겨 신고 집 앞 공원으로 나갔습니다.


도대체  이 길에는 끝이 있는 건지.

이번 시술에서는 또 무엇을 잘못한 건지.

분명 좋은 마음으로 나를 응원했을 사람들인데, 그들에게 해야 할 변명을 떠올려보니 응원은 되려 원망으로 바뀌어 머릿속을 어지간히 들쑤시며 돌아다닙니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원망을 담아, 분노를 담아, 좌절을 담아 땅을 함부로 밟습니다.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들이 준 상처를 떠올리며 그렇게 눈물의 산책을 합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면 어느새 거칠게 힘을 주었던 종아리에 스르르 힘이 빠지며 주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쪼로롱 지저귀는 새소리도 귀에 들어오고, 특유의 비릿하고 상쾌한 흙내음도 느껴지고, 푸른 잎으로 빼곡한 가운데 빼꼼 보이는 파란 하늘과 구름 한 조각은 산책이 주는 선물입니다.



상처를 주어서 혹은 상처를 받아서 마음이 흔들린다면 그 상처의 사이즈와 깊이를 곱씹으며 괴로워하지 말고, 흙과 나무 그리고 신선한 공기가 있는 숲 길을 걸어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한참을 걷다 보면  상처에 실린 무게가 자박자박 밟는 땅 위로 고스란히 찍힐 것이고, 결국엔 덜어진 상처의 무게가 조금은 가볍게 느껴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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