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요?

by 다토

나는 누구인가요?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아직 내 이야기가 나와 있는 책은 없어요. 나는 한 곳에 가만히 있는 풀은 아니에요. 데굴데굴 구르는 돌덩이도 아니고요. 그럼 나무 사이를 옮겨 다니는 동물인가요?


[나는 누구인가요?] 글, 그림/ 토니 뒤랑


나를 정의할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직업, 나이, 학력, 성별과 같은 1차적인 척도를 제외한다면, 나는 나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나이를 제외하면 직업도 학력도 심지어 성별도 바뀔 수 있다. MBTI도 취향도 가치관도 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가변성이 있는 것들로 나를 정의할 때, 그것은 나일까?


오래 알고 지낸 사이에선 굳이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지만, 사회에서 새로운 사람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자신을 소개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가장 쉽고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직업과 나이일 것이다. 거기에 조금 더 나아가 학력이나 MBTI, 취향 정도로 스스로를 표현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내가 원해서 만든 것들이 아닐 경우, 자기 자신을 상대방에게 제대로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진짜 내 모습보다는 보이길 원하는 모습으로 나를 내어주고 있지는 않은가?


인생이 가면무도회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내 진짜 얼굴을 드러낸 채 참석했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프란츠 카프카-


세상은 생각보다 무서운 곳이고, 나를 드러내는 행동은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지금껏 어떻게 보일지 보다는, "나는 이런 사람이에요!"라며 궁금해하지도 않을 것들까지 박박 긁어 내보이는 삶을 살아온 나는. 어느새 이곳저곳 생채기가 남기도 했다. 때문에 누군가 가면을 쓰는 행위가 무조건 나쁘다 생각하진 않는다. 보여주고자 했던 건 나의 선택이고 감추고자 하는 것도 타인의 선택이다. 요즘엔 퍼스널 브랜딩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애쓰는 시대인 만큼, 본인이 원하는 가면을 멋지게 만들어 쓰는 것도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의 요령일지 모른다. 어렸을 땐 앞뒤가 달라 보이는 사람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너무도 싫어했었는데, 어른이 된 나는 그것 또한 개인의 삶 속에서 스스로 정한 방식일 테니, 그 선택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꼭 있는 그대로의 모든 것을 내보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본인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가면과 분리된, 그 속에 있는 나에 대해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가면이 나인지 내가 가면인지 혼란스러운 삶이 아닌, 진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따뜻하게 지켜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누구일까?


1차적인 척도 외에 나를 정의할 수 있는 단어 10가지를 떠올려 보았다.

[글, 그림, 포옹, 끈기, 호기심, 진화, 음악, 요리, 가족, 수학]

적고 보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나의 고유성에 가장 가까운 것들. 글과 그림은 한 번 앉으면 5시간이고 6시간이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든다. 나는 사람들을 안아주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매번 마음이 전달되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온기가 전해졌으면 하는 마음, 사랑이 묻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가족과 친구들을 마구마구 안아주는 편이다. 끈기와 호기심, 진화형 인생. 이 세 가지를 빼면 내 인생을 표현할 길이 없다. 포켓몬도 아닌데 레벨업 해야 하는 순간이 반복적으로 찾아온다. 이제 그만 찾아올 법도 한데 말이다. 어쨌든, 내 모든 생애는 이 세 가지로 끝까지 정의될 것 같다. 요리를 잘하진 못하지만 틈나는 대로 다양한 요리들을 배우려 한다. 내가 그리는 미래는, 요리를 아주 잘하는 할머니이기 때문이다. 맛있는 음식은 힘을 준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단단한 수단이라 믿는다. 음악을 좋아한다.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거나 악기를 끝내주게 다루는 건 아니지만 음악이 없는 날은 없을 정도로 거의 매일 듣는다. 피아노나 드럼 치는 것도 좋아하고, 음악에 빠져 이것저것 상상하는 순간을 사랑한다. 나는 가족들을 좋아한다. 가족들을 챙겨주고,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하하, 호호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행복감을 느낀다. 매우 할머니 마인드다. 명절에 가족들이 모이면, 나는 언제나 할머니 어깨에 코를 박고 할머니 냄새를 한껏 맡으며, 대화 나누는 가족들을 바라보곤 하였다. 어쩌다 보니 인생이 이상한 곳으로 흘러 이 나이에 수학문제를 계속 풀고 있다. 나름 이과였고, 특별한 능력을 갖춘 건 아니지만 좋아하는 과목이다. 어떤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수학이 좋아서 계속 공부하시는 분들도 가끔 뵈었다. 수학은, 시험만 없다면 아주 매력적인 학문으로 마주할 수 있다.


