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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연못 Aug 09. 2021

창작동화_스스로 빛나는 별, 용감한 인어공주 루센스

가스 라이팅으로부터의 빛나는 독립

멀고 먼 푸른 바다 깊은 바닷속에는 신비로운 목소리와 반짝이는 꼬리를 가진 인어들이 모여 사는 스텔라 왕국이 있었어요.  왕국의 막내 공주 스텔라 루센스는 유모에게 등을 떠밀려 <꾸밈의 방>으로 들어섭니다.           


루센스! 도대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온 거니? 거울을 좀 보렴! 언니들은 네 생일파티 준비하느라 아침부터 아름답게 꾸미고 있는데 쯧쯧!”        


루센스는 아까 바다 위로 올라갔다 보게 된 신기한 광경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어요.      

 

“엄마, 제가 오늘 바다 위에서 뭘 봤는지 아세요?”      

   

루센스! 물 바깥의 세상은 중요하지 않아요. 지금 여기 네가 사는 곳만이 의미가 있는 거야. 제발 쓸데없는데 관심 두지 마렴.”      


왕비는 루센스의 머리에 반짝이 가루를 뿌리고 손질하며 잔소리를 이어갑니다.   

     

“세상에 꾸미지 않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공주라니! 책이 다 무슨 소용이고 생각이 도대체 왜 필요하다니? 감한 공주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아요. 그저 부지런히 진주를 찾아 목에 걸고, 반짝이는 것들로 네 몸을 아름답게 꾸밀 생각을 해야지.”        


루센스는 엄마에게 ‘나는 이대로 괜찮다’고 말하려다 그만두었어요. 그래야 엄마의 잔소리가 빨리 끝난다는 것을 알거든요. 대신 는 눈을 감고 바다 위로 올라갈 때마다 마주치던 크고 멋진 배 위의 늠름한 왕자를 생각했어요.     


“자, 다 됐다! 얼른 가서 오늘 생일파티의 주인공답게 꼬리 흔드는 연습을 하렴!”         

 


 

루센스는 자신의 생일파티 준비로 시끌벅적한 궁전을 조용히 빠져나와 검은 바위 뒤 깊은 모래 속에 살고 있는 뽈뽀에게 향했어요.      


“진실의 입을 가진 뽈뽀님, 드디어 약속한 날이 왔어요. 전에 당신을 도와드린 대가로 저의 열다섯 번째 생일날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던 약속을 기억하시나요?”


“그럼요, 기억하지요. 멋진 생각을 가진 용감한 루센 공주님, 소원이 무엇인가요?”


루센스는 그동안 몰래 바라보기만 하던 인간 세계의 왕자 곁으로 가고 싶었기 때문에 뽈뽀에게 인간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했어요.


“인간 세계요? 그곳은 살아가는 방식이 이곳과 전혀 다른 세계입니다. 더군다나 인간의 언어와 인어의 언어는 엄연히 다르기 때문에 육지로 올라가시면 더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목소리를 내지 못하면 결국엔 생각도 멈출 테고요.”      

     

루센스는 하루라도 빨리 흠모하는 왕자의 곁으로 가고 싶었기 때문에, 모든 어려움은 사랑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말하고 서둘러 서약을 했어요.           


“어쩔 수 없군요! 이 서약을 깨는 방법은 단 하나. 오늘 공주님이 정한 주문을 진심을 담아 떠올리는 것입니다. 물론 생각이 멈추기 때문에 쉽게 기억나지 않겠지만..”     


    



바닷가 모래사장 위로 올라온 루센.

그녀는 에메랄드빛의 약을 마시자마자 곧 정신을 잃었어요.     



“아가씨! 정신 차려보세요.”      

    

누군가가 루센스를 부드러운 목소리로 깨우고 있었어요. 조심스레 눈을 떠보니 꿈에 그리던 왕자가 걱정스러운 눈길로 내려다보고 있었어요. 루센스는 너무 반가워 인사를 하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어요.


