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큰 아이의 하교 시간, 학교 후문 쪽으로 걸어가던 길이었다. 군데군데 물 웅덩이가 깊이 파였을 만큼 사방은 빗물 투성이었다. 도로변 쪽으로는 노란색 학원 차량들이 일렬로 대기 중이었고 교문 앞으로는 아이들을 마중하러 나온 어른들이 드문드문 서 있었다. 금세 그칠 것 같지 않은 빗 속에서, 익숙한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 2학년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반대편에서 유유히 걸어오고 있었다. 어깨까지 늘어뜨린 검은 머리카락이 비에 흠뻑 젖어가는 채로. 베이지색 코트와 치마가 회색빛 얼룩으로 뒤덮이고 있었다. 순간 눈을 의심했다. 아이는 우산을 쓰지 않고 있었다. 나보다 한참을 앞서 걷던 성인 여자는 아이를 무심하게 스쳐 지나갔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 성인 여자를 탓했다. 아니, 얼마나 바쁘길래 비 맞고 있는 아이를 모른 척 지나가나. 비를 맞으며 걸어오고 있는 아이가 점점 크게 보였다.
그런데 아이의 한 손에는 빨간 땡땡이 무늬 우산이 멀쩡히 들려있었다. 시야에 가려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이다. 행여 우산이 고장 나서 펼 수 없었던 걸까. 나는 아이에게 말을 걸 수 있을 만큼 가까워지자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산을 왜 안 쓰고 가니?"
나는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아이는 아무 망설임도 없이 내게 말했다.
"저의 자유예요!"
아이는 우산을 쓰지 않고, 들고 갔다. '자유'라는 말을 발음하는 아이의 입가에 웃음이 번져 있었다. 나는 아이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이 낯설었다. 어린아이가 흔히 할 법한 말이 아니기도 했고, 무언가 해야 한다는 의무가 가득한 내 생활 반경 안으로는 품지 못했던 말이었다.
나는 자유라는 말을 언제쯤 해보았나. 최근에 갔던 미술 전시회에서 한 작가의 작품 설치 방식을 보고서야 꺼낼 수 있었던 말이 '자유롭다'였다. 그 작가는 목재로 직접 테이블을 크고 높게 만들어 상판 위에 유리를 깔고, 그 밑에 자신의 그림을 끼워 넣는 방식으로 작품을 설치했다. 대부분 그림은 벽에 걸어서 보여주는 것이 일반적인데 말이다. 상식적으로는 불필요한 수고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자신의 작품을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려 한 작가의 노력이 '자유'에 가깝다고 느꼈다.
비 오는 날의 예술가 같은 아이의 눈은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교실에서 내내 이 순간만을 기다렸어요."라고 말하는 눈빛으로. 하마터면 아이의 자유를 깨뜨릴 뻔했다. 아이에게 묻지도 않고 곧바로 우산을 씌워주었더라면. 그래, 네게는 비를 맞을 자유가 있지. 호기심 많은 아이는 우산을 쓰지 않은 채, 비를 맞아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토록 세차게 내리던 비 앞에서 마음을 바꾸지 않은 아이의 용기를, 그리고 땅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외에는 주변의 그 무엇도 의식하지 않는 아이의 대범함을, 무엇보다 자신만의 자유를 발견하는 아이의 지혜를 감탄했다.
그렇게 비를 맞으며 천천히, '자유'를 들고 걸어가는 아이를 나 또한 그냥 지나쳐주었다. 길 위에서 우산을 펴고 접을 선택권은 홀로 걷던 아이에게 있으므로. 그러다 감기 걸린다, 비가 깨끗하지 않다 등의 걱정 섞인 잔소리는 앞으로 자라면서도 수 없이 들을 것이므로.
문득 지금의 내게는 무엇이 '자유'인지 생각하게 했다. 출퇴근이 없으니 주어진 하루의 시간을 유연하게 계획할 수 있는 자유,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는 자유, 공원을 산책하며 늦가을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자유, 가족들과 무엇을 먹을지 정할 수 있는 자유, 신선한 원두를 갈아 커피 내릴 타임을 엿보는 자유,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를 수 있는 자유, 한가한 오후에 바닷가 공원 카페에서 혼자 책을 읽다 올 수 있는 자유,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자유...
이렇게 하나하나 떠올려 본 나의 자유라는 것은 실상 우산 살과도 같은 것이었다. 가늘고 약해 보이지만 촘촘히 여러 개가 모여 있으면 견고함을 유지하는 것. 그렇게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나의 촉이 되어 주는 것.
하늘 위로 펼친 우산 살 만큼이나 내게도 자유가 많구나. 자유가 무엇인지 발견하지 못하고 살아갔을 뿐이구나.
후문 밖으로 어느덧 큰 아이가 나오고 있었다. 비는 이내 잦아들었다. 학교 담벼락 모퉁이를 돌며 사라진 그 자유로운 영혼이 비를 너무 많이 맞진 않았겠다 싶어 다행이었다.