나는 누구일까?


나에 대해 생각해 보다가 이전에 나에 대한 매거진을 만들어 봤던 것이 떠올랐다. 스스로 에디터가 되어 자신에 대해 탐구하고 글과 사진으로 정리해 보는 시간이었다. 매거진의 서문은 아래와 같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나. 문득 그동안의 시간들을 정리해 보고 싶어 졌다. 이렇게도 살아 보고 저렇게도 살아보며 나에게 맞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가고 또 그런 것들로 채워가며 점점 더 나답게 살고 있다. 그 과정들을 정리하면서 좋았다. 나만의 향이 듬뿍 배인 이 책이 참 오래도록 소중할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 10년 더 힘내서 잘 살아보고 다시 한번 이 책을 만들어 보고 싶다. 10년 동안 나는 어떤 모습으로 성장해 갈까? 조금은 더 나은 모습일 수 있다면 좋겠다. 더 나은 모습이 아니더라도, 행복하고 따뜻하게 살고 있다면 좋겠다. 언제나 너를 응원한다.


[취향의 발견 : 내가 마음을 쓰는 것. 오롯이 좋아하는 마음을 담아 행복할 수 있는 것]

그림책, 악기, 헤어미스트, 그리기 도구, 도마, 셔츠에 대한 글을 썼다.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것들이다. 그림책은 내 인생을 헌신해도 아깝지 않다 생각되는, 아주 아주 따뜻하고 설레고 사랑스러운 것. 악기연주는 재밌지만 우리 집안에 음악인은 없음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기분 좋은 하루를 만들어 주는 아이템!! 향수보다 은은해서 더 좋은 헤어미스트. 그리기 도구는 말해 무엇하는가. 사도사도 또 사고 싶은데. 꼼꼼함 부족으로 관리를 잘하지 못해 비싼 도마와 이별했던 아픈 기억. 옷을 정리하다가 문득 깨닫게 된 셔츠에 대한 사랑. 무심한 듯 단정한 매력. 셔츠를 좋아하기도 하고, 셔츠가 잘 어울리는 사람을 좋아하기도 하고.


[나는, 나를 : 나를 한걸음 한걸음 내딛게 만들어 주는 것들에 관하여]

친구는 앞부분 읽어보고 바로 덮어버린 후 현실을 선택, 나는 미련스럽도록 끝까지 믿어보기로 한 책. 선택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지기로 했으니 그래도 괜찮아. / 파울로코엘료 <연금술사>


가사가 너무 좋다. 숨고 싶은 마음,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일부러 반복해 듣는 노래. 내 안에 숨지 말자, 나에게 속지 말자 수없이 되뇌며 듣고 또 듣던 노래. 나를 일으켜 세우는 노래. / 이승환 <물어본다>


"가치 있는 일을 하면서 너무 늦거나 이른 때란 건 없다.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갖기를..."

영화 속 대사가 조금 더 나의 삶을 살아볼 수 있도록 용기를 주었다.