     

“이런, 이렇게 아름다운 아가씨가 말을 할 수 없다니.. 내가 보살펴줄 테니 나의 궁전으로 함께 가겠소?    

     

루센스는 환하게 웃으며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고 왕자를 따라갔어요.  

        

왕자의 궁전은 상상 이상으로 멋졌어요.

그곳에서는 매일 밤 흥겨운 음악에 맞추어 무도회가 열렸고, 사람들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가진 루센스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어요. 왕자는 다정한 사람이었지만 그녀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다른 이와 눈을 마주치다니 실망이오. 더 이상 파티에 참석하지 말고 나만 바라보시오.”

“성 밖으로 나가는 것은 위험하오! 항상 얌전히 방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으시오. 나니까 이렇게 말하는 거요. 진심으로 당신을 위하는 것은 이 세상에 오직 나 하나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루센스는 기분이 이상했지만, 지금의 행복함을 깨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왕자의 요구를 따랐어요. 왕자는 성 안의 거울을 모두 없애버리고 자신만을 바라보라고 했고, 루센스는 이러한 왕자의 행동이 열정적인 사랑으로만 느껴져 행복했어요.


“달링, 너무 예민한 거 아니오? 아마 당신의 기억이 잘못되었을 것이오. 그냥 내가 시키는 대로 하시오. 모든 것이 당신을 위한 일이라는 것을 모르겠소?”     


그러나 이런 날들이 반복되자 용감하던 루센스는 자신이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절망감을 느끼게 되었고, 점점 자신감이 사라졌어요. 또 자신의 생각이  멈추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마다 마음이 불편한 날들이 늘어갔어요.   




어느 날, 루센스는 성 안을 산책하다가 덤불 안에서 반짝이는 무엇인가를 발견했어요. 가까이 다가 가보니 깨진 거울 조각이었어요. 울 속 그녀물결치듯 찰랑이는 붉은 머리는 힘없이 축 늘어졌고, 푸른빛이 감도는 아름다운 눈동자는 생기를 잃어 보였어요. 그러나 무엇보다 루센스를 두렵게 한 것은 거울 속의 자신이 더 이상 웃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어요.  


루센스는 뽈뽀와의 서약을 풀어 줄 주문을 떠올려봤지만, 왕자만을 바라보며 살았던 시간들 때문인지  생각이 멈춰버려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생각을 꺼내기 위해 무작정 걷기 시작한 루센. 정신을 차려 보니 붉은 해가 반짝이는 황금 거품을 선물하며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바닷가에 이르렀어요.


저 멀리 왕자가 백마를 타고 황급히 달려오며 루센스를 큰소리로 부릅니다.       

    

“위험하니 당장 돌아오시오! 당신은 내 옆에 있을 때만 안전하고 괜찮다는 것을 알잖소!”     

     

-아니야, 그렇지 않아! 나는 혼자 있을 때도 괜찮아.

-당신을 사랑하지만 내 생각까지 당신이 정할 수는 없어!     


“내 주문은.. 나는..”


루센스의 손가락이 모래 위에 글자를 쓰기 시작했어요.        

  

스텔라 루센스(stella lucens:빛나는 별)          


그때였어요. 모래에 적힌 글씨로부터 보글보글 올라오던 거품이 금세 커다란 물거품이 되더니, 곧 루센스의 온몸을 감싸 안았어요.

마침내 주문을 생각해낸 것이었지요!           


자신의 이름을 되찾은 용감한 인어공주 스텔라 루센스는 가까이 다가온 왕자에게 처음으로 목소리를 내어 이야기했어요.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존중하고 사랑해주기를 바랄게요."

왕자와 마주 보고 이야기하는 루센스의 반짝이는 눈동자는 신비한 푸른빛이 감돌았고,  물결치듯 찰랑이는 붉은 머리는 바다 위 황금 거품보다 더 반짝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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