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고 있는 아이디, 이메일 주소는 모두 'blue'로 시작된다. 그렇게 파란색을 좋아한다. 파란색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것이 순전히 하늘과 바다의 색을 닮아있기 때문이다.
7월의 제주는 온통 파란빛으로 출렁였다. 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멀리 바다를 바라보면 하늘과의 경계가 모호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올수록 점점 짙어지며 온통 파랑으로 바림된 풍경은 숨 막히도록 아름다웠다. 날씨가 흐리면 흐린 대로, 맑으면 맑은 대로 바다는 하늘을 거울삼아 시시각각 제 빛깔을 드러냈다. 제주 섬의 가장자리를 둘러싼 바닷물빛에 마음도 물들일 수 있던 시간들.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이런 호사는 '일상'이라는 뭍을 떠났기에 가능했다.
여행 둘째 날. 오후 내내 물놀이를 하다가 간단히 저녁을 해결하고 우리는 숙소 앞 둘레길을 걷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함께 걷기 좋은 산책 코스였다. 어느덧 노을이 지고, 돌담길뿐만 아니라 단층의 작은 마을 집들도 검은 윤곽만을 드러냈다. 하늘 아래 모든 색이 한 가지 색으로 그 정체를 드러내며 단순해지는 순간. 분주한 낮동안 괜시리 부풀어 있던 일상의 고민들이 이런 시간과 풍경 속에서는 잠잠히 사그라든다.
우리는 걷다가 바닷가로 이어지는 길로 내려갔다. 수천 개는 되어 보이는 돌들이 누군가 정리 정돈한 것처럼 놓여있었다. 아파트 단지에서는 돌멩이 하나도 쉽게 찾지 못했던 아이들은 엄청난 양의 돌을 보자마자 가만두지 않았다. 휙, 휙, 휙. 바닷속으로 돌을 던지며 아이들은 온몸으로 즐거워했다. 습하고 더운 제주의 날씨에 걷기를 힘들어하다가도, 금세 삶을 '가장 재미있는 놀이'로 변화시키는 아이들. 그렇게 현재를 즐길 줄 아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 빛깔과 구름의 움직임에 내 온몸도 꼼짝 못 하고 사로잡힌다. 푸르고 푸른 바닷물을 한 줌 손에 떠보았다. 멀리서 바라볼 때는 분명 파란색인데 막상 손으로 퍼올리니 그 빛깔은 느닷없이 사라져 버리고 만다. 자연의 색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이렇게 늘 변한다. 그래서 바라볼 수는 있으나 쉽게 소유할 수는 없는 색이다.
삶의 색깔 역시 다채롭다. 고정적인 것이 없고 늘 변화한다. 확실한 것은 지금 이 순간뿐. 눈앞에 마주하고 있는 현재에 최대한 집중하는 일이 삶을 가장 잘 사는 비결이란 것을 새삼 깨닫는다.
가만히 서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이곳은 섬의 가장자리. 삶에도 중심이 있다면 그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가장자리 역시 존재할 터. 시야가 좁고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탓에 내 삶에서 밀려나고 소외되었던 일들을 생각해본다. 꿈을 꾸고 도전하는 일, 관계를 돌아보는 일, 나누고 베푸는 일. 중심에 있어야 할 일들이 거꾸로 내 삶의 가장자리로 밀려나 있지 않았던가. 집중해야 할 것이 삶의 중심점에 잘 놓여있는가.
좋은 여행은 꼭 선물을 안겨준다. 삶의 중심점이 바르게 찍혀있는지, 그것이 아니라면 과감히 수정해 볼 수 있는 용기를 준다. 푸르고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천천히 길을 걸었다. 보이지 않던 삶의 가장자리를 구석구석 발견해내며 가볍고도 푸른 마음으로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