/데이비드핀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매거진에 담긴 건 긴 글들이었지만 축약해 보았다. 그 외에도 인터뷰 형식의 다양한 질문과 답변을 통해 나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담았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나의 생각, 나의 강점, 약점,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순간들, 영감을 받는 것들,,, 질문에 천천히 답을 하며 스스로에 대해 많은 것들을 정리해 볼 수 있었다. 바쁘게 사느라 잊고 있었는데 매거진에 써 두었듯 10년에 한 번 정도 만들어 보려고 한다. 자기 자신을 탐구하는 내용을 매거진으로 남겨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된다. 꼭 한번 해보길 추천한다. 매거진을 만드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다양한 질문들을 선정해 스스로에게 물음표를 마구마구 던져 보며 답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다. 물음표를 던져야 답이 보인다. 답이 빠르게 나오지 않는 질문일수록, 천천히 오래오래 생각해 보자. 답이 나오지 않는 것에도 분명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작은 노트를 준비해 스스로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을 정리해 보고, 새로운 모습을 알게 될 때마다 기록해 보고 있다. 너무 자기애가 넘치는 행동은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한 번쯤은 이런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진짜 나와 마주하는 것에 도움이 된다. 순간의 감정을 무심히 기록하기도 하고, 날 것 그대로의 생각을 마구 적어 보기도 하고. 한 번 시도해 보면 좋겠다. 계속 가지고 다니면서 스스로를 기록해 보는 일. 그렇게 나를 정의할 수 있는 것. 일기장보다는 훨씬 가벼운 용도로. 언제든 태워버릴 수 있다는 마음으로.


나를 찾아보자. 나에게 질문해 보자. 나는 누구일까?


'나'라는 사람은 직업, 나이, 학벌보다는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서 많이 드러나는 것 같다. 직업은 세상살이에 맞춰 갖춘 것일 수 있다. 나이에 맞지 않게 사는 사람도 많다. 학벌은 부모님의 기대에 대한 부응일 수 있다. 혹은 방황하던 시절의 결과물일 수도 있다. 때문에 '나'라는 사람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속에서 더 많이 묻어나는 것 같다.


나에 대해 알아보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질문도 좋지만, 타인에게 질문해 보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된다. 매거진을 만들 때도 나에 대한 설문 조사를 했지만, 개인 콘텐츠 만들기에 대한 첫 단계로도 진행했었다. (역시 나에 대해 잘 아는 것이, 모든 것에 대한 첫걸음이 된다. 모든 씨앗은 내 안에 있다.) 내가 보는 나와 타인이 보는 나에 대해서 비교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나처럼 종종 이런 일을 벌이면(?) 귀찮으니 작작 좀 하라는 친구의 따가운 애정을 받기도 하니, 신중하게 고민하고 엄선된 것을 한 번에 질문하도록 하자. (매번 정성껏 적어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꼭 사례를 하긴 했었다.)


질문에 대한 답변은 익명으로 받고 친구, 지인, 가족 등등 혹시나 답변을 받지 못하더라도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보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알고 지낸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과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의 답변이 고루 섞여 좀 더 입체적인 나를 분석해 볼 수 있다.

설문조사 답변 발췌


나는 물음표를 열심히 던지며 살았다. 물음표를 하나씩 느낌표로 바꿔 가면서, 미래에 대한 방향성은 점점 더 선명해졌다. 스스로를 조금은 더 단단하게 만들어 갈 수 있었다. 그렇게 수많은 질문을 통해 나는, 흔들리더라도 헤매더라도 결국엔 다시 돌아오는 법을 배웠다. 지친 나를 위로하고 응원하는 법과 힘내어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 최근 나에 대해 알게 된 것들은, 나에게는 쉼이 필요함에도 쉴 줄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스스로를 너무 몰아세우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제대로 쉬기', '나를 소모시키지 않으며 나아가기'가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나에 대해 알면, 스스로를 더 건강하고 따뜻하게 지켜낼 수 있다. 더 이상은 나를 갈아 넣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지 않는다. 쉬어도 괜찮다는 것을 알아간다. 조금 더 잠을 자도, 노력한 일에 성과를 내지 못해도, 이제는 괜찮다. 내 마음이 건강해야 타인에게 주는 마음도 진심일 수 있을 테니. 스스로를 돌보는 것은,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나를 알아야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해야 받아들일 수 있다. 나를 알아가는 즐거움에 최선을 다해보자. 우리 모두 언제나 파이팅!





어쩌면 우리가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가에 대한 확인일지 모른다.

그 질문에 조급한 마음 대신, 내가 선택한 삶을 함부로 부정하는 대신, 따뜻한 인사를 건네 보는 건 어떨까?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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